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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에 밥 말아먹고 장구 치고 나오너라. -전래동요 요즈음에는 웬만한 가정마다 김치냉장고가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싱싱한 김장김치를 꺼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불과 몇 해 앞까지만 하더라도 해마다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4월 중순쯤이면 지난 겨우 내내 우리들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던 맛갈스런 김장김치가 한창 시어터질 때였다. 장독 두껑을 열면 오래 묵은 김치 특유의 시큼한 내음이 나면서 입에 넣으면 너무 시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갖은 양념을 넣어 애써 담근 김장김치를 버리자니 아깝기 그지없다.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여도 제맛이 나지 않고, 그냥 먹자니 군내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어머니께서 김치콩나물국을 끓이는 방법은 그리 어렵게 보이지 않았다. 그저 냄비에 된장을 조금 푼 뒤 국물멸치와 부엌칼로 숭덩숭덩 썬 김치, 잘 씻은 콩나물을 넣고 쌀뜨물을 부어 보글보글 끓이다가 찧은 마늘과 송송 썬 대파와 양파, 고춧가루, 집간장 등을 넣으면 그만이었다. "아빠! 배고파 죽겠어. 반찬 뭐 있어?" "오늘 아침에 네 외할머니께서 갖다 주신 어묵조림하고, 멸치조림 밖에 없는데?" "그거 말고 좀더 맛있는 거 없어?" "김치볶음밥 해줄까?" "아니. 특별한 거 없으면 콩나물국이나 끓여줘." "콩나물국?"
큰딸 푸름이에게 가까운 슈퍼에 가서 콩나물 천 원 어치를 사오라고 시킨 나는 곧바로 냄비에 국물멸치와 다시마, 양파, 매운고추, 대파을 넣고 물을 부은 뒤 맛국물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때 내 어머니께서 하시던 것처럼 부엌칼로 숭덩숭덩 잘랐다. 사실, 김치콩나물국을 끓이는 방법은 쉽다. 냄비에 된장 한 수저와 고춧가루를 조금 넣은 뒤 맛국물을 약간 붓고 된장을 잘게 으깬다. 이어 숭덩숭덩 썰어놓은 김치와 잘 씻어놓은 콩나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국이 끓으면 위에 뜨는 거품은 모두 걷어내고, 송송 썬 대파와 양파, 매운고추, 빻은 마늘을 넣은 뒤 집간장으로 간을 보면 끝.
"푸름아! 아빠가 끓인 김치콩나물국 맛이 어때?" "으응,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 "그래. 아빠가 뜨거운 걸 먹으면서 자꾸만 시원하다고 하는 그 맛을 이제는 좀 알겠니?" "그 맛이 무슨 맛인지 이젠 알겠어. 아빠! 이 국 이거 많이 끓여놓았지?" "왜?" "내일 아침에도 이 국에 밥 말아먹고 갈려고." 그날, 내가 어릴 때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며 끓여낸 그 김치콩나물국은 인기가 참 좋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늦게 돌아온 둘째 딸 빛나도 김치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나 또한 내가 끓인 김치콩나물국에 밥 한 그릇을 말아 파김치와 함께 먹으며 땀을 흠뻑 쏟아내고 나자 온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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