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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강화도에서 " (주)강화명품"의 연구소장 자강(紫江) 권 국 원입니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저의 운명을 故 안현필선생님의 " 현미식" 과 無學이신 외할머님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순무즙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순무에 어떤 좋은 물질이 있는데‥‥ 라는 확신은 저에게 44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 1살 때 떠났던, 고향인 강화도로 낙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강화순무가 유독, 독특한 기후 등으로 강화도에서만 잘된다고 하지만, 강화도내에서도 경사져서 배수가 잘되는 황토땅에서 좋은 품질의 순무가 생산되는 것을 발견한 저는 1,000여년전의 재배환경 조성을 위해 힘이 들어도 노지 황토밭에서 유기질비료를 사용하여 약성이 강한 좋은 순무의 생산을 목표로 남들이 순무에 미친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여도 저 자신의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오직, 순무 하나에만 전념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마다 저의 머리엔, 모든 것을 순무와 연계시키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버렸고 지난, 3월뉴스보도이후 많은 분들의 "(주)강화명품 제품을 접해보신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여 "순무즙"과 "(주)강화명품의 순무가공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객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03. 11. 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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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ㅣ FAQ l 순무골 방문객 사진방 l 고객게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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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 |||||||||||||||||||
강화순무골 순무가공상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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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향토지적재산의 분류 | |||||||||||||||||||
유형의 향토지적재산 / 식생활과 관련된 것 / 부식류 | |||||||||||||||||||
3. 향토지적재산 찾아가는 길 | |||||||||||||||||||
숱한 외침에 맞섰던 항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강화도는 순무의 고장이기도 하다. 오랜 순무재배의 역사를 지닌 강화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순무 가공상품들을 생산하는 업체가 있다. 1995년에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강화순무골'은 강화군 선원면 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을 찾아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두 길 모두 지나가는 이들에게 강화도만의 독특한 정취를 안겨준다. 서울에서 승용차를 이용하여 김포를 통과하면, 곧 이어 강화도로 진입하는 강화대교를 만나게 된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강화역사관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강화도를 빙 두르는 해안도로를 타게 된다. 그 해안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펼쳐진 넓은 강화도의 갯벌 내음을 맡으며 약 5km 정도 진행하면 용진진에 이르게 된다. 용진진은 옛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던 강화도 곳곳에 외침에 대비하여 세웠던 수많은 군사시설 중 하나이다. 용진진에 도착하기 직전에 우회전하여 강화도 내륙으로 들어가는 작은 도로를 따라 약 0.8km 정도 가면 연리에 도착한다. 이 고즈넉한 농촌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어렵지 않게 '강화순무골' 건물을 찾을 수 있다. 선원면 연리를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은 해안길이 아니라 내륙의 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강화대교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오른쪽으로는 강화군청, 왼쪽으로는 강화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길이 그 유명한 천년고찰 전등사로 가는 길이다. 전등사 방향으로 약 7km 쯤 가면 선원면에 도착하게 된다. 선원면 읍내 초입에 있는 부광주유소에서 좌회전하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연리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을 따라서 펼쳐지는 안온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논과 밭, 야트막한 구릉들은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 정도이다. 주변에 펼쳐진 한가로운 시골풍경을 가로질러 약 1km 정도 진행하면 선원면 연리에 이르게 된다. | |||||||||||||||||||
4. 향토지적재산의 명칭 | |||||||||||||||||||
(1) 명칭 | 강화순무골 순무김치, 순무쥬스 등 가공상품 | ||||||||||||||||||
