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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의 나라 화천

[新택리지]별유천지비인간의 세계, 산과 물의 나라 화천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평화의 댐’ 건설을 둘러싼 갖가지 해프닝은 화천이라는 고장을 울리고 웃겼다. “딱 3년만 해보자”고 시작한 산천어 축제는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국제적인 축제로 거듭났다.

☞ [화보] 산과 물의 나라 화천

화천은 군사도시다. 오늘날의 화천(읍)을 건설한 것은 육군 일병이었단다. 해방 이후 북한 치하였고, 한국전쟁으로 초토화한 시가지를 건설한 것은 6사단 공병대였다. 그런데 폐허 위에 바둑판처럼 줄을 그은 이가 다름 아닌 육군 일병이었단다. 새마을 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나. 나중에 화천시가 전설의 일등공신인 이 일병을 찾으려 무진 애를 썼지만 영영 나타나지 않았단다.

구름이 가까워 옷이 젖은 산의 고을

여전히 민간인 수보다 군인 수가 훨씬 많은 화천에는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의 아픈 추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유명한 인공호수 이름이 오랑캐를 무찔렀다는 뜻의 파로호(破虜湖)인 것도 한국군이 중공군 대부대를 수장(水葬)시킨 것을 기념해 이승만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다.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며 지었다는 국민가곡 ‘비목’의 고향이기도 하며, 인민군 사령부막사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증거해 준다. 간동면 오음리는 1960년대 베트남전 파병용사들이 꽃다운 청춘을 바치며 고된 훈련을 받았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파로호 1940년대 화천댐 공사로 생긴 파로호. <이우형>


화천은 ‘산의 고을’이다. 고려 명종대의 학자 김극기는 “푸른 산이 사방의 이웃이로다(靑山是四隣)”이라 했고, 여말선초의 학자 이지직(李之直)은 “구름이 가까우니 옷이 젖을 정도(雲近衣裳濕)”라고 읊었다. 그랬다. 오죽했으면 한국전쟁이라는 미증유의 난리통에도 피아의 군인 한 사람도 보지 못했고, 숲에 가린 하늘이 불과 3평이었던 마을(간동면 방천리)이 있었다 하지 않는가. 전쟁 직후 화천 사람들은 바로 이곳 방천리 마을에서 씨앗을 얻어 농사를 지었다지.

그도 그럴 것이 최전방 날씨의 대명사로 일기예보에 자주 등장했던 적근산(1073.1m)·대성산(1174m)·백암산(1179.2m)을 비롯, 사명산(1197.6m), 광덕산(1046.3m), 화악산(1468m) 등 고봉준령이 고을을 떡하니 감싸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화천군의 총면적은 907.07㎢에 달하는데, 그 가운데 산 면적이 86.2%에 달합니다. 지어 먹을 수 있는 논밭이라야 7.2% 정도? 그 중에서도 논은 2.1% 정도지요.”(정갑철 화천군수)

산 높고, 계곡 깊은 땅이기에 은둔선비들의 이상향이었다. 생육신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년)과 노론계의 핵심 인물로 당쟁에 휘말려 낙향을 거듭했던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1635~1705년)은 화천의 ‘곡운구곡(谷雲九曲)’을 두고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하지 않았던가. 곡운구곡은 화천 사내면 동부와 춘천 사북면 북부에 걸쳐있는 직경 15㎞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심산유곡이다. 청옥협(靑玉峽)·신녀협(神女峽)·방화계(傍花溪)·명옥뢰(鳴玉瀨)·백운담(白雲潭)·와룡담(臥龍潭)·명월계(明月溪)·융의연(隆義淵)·첩석대(疊石坮)를 일컫는다.

