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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신 연구원 ‘괴력의 비밀’ 규명


강력 본드도 놀란 홍합의 접착력
在美 이해신 연구원 ‘괴력의 비밀’ 규명
바위에 붙으면 칼로 긁어내야 떨어져 지름 2㎜ 실모양 패드가 12.5㎏ 들어
수술부위 봉합등 생체 접착제로 활용

▲ 홍합은 실같은 접착 단백질을 표면에 붙이는데 칼로 긁어내야 접착 부위를 겨우뗄 수 있을 정도로 접착력이 강력하다./미 노스웨스턴대 제공
어떤 물체에 달라붙는 힘이 가장 센 생물을 꼽으라면 단연 홍합이다. 홍합이 한번 바위에 착 달라붙으면 칼로 긁어내야 가까스로 떨어질 정도다. 최근 미국에 유학 중인 젊은 과학자가 이런 홍합의 강력한 접착력에 얽힌 비밀을 단일 분자(分子) 수준에서 새롭게 밝혀내 ‘사이언스’ ‘네이처’지 등에 잇따라 소개됐다.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 분야 과학자들은 홍합의 접착성질을 이용, 수술부위를 봉합하는 의료용 접착제를 개발하고 있다.

◆‘포스트잇’ 수만장 모여 최강 접착제로

미국 노스웨스턴대 생의학공학과 박사과정 이해신(李海臣·33) 연구원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 14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홍합을 바위에 달라붙게 하는 접착 단백질의 힘을 단일 분자 수준에서 처음으로 규명했다”며 “그 힘은 지금까지 생물체에서 알려진 가장 센 결합력의 4배”라고 밝혔다. 이 연구원이 제1저자인 논문은 이날짜 ‘주요논문(article highlight)’으로 소개됐다.

보통 접착제는 물에 약하지만 홍합은 오히려 물 속에서 접착력이 더 세진다. 골절이나 수술부위를 봉합하는 의료용 접착제로 각광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접착력이 워낙 세다 보니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개발에 걸림돌이 돼 왔다.

연구팀은 물질 표면의 미세한 굴곡을 측정하는 원자력현미경의 탐침(探針)에 홍합 접착물질을 붙여 그 힘을 측정했다. 이 연구원은 “놀랍게도 바위와 같은 무기(無機)물질에 붙는 수만개의 분자 하나 하나는 마치 포스트잇과 같이 붙였다 떼어지기를 반복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포스트잇 수만장이 모여 폭풍우에도 끄떡없는 접착제가 된 셈이다.

홍합은 지름 2㎜의 가는 실 모양의 접착패드(pad)들을 이용, 바위에 달라붙는다. 이 연구원은 “측정결과 접착패드 하나가 12.5㎏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홍합은 보통 10개 정도의 접착패드를 만든다. 따라서 홍합 하나가 무려 125㎏의 물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

◆대량생산이 상용화 관건

홍합 접착력의 비밀은 1980년대에 일부 밝혀졌다. 현재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타바버라 캠퍼스(UCSB)에 재직 중인 허버트 웨이트 교수는 당시 홍합의 접착패드에 있는 ‘다이하이드록시 페닐알라닌(DOPA)’이 접착력의 근원임을 밝혀냈다. DOPA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하나인 ‘티로신’이 변형된 물질이다.

홍합 접착제가 실용화되려면 먼저 대량생산이 가능해야 한다. 1g의 생체 접착제를 얻기 위해선 무려 1만 마리의 홍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격도 1g당 9000만원에 육박해 현재로서는 경제성이 없다. 이 때문에 이해신 연구원의 지도교수인 필립 메서스미스(Phillip Messersmith) 교수는 따로 회사를 차려 대량생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KAIST 이상엽 교수와 포항공대 차형준 교수가 홍합의 유전자를 대장균 DNA에 삽입해 접착제 단백질을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개발한 바 있다.

▲ 이해신 연구원
◆도마뱀 발바닥과 결합 시도

홍합은 고래의 등이나 수초 같은 유기(有機)물질에도 달라붙는다. 이 연구원은 DOPA가 바닷물에 의해 산화되면 유기물질 표면에 있는 화학분자와 결합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경우, 무기물질에 붙을 때와 달리 DOPA가 더 이상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접착력은 더 강해졌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 유기물질인 피부에 달라붙어 세균을 막아내는 보호막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생체 접착제는 박테리아들의 군집인 ‘바이오 필름(biofilm)’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접착제는 아니지만 천장에 거꾸로 달라붙게 하는 도마뱀 발바닥의 미세 털 구조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이 연구원은 나노기술을 이용해 도마뱀과 홍합을 결합해 명실공히 최강의 생체 접착물질을 개발하려고 연구 중이다.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