(2) 명칭의 유래 | |||||||||||||||||||
순무는 겨자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일본에서 많이 먹으며 항노화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의 노예들이 피라미드를 쌓으면서 먹었던 식량으로 무가 나온다. 이 무가 로마와 유럽을 거쳐 영국에 들어온 것이 1548년 이후라고 전해진다. 무를 뜻하는 'Radish'는 뿌리라는 라틴어가 어원이라고도 하고, 그 뿌리 색깔이 붉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 영국의 무를 1895년 전후 강화도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에 교관으로 초빙된 콜웨이 대위의 부인이 강화에 심었다고 전한다. 그 텃밭에 심은 영국 무가 토착화하여 강화도의 명물인 순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동양에서도 순무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순무는 옛날 중국의 제갈량이 군량미 대신 사용하였다 하여 일명 '제갈채'라고도 불리웠다. 고대의 의서인 '향약집성방'을 근거로 이미 1,000년 전부터 순무가 약재로 이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규보 선생의 '동국이상국집'에 무나 배추보다 먼저 순무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 때부터 강화도에서 순무가 재배되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아무튼 강화도에서는 옛부터 순무가 많이 재배되었는데 최근에는 '강화순무골' 대표 권국원씨가 순무를 가공한 여러 가지 식품과 생활용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권국원씨는 순무를 이용한 가공식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 순무야말로 강화도의 명물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강조하기 위해 '강화순무골'이라는 이름의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였다. | |||||||||||||||||||
5. 향토지적재산의 형성배경과 경위 | |||||||||||||||||||
(1) 형성배경 (창안동기) | |||||||||||||||||||
권국원씨는 1994년에 귀농하여 강화도의 특산물인 순무를 활용하여 명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각종 순무가공상품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 |||||||||||||||||||
(2) 경위 (전개 또는 발전과정) | |||||||||||||||||||
'강화순무골' 대표 권국원씨는 본래 농민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은행에 자리를 잡고 금융기관의 직원으로 생활하던 그가 순무를 알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지금부터 19년 전 젊은 시절에 몸을 상해 간경화로 고생하던 그는 복수가 차 올라 생명에 위협을 느낀 것만도 5차례나 되었다. 당시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하던 중에 순무를 지속적으로 섭취하여 효험을 본 그는 순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그가 '순무에 미친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게 만든다. 서울에서 은행원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언젠가는 농촌으로 돌아가 관광농원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1994년에 결국 강화도로 귀농하게 된다. 강화도로 귀농한 그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순무가공상품을 염두에 두고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농촌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강화도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가 다시 순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귀농하던 해 가을철의 일이었다. 강화도에 자리잡고 어설프게나마 농사꾼 흉내를 내며 살기 시작한 그를 찾아온 서울의 과거 은행 동료들에게 권국원씨는 강화도에서 흔히 먹는 순무김치를 대접하였다. 순무김치 특유의 아삭아삭하고 매콤한 맛에 감탄하고 서울로 돌아간 은행 동료들이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선물용으로 권국원씨에게 많은 양의 순무김치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게 이른다. 이것이 그가 순무가공사업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순무가 지닌 특유의 맛과 향, 권국원씨 부인의 손맛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순무김치를 포장도 없이 20kg들이 양동이에 담아 이렇게 알음알음으로 판매하였는데 그 해에만 5,000만원 어치가 팔렸다고 한다. 뜻하지 않게 장사 아닌 장사를 하게 된 권국원씨는 여기에서 평소부터 꿈꾸고 있던 농산물 특화사업의 실마리를 찾아내게 된 것이다. 순무김치가 유망한 상품이 될 것으로 생각한 권국원씨는 이듬해인 1995년 봄부터 순무김치를 만들려고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순무는 본래 가을에 수확하는 작물로 봄철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강화도 전역을 뒤졌으나 인근의 옥림리라는 동네에서만 어렵사리 소량의 봄 순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 그는 그것을 원료로 부랴부랴 순무김치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판매한 순무김치들이 거의 모두 반품되는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순무김치의 맛이 1994년 가을에 판매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김치 가공과정에서의 문제점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품질이 저하되는 이유를 고민하던 권국원씨는 비로소 순무도 여러 종류의 품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부터 권국원씨의 순무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순무의 품종에 대한 연구였다. 