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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강八景` 어떻게 변했나

조선시대 문인이 꼽은 '한강八景' 어떻게 변했나
밤섬은 폭파돼 작아지고 게잡이 등불 있던 곳엔 대신 전자상가 불빛이…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강 워터프론트(수변도시)를 공원과 레저, 상업시설이 어우러진 체험형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조선닷컴 6월 24일 보도

한강은 예부터 많은 문인들의 소재였다. '서강팔경(西江八景=마포팔경)'이나 '용산팔경(龍山八景)'처럼 한강 주변의 경치를 꼽는 말들도 생겨났다. 서울대 국문학과 이종묵(李鍾默) 교수는 한강을 소재로 했던 '팔경'의 새 리스트를 발굴해 최근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에 올렸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박물학서 '임원경제지'의 저자로 유명한 서유구(徐有口·1764~1845)가 쓴 '부용강집승시서(芙蓉江集勝詩序)'로, 그의 시문집인 '풍석전집(楓石全集)'에 수록돼 있었다. 서유구는 지금의 밤섬 근처인 농암(籠巖)에 살았고, 그의 '한강팔경'은 여기서 바라본 강남북의 풍경들이다. 200년 전 그곳들은 과연 지금의 어디일까?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강의 모습과 정취는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①천주타운(天柱朶雲)―관악산 봉우리에 늘어진 구름

"새벽에 일어나 바라보면 한 무더기 흰 구름이 아득하게 봉우리 정상에 피어오르고, 조금 있노라면 향기로운 연기가 자욱해지고 빼곡하게 에워싸 무성해진다. 산허리에서부터 윗부분은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고 다시 조금 더 있으면 꽃송이처럼 날려 다 사라지게 된다." '천주봉'은 관악산 정상을 일컫는 것으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다.

②검단문하(黔丹紋霞)―검단산의 무늬 같은 노을

"검단산 산 빛이 깨끗하게 목욕을 한 듯 쪽빛 같다. 얼룩얼룩한 노을에 반쯤 덮인 채 위에 쪽을 진 듯 검은 머리가 몇 점 드러난다. 막 아침햇살이 엷게 비치면 오색 비단에 무늬를 넣은 듯하다." '관악산에서 서쪽으로 구불구불 치달았다 다시 솟구쳐 일어나서 산이 된 것'이라고 묘사된 '검단산'이란 금천구 시흥동 일대의 호암산을 말한다.

③율서어증(栗嶼魚)―밤섬의 고기잡이 그물

"강 한가운데 느른하게 누워 섬이 된 것이 있는데 밤섬이라 한다. 온갖 소리가 고요하고 물결이 맑은데 이슬이 물을 덮고 있다. 물고기를 잡는 그물은 대부분 밤섬의 물가에 있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밤섬은 여의도와 마포 사이 서강대교 아래에 남아 있다. 원래 '작은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1967년까지 62가구가 살면서 고기잡이 등에 종사했지만 1968년 여의도 개발 당시 한강의 흐름을 좋게 하려는 목적으로 폭파 해체한 뒤로 섬 대부분이 사라졌다.

④만천해등(蔓川蟹燈)―덩굴내의 게잡이 불빛

"밤섬을 마주하고 물길이 구불구불 돌아나가 지류가 된 것을 만천이라 한다. 게잡이 등불은 대부분 만천의 포구에 있다. 짚불이 점점이 있어 듬성듬성 별이 떠 있는 듯하다. 가는 배들의 삐걱삐걱 소리가 어부들의 노랫가락과 서로 답을 한다."

만천은 만초천(蔓草川)이라고도 하는데 '덩굴내'의 한자식 표기라고 알려졌다. 모악산(안산)에서 발원해 청파(靑坡) 남쪽 주교(舟橋·배다리)를 지나 원효대교 북단에 닿는 한강의 지류였다. 지금은 대부분 복개됐는데 그 위에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섰다. 지금 그 상가 불빛에서 등불을 켜고 게를 잡던 옛 모습이 떠오를까?

⑤오탄첩장(烏灘疊檣)―까마귀 여울의 겹쳐진 돛대

"강의 아래쪽을 오탄이라 한다. 봄날 얼음이 반쯤 녹으면 조운선(화물선)이 다 몰려든다. 멀리서 바라보면 천 척의 배 돛대가 은은한 엷은 노을과 푸른 물빛 사이로 빼곡하게 서 있다." '오탄'이란 지명은 현재 그 존재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밤섬보다 하류에 있다고 했으니 지금의 양화동이나 염창동 일대로 추측될 뿐이다.

⑥노량요정(露梁遙艇)―노량진의 흔들리는 조각배

"강의 위쪽을 노량이라 한다. 때마침 장맛비가 내리면 드넓은 강물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조각배(片艇)가 물 위에 떠 흔들흔들 가는 듯도 하고 오는 듯도 하다." 노량진은 여전히 지명으로 남아 있지만 이곳 나루에서 둥실둥실 떠 가던 조각배들의 모습은 간 곳 없게 됐다.

⑦곡원금곡( 園錦 )―비단 명주 같은 떡갈나무 동산

"강 북쪽 기슭이 마포다. 고개에 떡갈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 가을이 깊어지면 나뭇잎이 늙어 울긋불긋한 빛이 뒤섞여 흐드러진 모습이 마치 촉(蜀)나라 땅에서 나는 비단으로 나무에 옷을 입혀놓은 듯하다." '마포의 떡갈나무 고개' 역시 지금은 확인이 어렵다.

⑧맥평옥설(麥坪玉屑)―보리 심은 들판에 떨어지는 싸락눈

"동쪽 물가를 사촌평(沙村坪)이라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보리와 밀을 파종하는데 이삭이 막 패기 시작할 때 싸락눈이 갓 내리면 찬란한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옥이 이끼 위에 떨어지는 듯하다." 옥설(玉屑)이란 '옥가루'라는 뜻으로 싸락눈을 표현한 것이다. '사평'은 동작의 동쪽에 있던 마을임이 옛 지도에서 확인되는데 지하철 9호선 '사평역'이 서초구 반포동에 생겨남으로써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