“청산의 그림자가 푸른 물에 비쳐있는 청옥협, 천반의 열두 기봉이 무산처럼 나열돼 있는 신녀협, 동천이 홀연히 열려 백옥뜰을 이룬 방화계, 한가한 구름이 수풀 속에 얕게 드리운 명옥뢰, 눈 앞에 꽃이 홀연히 밝은 백운담, 산이 맑고 물이 깨끗한 와룡담, 밝은 달이 늘상 먼저 비추는 명월계, 용이 누워 있는 듯한 융의연, 첩첩히 쌓인 돌이 책을 쌓아놓은 듯한 첩석대….”(<수춘지·壽春誌>) 1689년 기사사화(己巳史禍)가 일어나자 김수증은 바로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구름처럼 떠다닌 매월당의 발자취가 숨 쉬는 곳, 바로 화천 사내면 삼일리에 ‘화음동정사(華陰洞精舍·강원도기념물 63호)’를 짓는다.

‘화음동 정사’에서 눈길을 잡아매는 것은 전서(篆書)로 너럭바위에 새긴 ‘인문석(人文石)’이라는 명문이다. 또 하나, 북송 때의 철학자 소자(邵子·1011~1077년)의 상수사상(象數思想·상징적인 그림과 부호, 숫자로 전개한 우주론)을 집대성한 태극도와, 그 위에 새겨 넣은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가 눈에 띈다. 하지만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연작(燕雀)이 알리오. 우리네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로서는 운둔의 삶에서까지 심오한 성리학적 우주관을 표출한 선비의 큰 뜻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족탈불급이다.

천년의 삶, 청동기 사람들의 터전

용암리 청동기유적 용암리 청동기 유적. 모두 230여기의 유구가 확인됐다. 〈강원문화재연구소 제공〉


‘산의 고을’ 다운 절경은 또 있다. 옛날 맥국(貊國)임금이 난을 피했다는 용화산은 화천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특히 용화산에서 떨어진 간동면 오음리와 유촌리 사이에는 박쥐굴이 있는데, 이곳에서 불을 때면 50리나 떨어진 춘천 고탄에서 연가가 난다는 구전이 있을 정도라니.

화천은 ‘물의 고을’이다. 북한강의 15곳 지류가 흘러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았다. 최근에 북한강변 충적대지인 하남면 용암리에서 3000년 전부터 1000년 이상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터전을 잡았던 이른바 ‘청동기 타운’이 발견됐다. “모두 230여 기의 청동기시대 유구가 쏟아졌는데요. 청동기 타운에는 30평형대 대형 주거지들이 나왔어요. 공동회의장과 석기공장·석기수리점까지 구비한….”(이우형 한국국방문화재연구원 연구원) 용암리와 위라리 일대는 아직 발굴하지 못한 여전히 청동기~삼국시대 유적이 널려있으며, 위라리에는 삼국시대 초기 적석총이 방치된 채 무너져 내리고 있다.

'평화의 댐’에 담긴 사연

하지만 화천이 명실상부한 ‘물의 나라’가 된 것은 1944년 완공된 화천댐(간동면 구만리)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호수(파로호·破虜湖)가 생겼으니 말이다. 1986년에는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이른바 ‘금강산댐 소동’이 일어난다. 그해 10월30일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비밀리에 200억t 저수용량의 금강산댐(임남댐) 건설계획을 세웠으며, 이 댐이 붕괴될 경우 서울은 12~16시간 내에 물바다가 되고 여의도 63빌딩의 3분의2, 국회의사당의 지붕 부분만 남게 된다는 충격적인 시뮬레이션을 발표했다. 정부는 대대적인 성금모금운동을 펼쳤으며, 급기야 화천 동촌리에 ‘평화의 댐’ 건설을 추진한다. 하지만 평화의 댐은 1989년 5월27일 댐 높이 80m에 이르는 공사가 완료된 것으로 끝났다.

