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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왕리에서 가져온 거죠?" "네. 맞아요." "그럼, 자연산이야. 맛이 다르잖아요?" 자연산에다 요즘 나온 게 가장 맛있다는 소리에 모두 한 젓가락씩 손이 더 갔다. 아내도 맛이 있다며 굴을 사다 먹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바다 바람이나 쐬러 갈까요?" 토요일 오후. 나는 원고를 정리하느라 컴퓨터 앞에서 꼼짝달싹하지 않고 있었다. 아내가 서재로 들어왔다. "여보! 흥왕리나 다녀올까요?" "굴 사러 가려고?" "굴도 사고, 바다 구경도 하구요." "글이 안 풀리는 참인데, 잘 되었네!" "오늘은 색다른 굴 요리를 선뵐게요." 내가 두말없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자 아내도 부리나케 차 시동을 건다. 우리 집에서 흥왕리까지는 차로 15분 남짓 걸린다. 흥왕리는 마니산 뒤쪽의 강화 남단에 자리 잡은 바닷가 마을로, 넓게 펼쳐진 개펄이 유명하다. 차창을 내려 공기를 들어 마신다. 차가운 바다 공기가 피부 깊숙이 파고든다. 바닷가 근처 마을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우리는 마음이 답답할 때 곧잘 바닷가로 나간다. 그곳에 가면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 든다. 해질녘에는 서해 낙조를 바라보며 고즈넉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아내가 바깥 공기가 차다며 창을 닫으라 한다. 아까 한 말이 생각이 나서 한마디 건넨다. "색다른 굴 요리가 뭔데?" "이 양반, 김칫국부터 먹는 데는 뭐가 있다니까! 기대나 해요." 비장의 무기라도 꺼낼 듯이 아내는 말을 아낀다. 잘 아는 분께 미리 연락을 하여 찾아갔다. 오늘 채취한 굴이라며 보여 주는데 비릿한 냄새와 색깔이 싱싱해 보인다. 빨리 저녁을 지을 요량으로 우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색다른 굴 요리를 해볼까요?" 굴은 추운 겨울철에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나오는 게 가장 실하다. 이 때가 굴의 성장에 가장 알맞은 수온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동안 굴을 재료로 하여 하는 요리는 무생채에 굴을 넣어 무쳐 내거나 아니면 간장에 갖은 양념을 하여 버무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늘은 무슨 굴 요리를 할까 짐짓 궁금하다. 그런데 요리는 뒷전이고 무엇을 열심히 찾는 모양이다. 결국 나한테까지 왔다. "여보, 막둥이네 집에서 가져온 가마솥 못 보았어?" "조금만 거 말이지? 그거 뭐할 건데?" "거기다 굴밥 해먹을까 하고요." "굴밥? 당신, 잘 할 수 있어?" "친구 집에서 먹어 보았는데 괜찮더라구요. 시험 삼아 해보죠." 그러니까 아내는 친구한테 배운 대로 색다른 굴 요리를 해볼 요량인 것같다. 내가 다용도실 선반에서 앙증맞게 생긴 무쇠로 된 가마솥을 찾아주었다. 굴밥을 해먹으면 안성맞춤일 것 같다. 아내는 능숙한 솜씨로 굴을 소금물로 헹궈내면서 해감을 시킨다. 그리고서 굴밥에 들어갈 재료를 냉장고에 찾는다. "굴밥에는 무엇을 넣지?" "밤, 대추, 은행, 이런 거 넣지요." "그런데 밤이 없네. 밤 대신 감자와 단호박은 어떨까? 느타리버섯도 조금."
처음해 본 요리지만... 가마솥에 불린 쌀을 넣고, 준비한 대추, 버섯, 감자, 은행 등을 얹었다. 밥이 끓기 시작하자 뚜껑을 열고 생굴을 넣는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약한 불로 뜸을 들이자 고슬고슬한 굴밥이 완성되었다. 내가 가마솥 뚜껑을 열자 하얀 김이 올라왔다. 구수한 단내의 밥 냄새에 군침이 돈다.
"좀만 기다려요." 굴밥에 양념 간장을 넣어 비며 먹으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아내는 또 다른 요리를 준비할 모양이다. "또, 뭘 하려고?" "색다른 굴 요리 하나 더 할게요." "그게 뭔데?" "두고 보세요." 아내는 지난 해 담근 묶은지를 얇게 채 썬다. 거기다 갖은 양념을 넣고 깨소금으로 마무리하여 색다른 굴무침을 한다. 여태껏 한번도 해먹어 본 적이 없는 요리이다. "맛이 어때?" "묵은 김치와 잘 어울려 맛이 고소해."
"역시다! 당신 요리 솜씨는 알아주어야 해. 오늘 굴 요리는 일류다!" 내가 하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아내는 복분자술을 포도주잔에 따른다. 그리고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자고 한다. 술잔이 부딪쳐 나는 소리가 청아하다. 우리는 가마솥에 지은 굴밥에다 색다른 굴무침으로 차가운 겨울 저녁상을 행복으로 수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