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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
1998년에 발간된 상권에 이어 2년여만에 하권이 나왔다. 방북답사기로 꾸며진 상권에 비해 하권은 금강산 답사기만으로 엮었다. 저자는 고은, 김주영, 최창조 등과 함께 금강호를 타고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금강산을 답사하여 이 답사기를 썼다. 부록으로 금강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금강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이라는 논문과 분단 후 최초의 북한 답사자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을 북한 답사 여록에 담았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는 당대 이름난 화가와 문인들의 그림과 글을 통해 금강산의 의미를 살펴보고, 2부에서는 현재 금강산 관광코스로 가볼 수 있는 외금강과 해금강을 담았다. 마지막 3부에서는 아직 일반인에게는 미공개 지역인 내금강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예부터 금강산은 '서부진(書不盡) 화부득(畵不得)'이라고 해서 '글로써 다할 수 없고 그림으로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금강예찬(金剛禮讚)'이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사진과 저자의 금강산에 대한 찬미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뉘엿뉘엿 기우는 해 서산을 넘고 (峠峠山頭日)선들선들 물결 위에 바람 스치네. (凉凉水上風)신선들 떠나가고 정자가 비니 (亭虛仙去後)두세 그루 소나무 시름겨운 듯...... (愁倚兩三松......)해마다 비바람만 세차게 불어오니 (風兩年年惡)사선정 초가 지붕 일부러 낮추었으리. (茅詹故故低)신선들 올라와서 구경하던 곳 (仙人登眺後)오늘은 우리가 찾아왔노라...... (吾輩復逍遙......)-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사선정에 올라(登四仙亭)' |
지은이 소개 | |
유홍준 우리 국토 전체가 박물관이요 문화유물의 보물고임을 깨우쳐 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덕분에 `박경리의 토지가 한국의 정신적 GNP를 올려놓았다면 유홍준은 우리나라의 면적을 열 배는 넓혀놓았다'는 평을 얻었다. 그가 미술사에 빠져 들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군 복무 중이던 유홍준은 재미 삼아 미술사 서적을 뒤적이다가 아예 푹 빠져들어, 휴가만 나오면 박물관을 찾아가 살았다고 한다. 유홍준은 박물관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둘이나 만났다. 하나는 평생 그의 직업이요 낙이 된 미술사 연구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아내였다. 게다가 그의 아내는 답사여행을 핑계로1년에 서너달씩 집을 비우는 유홍준을 변함없이 이해하고 성원해 줬다. 이처럼 박물관으로부터 신세를 많이 진 유홍준은, 그러나, 신세진 바를 글에 쏟아부어 미술사와 문화 유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폭발시킴으로써 톡톡히 신세를 갚은 셈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는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다. 출간 후 불과 4년 만인 1997년 봄 학기부터 중학교 3학년 용 국어 교과서에 1권의 서두인 「월출산과 남도」가 실리게 된 것이다. 생존 작가의 작품이, 그것도 이처럼 빨리 교과서에 실린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유홍준은 서울대 미학과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무기정학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어렵사리 복학했지만 민청학련 사건에 또다시 연루돼 7년형을 선고 받았다. 결국 형집행정지로 풀려나기까지, 그가 `분에 넘치는 들꽃 같은 평창색시'라고 표현한 그의 아내는 결혼도 하기 전에 꼬박 1년 동안 옥바라지를 해야 했다. 덕분에 1984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 직후 건국대 미술사학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았다가 24시간 만에 취소당했다. 최종 승인과정에서 복권이 안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 해 곧바로 복권이 됐지만 그는 이 일로 몇 년을 더 시간강사로 떠돌아야 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기 전까지 그는 `겨레미술공부방'을 운영하는 의식 있는 미술평론가요, 문화유산답사회를 만들어 전국을 버스 타고 누비던 극성스런 소장학자였다. 답사여행 때마다 버스 안에서는 걸쭉한 입담의 유홍준이 펼쳐내는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 `입말본`이 대인기였다. 그러던 1991년, 「사회평론」이라는 진보적 시사문화지가 창간되면서, 당시 창간 멤버였던 안병욱 교수가 `너 맨날 버스에서 떠드는 얘기, 글로 한번 써 봐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연재를 시작했고, 2년 뒤 이것이 책으로 묶여져 나오면서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까지 잡지 「공간」과 「계간미술」 기자를 거쳤다. 글을 쓰면서 술을 끊은 대신, 바둑을 둔다. 실력은 아마 3단. 유홍준이 직접 붙인 그의 집 당호도 `수졸당`이다. |
목차 | |
1. 평양행 1 -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2. 평양행 2 - 서재동 초대소 : 서쪽 창가의 미루나무 한 그루 3. 대동강 1 - 대동강과 정지상 : 비 개인 강가에는 녹음이 푸르른데 4. 대동강 2 - 대동문과 연광정 : 천하 제일강산의 제일누대 5. 대동강 3 - 부벽루와 김황원 : 넓은 들 동쪽으로는 먼 산이 점, 점, 점 6. 대동강 4 - 칠성문과 을밀대 : 황혼의 대동강가엔 환영(歡迎)의 환영(幻影)들이 7. 보통강 보통문 : 무너진 서까래는 고치면 되겠지만…… 8. 평양 대성산성 : 드넓은 벌판을 보듬은 고로봉식 산성 9. 진파리 회상 1 - 정릉사 : 천 년의 비밀을 지켜온 우물 앞에서 9. 진파리 회상 2 - 동명왕릉 : 민족의 영웅 서사시로 다시 살아난 그분 10. 진파리 회상 3 - 진파리 벽화무덤과 평강 공주 : 아름다운 인생을 축복하는 벽화 11. 상원 검은모루동굴 : 호모 에렉투스의 살림터 12. 고인돌 기행 - 룡곡리 · 귀일리 · 문흥리 고인돌 : 고조선 거석 기념 유물의 고향 13. 단군릉 소견 : 1,994개의 돌덩이가 지닌 뜻은 14. 주영헌 선생과의 대화 : "력사적 상상력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15. 묘향산 기행 1 - 청천강과 안주들판 : 문학이 삶 속에 살아 있을 때 16. 묘향산 기행 2 - 보현사와 8각 13층 석탑 : 그리하여 산은 묘향, 절은 보현이라 했다 17. 묘향산 기행 3 - 안심사 부도밭과 만폭동 : 장엄하고도 수려한 산, 묘향산 18. 묘향산 기행 4 - 상원암과 향산호텔 : 묘향산 물은 흐르면 폭포요, 마시면 약수라 19. 묘향산 기행 5 - 서산대사의 금강굴 : 내 마음을 갈무리하는 고요한 암자 20. 북에서 만난 여인들 : 북녀의 미소 21. 조선중앙력사박물관 : 역사교육관으로서 바물관의 과제 22. 강서의 고구려 벽화무덤 1 - 덕흥리 벽화무덤 : '축소된 우주' 속의 견우와 직녀 23. 강서의 고구려 벽화무덤 2 - 삼묘리 강서큰무덤 : 아! 고구려 문화의 위대한 영광이여! 24. 평양 룡악사 : 룡곡서원의 둔암과 법운암의 백범 25. 후기 : 책의 독자를 위해 다시 글을 쓰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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