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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주몽>, 민족의 '알'을 계란으로 만들다

<주몽>, 민족의 '알'을 계란으로 만들다
[주장] 시청률이 앗아간 민족의 자긍심
김혜원(maskmirror) 기자
ⓒ MBC
'건국 신화'를 대하드라마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우려했던 대로 MBC <주몽>은 소위 '사실성'의 덫에 빠져 있다. 신화의 세계조차 리얼리즘의 잣대로 재단한 결과, <주몽>은 손에 잡힐 듯한 실물감을 획득한 대신 신성(神性)과 아우라를 잃었다.

신화는 한낱 TV 영웅의 성공 스토리로 격하되었다. 신화의 문법은 애초에 배제되었다. 일견 허술해 보이지만 무한한 비밀의 고리들로 연결된 신화와 달리, 드라마 <주몽>의 전개는 고구려 건국이라는 결말만을 향해 도식적이고 자의적으로 진행된다.

▲ MBC <주몽>의 송일국이 극중 아버지 해모수(허준호 분)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촬영해 공개한 사진.
ⓒ MBC
초반에만 등장할 예정이었던 해모수는 예상을 뛰어넘는 시청률 덕에 12회까지 등장하면서 '20년' 더 장수했다. 소소한 에피소드와 관계망으로 얽힌 주몽과 그의 시대는 우리를 고대사가 아닌 권모술수로 얼룩진 무협의 세계로 안내할 뿐이다.

민족의 신성한 기원을 담은 건국 신화는 이렇게 해서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난 한 청년의 출세기가 되었다. 똑같은 수모와 죽음의 과정을 두 번 반복한 해모수(허준호 분)는 처절한 노예적 삶을 통해 아들을 각성시킨다.

신화의 배제는 결과적으로 드라마가 모토로 삼은 '민족의 자긍심'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왔다. 건국 영웅에게는 그 무엇보다 신성한 혈통이 중요시된다. 정통성이 없다면 훗날 역사를 소급해서라도 권위를 부여한다.

서해 용왕의 딸 저민의가 왕건의 할머니로 <고려사>에 편입되고, 조선왕조가 <용비어천가>를 통해 태조 이성계의 6대조까지 거슬러 우상화시킨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고구려의 건국 시조가 하늘의 혈통도 왕가의 핏줄도 아닌 '반란군의 괴수'의 자식이라니! 천신(天神)으로서 오룡이 끄는 수레를 타고 다녔던 신화 속의 해모수는 21세기 사극 속에서 일개 반란군의 장수로 격하되었다. 태양신의 아들답게 햇빛이 이중 잉태시킨 '거대한 알' 고주몽의 탄생신화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MBC 세트장의 주몽(송일국 분)은 지렁이처럼 천대받는 사생아일 뿐이다. '강의 신' 하백의 딸이며, 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에 비견될 '곡모신(穀母神)' 유화 또한 아비 모를 애를 낳은 금와왕의 후처에 지나지 않는다.

신화학자 조현설 교수는 저서 <우리신화의 수수께끼>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고대 국가를 세운 왕들은 대개 최고신인 천신(天神)의 자손들이다. 가부장제의 틀이라 할 '아버지 찾기'에 골몰하는 것은 대개 그 후손들의 일이다. 고구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홀연히 승천해 버렸다. 건국 영웅의 마지막 모습은, 천신의 자손들이라 지상의 과업을 마치면 하늘로 돌아간다. 그게 신화의 논리다."

신화적 상상력도 왕의 신성한 탄생과 죽음도 없는 21세기의 '퓨전' 역사 드라마 <주몽>은 오직 시청률만이 신성한 권능임을 약삭빠르게 간파한 상업 논리의 소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