평화의 댐 대응 댐으로서의 효용 가치가 새삼스레 부각된 평화의 댐. 〈화천군청 제공〉


정권이 바뀌면서 금강산댐 위협이 터무니없이 과장됐으며, 결국 정권 유지 차원의 ‘국면전환용’ 사기극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평화의 댐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흉물로 변한다. 하지만 못된 정권이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해서 그렇지 ‘평화의 댐’ 자체의 효용성은 훗날 입증된다. 평화의 댐 북쪽으로 24㎞ 떨어진 곳에 완공된(2003년) 임남댐(금강산댐)에 균열이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2006년 흉물로 남아 있던 평화의 댐 2단계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임남댐(26억2000만㎥)보다 1000만㎥ 많은 26억3000만㎥ 저수용량의 평화의 댐을.

만에 하나 북한 임남댐이 붕괴된다 해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물’이다. 2단계 평화의 댐 공사로 다시 파로호의 물을 뺀 것도 문제이다. 더욱 큰 고민은 북한 임남댐 건설로 1년에 17억에 달하는 물이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남북간 댐은 세운 것이니까 북은 물을 내려 보내주고 남은 북한에 부족한 전력을 보내주는 상생의 협력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이우형씨).

순식간에 산천어의 고을이 되다

평화의 댐 소동은 역설적으로 화천을 ‘산천어의 고을’로 바꿔 버렸다. “두차례에 걸친 댐공사로 물을 뺀 파로호는 밀려든 토사로 죽은 호수가 되었어요. 하루 1000여명이 찾던 파로호에 1년에 1000명이나 왔을까. 화천 경제는 가히 빈사상태에 빠졌어요. 그래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산과 물의 상징인 산천어를 생각하게 됐죠.”(정 군수)

화음동사지 조선 중기 노론계 핵심인 김수증이 은둔하면서 세운 화음동사지. <화천군청 제공>


파로호가 살아가는 것을 기다려 2003년부터 딱 3년만 진행시키려 했던 산천어 축제는 뜻밖에 대박을 터뜨렸다. 1년에 100만 명 이상이 찾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포토뉴스로 보도할 만큼 세계적인 축제로 변한 것이다. 1년에 단 열흘 동안 치르는 산천어 축제가 낳는 경제효과만 해도 450억 원에 이른단다. 올해 축제 때에도 90t에 이르는 산천어를 풀었다.

산천어는 화천의 이미지에는 맞는다고는 하지만 화천의 고유어종은 아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화천의 고유어종으로 열목어, 누치, 쏘가리를 꼽았을 뿐 산천어는 없었다. 1988년 발간된 <화천군지>에도 산천어는 화천의 고유어종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 산천어가 화천군을 대표하는 어종이 되었으니…. 축제에 쓰이는 산천어는 일본산이란다.

어떻든 산 86%, 물 5%인 ‘산과 물의 고장’인 화천. 그 때문에 궁벽한 고을의 상징이 되었지만, 거꾸로 보면 물과 산이 선사하는 청정의 이미지 덕분에 여전히 매혹적인 고장이 될 수 있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의 안식처로….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가는 길/
구리-남양주-대성리-춘천으로 가는 46번 국도를 탄다. 춘천에서 화천까지 가는 코스는 대략 3가지. 강촌→의암댐→춘천댐→지암리→신포리 검문소→화천길은 북한강을 끼고 갈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 또한 춘천→춘천댐→고탄→화천 길은 가장 빠른 산악도로 코스이며, 춘천→소양댐→오음리삼거리→오음리→화천길도 있다. 버스는 동서울 터미널(2시간40분·1일 16회)과 상봉동 터미널(2시간30분·1일 12회 정도)에서 탈 수 있다.

