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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와 알이 꽉 찬 청어구이

"맛있기로는 청어가 제일이지"
[맛객의 맛있는 이야기] 이리와 알이 꽉 찬 청어구이
김용철(ghsqnfok) 기자
▲ 청어를 며칠 말려서 구우면 더욱 맛있어진다.
ⓒ 맛객

하루 종일 작업실에 갇혀 있다가 바람 쐬러 나가는 장소가 시장이다. 시장에 간다는 건 단순히 장을 보기 위한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정신의 휴식이고, 운동이고, 사람들과의 어울림이다. 무엇보다 여러 가지 식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날은 청어를 만났다.

"이거 얼마예요?"
"3000원입니다."


싱싱한 생물 청어 7마리가 3000원밖에 안한다.

"비늘만 벗겨서 주세요."
"소금 뿌리지 말구요?"
"아뇨 뿌려주세요."


기억이 묻어 있는 음식, 그런 음식을 대하면 정서적 교감이 생긴다. 어린 시절 많이 먹었던 청어, 고등어, 갈치 같은 생선은 기억 저편의 추억을 끄집어내준다. 비록 죽은 생선이지만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살려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구경도 못하고 살았던 삼치나 아귀 같은 생선과는 아무런 교감도 나눌 수가 없다. 그저 하나의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도 느낌도 없는 무생물의 존재다. 기억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음식은 가장 오래 기억되게 하는 힘이 있기에 가장 확실한 추억이 된다.

지금 사들고 가는 이 청어는 청어가 아니다. 아련한 고향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는 그 '누구'가 아닐까. 그 시절 명절이면 10여종의 생선이 차려졌다. 상어를 비롯해 전어, 청어, 조기 등등. 생선의 맛보다 잔가시가 더 기억에 남았는데 그 생선이 청어였다.

도시의 음식에서 청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꽁치나 고등어, 삼치 같은 생선에 비해 먹기가 불편한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맛만큼은 청어가 제일이다. 그래서 '맛있기로는 청어고 많이 먹기로는 명태'라는 말도 회자되지 않던가.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가 다시 청어를 만나는 기쁨은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고향을 방문한 기분과도 같다.

청어를 노끈으로 엮어서 옥상에 매달아 놓았다. 생선은 말리면 아미노산 성분이 증가해 맛도 증가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겨울이다. 생선말리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3~4일 말렸더니 꾸덕꾸덕해진다.

2마리를 물에 잘 씻어 쿠킹호일로 감쌌다. 이제 석쇠에 올려 굽기만 하면 된다. 연탄불이나 장작불이면 금상첨화겠지만 아쉬운 대로 가스 불에 굽는다. 이때 주의할 점은 직접 불에 닿으면 안된다. 익기도 전에 타버리기도 하지만 안 좋은 향미가 배어든다. 불에서 10~15센티 정도 떨어지게 굽다가 간간히 불에 대주면 된다.

그렇게 10여분 정성들여 굽다 보면 청어는 '맛있게 구워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라도 하듯, 구수한 냄새를 선물한다. 자글자글 익는 소리, 피시시 내뿜는 냄새, 노릇노릇 구워지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신경이 꿈틀대며 살아나 미감을 높여준다.

▲ 알을 가닥 배고 있는 청어, 톡톡 알 터지는 맛이 제법이다.
ⓒ 맛객

▲ 알과 알 사이에 치즈를 넣고 구웠다.
ⓒ 맛객

▲ 술안주로 그만이다.
ⓒ 맛객

▲ 고소한 청어알치즈구이.
ⓒ 맛객

크기가 좀 크고 배가 부른 게 암놈이다. 알이 가득 뱄다. 씹어 먹으면 알 터지는 소리가 청청하게 귀를 간지럽힌다. 재밌는 맛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어 알을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정월 요리에 빠뜨리지 않고 값도 비싸다고 한다.

▲ 이리가 가득 들어있는 청어구이.
ⓒ 맛객

▲ 고소하고 담백한 청어 이리, 버터처럼 찐득하면서 부드럽다.
ⓒ 맛객

▲ 이리와 알을 따로 모아 찜을 했다.
ⓒ 맛객

수놈의 뱃속은 더욱 알찬 진미를 품고 있다. 조심스레 뱃살을 벗기면 미색의 이리가 부드러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어쩌면 청어를 먹는 이유도 이 이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천연의 버터라고 해야 할까. 찐득한 이리가 입 속에 들어가서, 고소한 맛만 남기고 모습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 청어를 며칠 말리면 고기같은 식감을 느낄 수 있다.
ⓒ 맛객

청어 육질은 마치 고기와도 같다. 말리지 않은 청어는 한 없이 부드럽지만, 반 건조한 청어는 생물에 비해 빛깔도 붉어질 뿐 아니라 '씹힘성'도 강화된다. 청어에 비하면 삼치나 고등어는 만만한 생선이다. 이처럼 맛있는 청어, 맛이 있기에 잔가시 정도의 불편함은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청어는 겨울에 찾아온다. 한때 구룡포 일대 바다에서는 지천에 널린 게 청어였다고 한다. 너무 많이 잡혀 처치 곤란해서 말리다 보니 생겨난 음식이 과메기다. 그 정도로 많았던 청어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바다의 수온 상승이 한대성 어종인 청어를 우리 연근해에서 몰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청어에 대한 추억 한 토막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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