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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3> '선비' 장훈씨 '선비' 장훈씨 -사진집 ‘다시 돌아와 본 서울’에 실린 1952년 세종로 모습. 광복 후 10년 넘게 도시계획과장 맡아 대방·한남 등 7곳 구획정리사업 끝내 많은 사람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을 전후에 곧바로 도시계획을 세워 재건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지금의 소득 수준에서나 가능한 주장일 뿐이다. 전쟁 직후 1953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으며. 대다수 서울 시민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한때 동료였던 박유서(한국전쟁 당시 서울특별시 공보계장)는 "예산도 부족한 정부가 서울 재건을 위해 사유재산을 몰수해가며 도시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다. 전쟁에 시달린 시민이 하는 일을 조금씩 도와줘 그들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회고했다. 한국전쟁 뒤 .. 더보기
(2) 잿더미 서울-한국전쟁 [서울 만들기] (2) 잿더미 서울-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된 서울 시가지 서울은 6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지만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은 손꼽을 정도다. 근대화 과정에서 개발 바람으로 헐린 건물도 많다. 하지만 서울의 모습을 송두리째 뒤바꾼 것은 바로 한국전쟁이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한강다리가 끊어져 서울을 떠나기도 어렵게 된 나는 신당동 친척집 지하실에 숨어지내며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을 읽었다 어둠 속 독서에 지쳐 후암동에 있는 은사댁을 다녀오기 위해 남산에 오른 1950년 7월 16일의 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당시 울창한 솔밭이었던 남산을 오르려면 오솔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폭이 너무 좁아 차량은 다닐 수 없었다. 지금.. 더보기
(1) 서울특별시 탄생 [서울 만들기](1) 서울특별시 탄생 -1960년대 초 서울의 모습. 오른쪽 긴 도로가 을지로, 왼편이 종로, 그 가운데가 청계천으로 종로 끝 부분에 동대문이 보인다 서울은 특별시다. 1천만 서울 시민의 의식 속에는 '나는 특별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다.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의 어느 신도시로 이사한 한 지인은 차량 번호판을 '경기'로 바꿔 기분이 심란했다고 고백했다. 나라마다 수도(首都)가 있지만, 특별시란 이름을 가진 수도는 서울이 유일하다. 많은 사람은 "서울은 특별하니까, 또는 수도니까 특별시라고 부르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서울이 특별시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서울시에 근무하던 1970년대까지 나도 서울특별시란 이름이 어떤 뜻으로 지어졌는지 몰랐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