연락처/
화천군청 대표전화 033-442-1211
화천군청 문화관광과 033-440-2543~8
화천관광 홈페이지 http://www.ihc.go.kr/tour
화천상가 인터넷마트 http://nstop24.net
Cyber 강원관광정보 http://www.gangwon.to

맛집/
대청마루읍내 아리에 있으며, 돌솥밥과 불고기 백반이 주메뉴. 2008년 화천군 요리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033-442-1290
산채골 읍내 하리 대동 한증막 옆에 있다. 화천에서 생산되는 쌈(산나물)을 재료로 한 쌈밥정식이 일품. 033-442-4880
수라간 읍내 하리 화천 농협 옆에 있다. 내륙에서 맛보는 해물 요리릃 맛보려면…. 해물찜과 탕, 샤브샤브가 유명. 033-442-2708
평양막국수 화천읍 대이리에 있다. 평양냉면과 초계탕이 유명한데, 특히 초계탕은 춘천권 일대에서는 최고라고. 033-442-1112
동촌식당 화천읍 대이리에 있는데, 무공해 청정지역인 화천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전문요리집이다. 033-441-3579

숙박/
아쿠아리조트 하남면 원천리 강변에 있으며, 화천군청에서 직접 운영한다. 핀란드·노르웨이 등 관광강국을 벤치마킹했다. 033-441-3880
향기나라사랑이 사내면 삼일리에 있다. 꽃농장에 자리잡고 있으며, 콘도식 민박펜션이다. 033-441-4632
사계절 민박 읍내 중리에 있으며, 산천어축제장까지 도보로 3분 걸린다. 콘도형 민박펜션이다. 033-442-1631
유촌리 펜션 간동면 유촌리 면사무소 뒷편에 있다. 유촌리 마을회가 운영하고 있는 가족단위 펜션이다. 017-375-5515(이종석 이장)
초원장여관 읍내 하리에 있다. 객실 수는 19실이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033-442-2230
만산동 민박 상서면 구운리에 자리 잡고 있다. 산천어밸리와 연계한 여름철 계곡 휴양지 인근에 있다. 033-441-0250

[소읍기행]휴대폰은 꺼두세요, 화천 운수골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휴대폰이 안 되는 진짜 산골 마을. 고개를 들면 온통 산이고 발밑에는 계곡이 따라온다. 산 좋고 물 좋고 거기다 사람까지 좋은 운수골에는 불편함을 넘어선 운수대통 운치가 서려 있다.

[화보]☞ 화천 운수골

“어랏! 휴대폰이 안 터지잖아.”

별일이다. 굽이굽이 언덕을 넘어 겨우 마을 어귀에 들어섰는데 휴대폰은 여전히 먹통이다. 아무리 산골이어도 요즘 휴대폰이 안 터지는 마을이 있을까.

마을에 들어서면 이장 집인 ‘꽁지네’ 표지판을 무작정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집 마당에 들어서자 정말 꽁지머리를 한 이장님이 나온다. 휴대폰이 안 터진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일부러 기지국을 안 설치했어요”하며 되레 큰소리다.

꽁지머리 이장과 주민 꽁지머리 민경구 이장(왼쪽)은 “농촌마다 펜션 짓고 획일화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운수골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는 역발상 친환경주의 마을이 될 겁니다”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윤정기자〉


운수골은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방천2리에 속한다. 행정구역상 화천이지만 파로호를 끼고 차로 40여분을 더 가야 하는 산골이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경사 40도 이상의 사명산 능선을 넘어야 한다. 눈이라도 내려 길이 얼어붙는 날엔 1시간을 넘게 걸어야 마을에 갈 수 있다.

마을은 죽엽산과 사명산에 둘러싸여 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은 온통 산이 가리고 섰다. 마을 어디에나 사명산에서 굽이친 계곡이 흐른다. 계곡 옆으로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 잡았다. 마을에는 겨우 47가구가 산다. 그나마 주말만 운수골에서 지내는 도시민이 많다. 그러다 아예 귀농한 가정도 꽤 된다. 도시에서 왔지만 생활방식은 완전히 산골 전통을 따른다. 지게를 지고 땔감을 해다 아궁이를 지핀다. 마을에는 그 흔한 구멍가게조차 없다. 도시에서 손님이 오면 시골집에서 함께 지낸다. 식당이 없으니 밥도 주민과 함께 먹는다. 술이며 안주며 먹을 게 모자라면 옆집에서 얻어먹는다. 운수골에 오면 진짜(?) 민박을 하는 셈이다.

