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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정치 10단` 세종이 필요하다`

"우리도 '정치 10단' 세종이 필요하다"

SBS '뿌리깊은 나무' 숨막히는 정치액션으로 화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세종은 대신들 모르게 은밀히 한글창제를 추진한 건 명백히 자신의 과오라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왕의 행동에 깜짝 놀란 대신들은 얼결에 고개를 조아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왕이 던진 '수'의 진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따지느라 분주했다.


왕은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금쪽같은 아들을 잃었다. 그러나 평정심은 잃지 않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지만 대의를 위해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다.

뼛속까지 사대주의, 중화사상에 물든 대신들은 왕의 새로운 글자 창제가 '천하를 지배하는 글자'인 한자를 거스른다고 반대했지만 왕이 아들을 잃고도 뜻을 접지 않자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려 한다. 하나는 한글 반포와 유포이고, 또 하나는 비밀결사 조직 밀본의 소탕이다.

종영을 3회 앞둔 SBS 수목극 '뿌리깊은 나무'가 정치 실종의 시대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무릎을 치게 하는 대리만족을 안겨주고 있다.

드라마가 주인공으로 내세운 조선 4대 왕 이도(한석규 분), 훗날 세종대왕이라 추앙받게 된 인물의 모습은 역사 속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 때문에 '판타지'가 아닌 '가능한 현실'로 다가온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게시판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세종이 필요하다"는 염원을 쏟아내며 드라마가 아닌 현실세계에서 '세종의 재림'을 바라고 있다.






◇스릴 만점의 숨막히는 정치 액션 = '뿌리깊은 나무'는 사극이지만 그 어떤 현대극보다 진한 스릴을 안겨주는 숨 막히는 정치 액션 드라마다.

말로 주고받는 탁상공론의 정치가 아니라 치열한 사상 공방과 지략 싸움 속에서 곳곳에 액션의 기운이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

그렇다고 우리의 국회처럼 해머와 최루탄이 등장하는 난장판은 아니다. 왕과 대신, 밀본의 세력들이 머리에서 김이 나도록 생각하고 논쟁하고 세 대결을 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이같은 정치 액션의 색깔은 밀본의 수장 정기준(윤제문)의 정체가 드러난 후부터 선명해졌는데, 드라마는 정기준과 이도의 한치의 양보 없는 사상, 세계관, 지략 대결을 통해 한 장면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특히 지난 14일 방송에서는 밀본을 분열시키려는 이도의 책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서로 믿지 못하는 밀본 구성원들간의 혼란까지 가세해 흥미를 더했다.

◇'정치 10단' 세종대왕 = 세종대왕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로 평가받는 한글을 창제한 천재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훌륭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더욱 위대한 것은 한글을 반포하고 유포한 데 있다는 사실을 '뿌리깊은 나무'는 일깨워주고 있다.

드라마는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몰랐던 부분을 확대해 한글이 반포되기까지의 치열했던 과정을 조명하면서 세종이 천재인 동시에 '정치 10단'의 지혜로운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14일 방송에서 세종은 대신들에게 사죄, 선언, 제안을 했다.
그는 한글 창제를 대신들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집현전 학사와 자신의 아들 광평대군이 밀본에게 살해된 것에 대해 전격적으로 사과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세종은 광평대군은 밀본이 살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이라고 규정하며 밀본에게 어떤 처벌도 내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글자를 반포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나와 다른 정치관을 가진 붕당을 인정한다"며 "그들과 (한글에 대해) 토론하고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신들 사이에 숨어 있을 밀본의 조직원을 향해 스스로 밀본임을 밝히고 조정 앞마당에 나오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살인을 저지른 밀본의 수장 정기준은 처벌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조직원들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세종의 이런 전격적인 행동은 밀본 세력을 즉각적으로 교란시켰다. 또한 밀본이든 아니든 한글 창제에 대해 왕에게 동시에 칼을 겨누던 사대부와 대신들은 왕의 굽히지 않는 의지와 견고한 논리, 한글 반포에 담긴 진심 등에 조금씩 곁을 내주던 와중에 왕이 가한 회심의 일격으로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익만 좇는 정치권·기득권의 위선 풍자 = '뿌리깊은 나무'의 또 다른 미덕은 정치권과 기득권의 이기심을 까발리고 그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데 있다.

드라마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사대부가 세를 키워야 한다는, 정치적인 올바름에서 출발한 밀본의 존재를 가정한다. 밀본은 나아가 권력의 뿌리는 백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글 반포 앞에서 밀본은 속내를 드러낸다. 명백하게 백성 위에 자신들을 놓고 백성에게 절대로 글자를 가르쳐줄 수 없다고 한다. 글자는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한글 창제에 대한 반대가 한자 중심 세계관이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 못지않게 글자를 아는 식자층이 기득권을 지키려던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지금껏 '무시'돼왔던 사실을 드라마는 꺼내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을 가미한 퓨전 드라마이긴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가 그리는 한글 반포 직전의 혼란상은 이내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개연성이 높다.

60대 시청자 이성부(68) 씨는 "드라마를 보니 실제로 당시 사대부들이 얼마나 반대를 했을까 싶더라. 드라마보다 더 지독하게 반대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정기준은 "밀본의 분열보다 글자의 유포를 막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글을 그 누구도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글자를 유포하려는 세종에게 "왕이 백성에게 해줘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귀찮은 마음에 백성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고 백성보고 알아서 하라는 것 아니냐"고 꼬집지만 사실은 사대부의 세상이 무너질까 우려하는 것이다.

이렇듯 드라마가 까발리고 풍자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물론 씁쓸하다. 하지만 시원하다. '뿌리깊은 나무'의 힘이다.





pretty@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1/12/15 11:15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