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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9차례 구청장’ 정영섭 광진구청장

“국회의원 욕심탓 지방자치 왜곡”
‘26년간 9차례 구청장’ 정영섭 광진구청장

3選연임 제한으로 곧 퇴임
“힘 줄어들까봐 공천권 휘둘러”

‘직업이 구청장’인 사람이 있다. 자기소개서 직업란에도 아예 ‘기초단체장’이라 쓴다. 공직 49년 중 26년간 서울에서 구청장을 아홉 번 한 정영섭(鄭永燮·74·사진) 광진구청장. ‘민선 자치단체장 3선 연임 제한’ 규정에 따라 한달 후면 공직을 떠나는 그가 정치인과 공직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경험에서 나온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 구청장은 26일 “국회의원들 욕심 탓에 지방자치가 왜곡되고 낭비가 커졌다”고 말했다.

“시장·군수·구청장에 대한 정당 공천은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시작되면서 예전 국회의원이 독점하던 주민 민원을 구청장 등이 많이 가져가게 됐습니다. 그러자 국회의원들이 자신들 힘이 줄어들까봐 이들에 대한 공천권을 서둘러 확보한 겁니다.”

정 구청장은 지방의원 숫자가 쓸데없이 많은 것도 국회의원들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 봤다.

“보통 1개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시·도의원은 2명 뽑습니다. 국회의원과 시·도의원 선거구 크기가 같으면 자리가 위태로워질까봐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만든 겁니다. 시·도의원이 국회의원 출마하겠다고 나설 수 있으니까요.”

같은 선거구에서 기초의원도 뽑고 광역의원도 뽑는 현행 지방의원 선발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고 했다. 그는 “기초의원부터 뽑고, 그 중 득표가 많거나 호선(互選)으로 선발된 기초의원들에게 광역의원도 겸하도록 하는 게 낭비를 줄이는 방법인 것 같다”고 했다.

정 구청장은 경북 의성에서 고교까지 나온 후 경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서울시에 임시직으로 들어갔다. 1년 뒤 시험을 쳐 정규직(8급)이 돼 서울시와 구청을 돌아다녔다. 임명직 도봉·성북·종로·동대문·중구·강남구청장을 거친 뒤 민선 광진구청장을 세 번 했다.

그는 후배 공직자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어느 자리에 가든 그 직무에 6개월간 미쳐야 합니다. 관련 전문 서적을 2권 이상 읽고, 자료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으세요.”

큰 사고 없이 공직을 마친 비결도 얘기했다. “1980년 제가 성북구청장을 할 때 이원종(李元鐘) 현 충북지사가 용산구청장으로 처음 나가면서 ‘한 수 가르쳐 달라’ 하더군요. ‘이권 앞에 바보가 되라’고 조언했습니다. 큰 인·허가 해줄 때 법적 문제가 없으면 편하게 결재해 주라는 얘기입니다. ‘내가 결재해줘서 저 사람이 100억원을 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업자가 뇌물을 갖고 옵니다. 이원종씨가 나중 서울시장 됐을 때 저에게 ‘덕분에 시장까지 될 수 있었다’고 감사해 하더군요.”

그는 그러나 자신도 평생을 깨끗하게만 살지는 않았다고 했다.

“1966년 성북구에서 위생과장을 했습니다. 중국집은 얼마, 일식집은 얼마 하는 식으로 업태마다 허가 가격이 매겨져 있더군요. 허가 서류를 하루 종일 결재하고 나면 계장이 와 ‘얼마 들어왔다’고 살짝 보고하곤 했어요. 전 ‘무리하게 하지는 말라’고만 했습니다. 나눠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주 깨끗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부정부패 안 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이었지, 완결은 없다고 봅니다.”

그는 그래서 부하들에게도 “부정부패 하지 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했다. “그런 말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대통령도 국민에게 그런 말 할 자격 없다”며 “그런 자격 있는 지도자를 아직 못 봤다”고 했다.

그래도 비리에 대한 경고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자신의 명예와 자식을 생각하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자식 얼굴이 떠오르면 비리 못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가 되면 먼저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고도 충고했다. “안 그러면 부하들이 ‘너 알아서 할 건데 내가 아이디어 낼 필요 있나’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구청장은 자기 아이디어가 있어도 부하들이 그 아이디어를 내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요새 지도자들은 그게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결론을 언급하면 아랫사람이 거기 맞추려고만 합니다. 대통령과 장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제 공직을 떠나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조용히 지낼 것”이라 했다. “구민들에게 약속한 것을 마무리하는 작업도 거의 끝나 편히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글=박중현기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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