모터를 단 ‘자가 수력 발전기’ 물레방아 마을 계곡에는 모터를 달아 놓은 ‘자가 수력 발전기’ 물레방아가 있다. 마을에서 자체 제작한 것으로 가로등 1개를 밝히는 전력을 만든다. 〈이윤정기자〉


오는 이마다 운수대통하라는 운수대통길에는 약복숭아가 심어졌다. 무릉도원 운수골을 꿈꿔서다. 마을 계곡에는 모터를 달아 놓은 ‘자가 수력 발전기’ 물레방아가 있다. 화장실은 수세식이 아닌 생태화장실로 개조 중이다. 유기농법 농산물만 취급하고 자연에 거스르는 것은 최대한 자제한다. 꽁지머리 민경구 이장은 “농촌마다 펜션 짓고 획일화되는 것에 반대합니다. 운수골은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는 역발상 친환경주의 마을이 될 겁니다”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사람 사는 맛을 즐기는 꽁지머리 이장님의 카리스마는 운수골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른다.

마을을 나서며 울룩불룩 제멋대로 생긴 장승 앞에 섰다. “그 장승 만지면 부부 금슬이 좋아져요”라며 꽁지머리 이장이 너스레를 떤다. 남성과 여성을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장승의 모양 때문이다. 먹통이 된 휴대폰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기자에게 “휴대폰 족쇄를 끊고 푹 쉬라고 기지국을 거부한 거예요”라며 최종변론(?)을 한다.

산 좋고 물 좋고 거기다 사람까지 좋은 운수골. 휴대폰 따위 안 되면 어떠한가. 불편함을 넘어서는 운수대통 운치가 이곳에 서려 있는데 말이다.

〈경향닷컴 이윤정기자 yyj@khan.co.kr〉

숙박
꽁지네 마을에는 따로 숙박시설이 없다. 이장에게 전화하면 마을 주민 민박을 소개시켜 준다. 033-442-7077

맛집
큰바위가든 마을 안에는 식당이 없다. 마을을 나와 46번 국도를 타고 화천 쪽으로 가다 보면 큰바위가든이 보인다. 오리, 토종닭, 막국수 요리를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033-442-6805

가는길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방향으로 향한다. 추곡터널을 지나자마자 운수골 팻말이 보이고 구불구불 언덕길을 따라가면 마을 입구가 보인다. 대중교통은 춘천에서 18번 시내버스 오항리행을 탄다. 상추곡에서 내리면 운수골 팻말이 보인다. 여기부터는 대중교통편이 없다. 구불구불 언덕길을 따라 꼬박 1시간 20분을 걸어야 마을 입구에 다다른다.

[길,숲,섬]사람이 만든 섬,화천 붕어섬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화천 붕어섬은 잔잔했다. 인터넷에서 본 왁자지껄한 축제의 모습은 겨울에는 찾을 수 없나보다. 이따금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치 길에 줄이라도 그어 놓은 듯 반듯하게 종종걸음으로 지난다. 서울의 한강 고수부지 나가듯이 동네 사람들이 운동하러 나온 모양이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섬을 둘러봤다.

[화보] 화천'붕어섬'





산에서 섬으로

이곳은 원래 산이었다. 사실 산이라기보다 약간 높은 언덕 정도다. 언덕 아래는 늪이 있어 ‘늪버덩’이라 불렸다. 1965년 춘천댐이 완공되면서 언덕은 섬이 됐다. 화천 파로호까지 이어진 물길은 주변 경관을 새롭게 바꿨다. 물속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열렸다. 풀이 많은 늪지에 물이 채워져 참붕어들이 많이 살았다.

붕어들이 많으니 낚시꾼들이 몰렸고 늪버덩은 붕어섬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화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붕어섬에 도착한다. 섬을 둘러보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주변을 둘러 포장된 산책로가 있고 중앙에는 나무와 잔디를 심었다. 야외 공연장, 수영장도 마련됐다. 섬의 안쪽 끝에는 테니스 코트가 있고 잔디가 심어있는 소형 축구장도 있다.

넓지 않은 섬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놨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 아이들과 나와 놀기 좋은 곳이다. 자전거를 대여해주기도 하고 작은 매점에선 간식꺼리를 판다. 섬이 된 언덕은 이제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사람이 만든 섬

붕어섬이란 이름이 붙었듯이 이곳의 가장 큰 변화는 붕어가 많이 잡힌다는 것. 낚시꾼들이 몰려들었다. 지금도 붕어 낚시에는 손꼽히는 장소다. 꽤 오래 알려진 섬이었지만 다리도 없었고 편의시설도 없었다. 배를 타고 접근하던 섬에는 지역 사람들의 관심으로 다리가 놓였고 나무가 심어졌다. 산책로도 만들어지고 섬은 낚시터가 아닌 휴양지로 자리 잡았다. 1997년에는 군에서 휴양지로 구성하면서 여러 시설을 만들고 정식 개장했다. 그 후로 댐을 만들다 생겨난 섬은 휴양지로 거듭났다.

최근 화천 붕어섬은 축제의 중심지다. ‘물의 나라 화천’이라고 불릴 만큼 물과 관련된 축제가 많은 화천에서 이곳은 중요하다. 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산천어 축제가 열린다. 여름이면 열리는 ‘쪽배축제’ 역시 이곳에서 열리고 화천 ‘비목하프마라톤’의 결승점 역시 이곳이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섬이 사람에게 즐거움으로 보답하고 있다.

자연공원 vs 체육공원

섬의 끝에 테니스장에 가까워지니 아이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얼음 깨지는 소리까지 들리던 조용한 섬의 입구와 상반된 분위기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연습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화천 산양초등학교 테니스부란다. 학교 시설물 보수 중이라 섬의 테니스장에서 매일 연습한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이 제 몸뚱이만한 라켓을 휘두르는 모습은 진지했다. 새로운 세대에게 붕어섬은 뛰어놀고 공부하고 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섬을 걸어 나왔다. 지나는 사람 말로는 봄부터 붕어섬은 바빠질 것이란다. 주말엔 면회객들이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나눠먹고 여름에는 축제로 북적인단다. 넓은 땅을 가진 화천임에도 대부분이 산이라 마땅히 자연을 즐길 자리가 부족했다. 하지만 붕어섬이 화천군민의 휴식처로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산책하고 운동하고 여름엔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자연공간으로 붕어섬은 사람이 만든 또 하나의 자연이다.

<경향닷컴 이다일기자 crodail@khan.co.kr>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경춘국도를 탄다. 청평, 가평을 지나면 춘천 못 미친 지점에서 화천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호반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2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버스는 서울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다닌다. 화천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붕어섬은 걸어서 10분 거리.

숙박/
화천은 대규모 숙박시설이 없다. 숙박은 펜션이나 여관이 대부분이다. 주로 외박 나온 군인이나 소규모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읍내에 밀집해 있고 시설도 대부분 비슷하다.
대성장여관/ 033-442-2168
덕성파크/ 033-442-2204
로터스모텔/ 033-442-6974

맛집/
대청마루/ 군청앞 골목에 있다. ‘자시라포크’ 요리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033-442-1290
다정한식/ 하리에 있다. 돌솥 알 비빔밥이 별미다. 033-442-0006
청기와집/ 군청 앞에 위치. 민물매운탕이 유명하다. 033-442-4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