강화도에서 재배되는 순무라고 해서 다 같은 품종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순무도 그 모양이나 빛깔, 함유성분, 약리적 효능, 맛, 경도에 따라 매우 다양한 품종들이 강화도에 산재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의 연구에 의해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다양한 품종들이 체계적으로 분류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 '강화순무'라는 이름으로 재배되고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순무김치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되는 것이었다. 각기 맛이 다른 순무들을 수집하여 한데 섞어서 만드는 순무김치는 만들 때마다 맛이 달라졌다. 권국원씨는 곧바로 자체 포장에서 맛과 향, 약리적 효능이 뛰어난 우수한 품종의 순무를 순계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원예에는 문외한이다시피 한 권국원씨의 독학과 꾸준한 실험을 통해 수년만에 매우 아삭아삭하고 겨자향의 인삼 맛이 나며, 자주빛 빛깔에 약리적 성분이 많이 함유된 순무의 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순무 순계분리 작업과 함께 권국원씨는 1995년 가을부터 8,000평 규모로 가을 순무를 재배하고 거기에서 나는 순무를 원료로 만든 김치들을 각종 박람회에 출품하였다. 이러한 출품은 강화도의 순무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권국원씨 자신의 순무김치를 마케팅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그의 입상경력은 '1995년 광주 김치축제 김치상품화부문 농림부장관상', '1995년 광주 김치축제 팔도 전통김치부문 문화체육부장관상', '1995년 인천시 팔도 전통김치품평회 인천광역시장상', '1997년 여의도 김치축제 제조업체부문 농림부장관상', '1998년 인천향토식품품평회 인천광역시장상' 등 매우 화려하다. 수 차례에 걸친 각종 박람회에서의 입상경력은 순무에 대한 권국원씨의 집념과 애착을 증명하는 것이다. 권국원씨는 당시 본인의 그러한 열정에 대해 '어떤 귀신에 홀려서 그랬는지..'라는 말로 회고하고 있다. 이 무렵부터 그에게는 '순무에 미친 사나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권국원씨의 이름이 점차 알려지고 다양한 판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재미교포들을 대상으로 순무김치나 순무말랭이 같은 상품들을 수출하기도 했고, 순무를 많이 소비하는 일본시장에도 진출했었다. 서울의 유명 백화점으로 납품하는 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판로들을 지금은 권국원씨 스스로 포기했는데, 그 까닭은 유통에 따른 부대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실패들을 통해 그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냉장시설 등의 물류비용을 많이 들이는 '긴 경로'의 마케팅보다는 노력을 덜 들이고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짧은 경로'로의 마케팅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순무김치는 일반 김치보다 더욱 빠르게 숙성되는 성질이 있어 포장용기부터 냉장시설까지 많은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염도 5% 이하인 순무김치는 반드시 유리병에 진공포장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포장용기 제작에 많은 비용이 지출되었던 것이다. 그는 최근 들어서는 국내의 단골고객들을 대상으로 택배를 활용한 주문판매나 우편주문판매, 인터넷 홈페이지를 활용한 판매를 통해 4,000여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마케팅에서의 전략수정과 더불어 그가 더욱 힘을 쏟았던 것은 상품 품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끊임없는 신상품 연구개발이었다. 고품질의 가공상품을 만들기 위한 품질 좋은 순무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순계분리된 종자들을 직접 채종, 분양하는 형식의 계약재배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기상변동이나 계절에 따른 순무 수확량의 큰 변동폭으로 경영압박을 받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저장성이 좋고 부가가치가 높은 많은 종류의 가공상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한 가공상품 개발은 어떤 경우에는 우연한 기회로 얻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10여 종에 달하는 각종 순무김치와 순무 말랭이 외에도 권국원씨가 개발해 낸 순무가공상품들은 순무쥬스, 순무식초, 순무피클, 순무환, 순무씨, 순무비누, 순무강정, 순무국수, 순무씨기름 등 매우 다양하다. 이렇듯 다양한 신상품들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권국원씨가 주변의 각종 인간관계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순무식초는 '강화순무골' 내에 생산라인을 두고 있지 않다. 감식초로 유명한 전라도의 권재갑씨의 생산설비를 빌려 강화도의 또 다른 특산물인 장준감과 순무를 원료로 하여 생산해내고 있다. 순무식초가 개발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신상품 개발에 대한 권국원씨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과거 은행 재직시의 연고를 충분히 활용하여 금융기관 등의 명절 특판으로 순무김치를 납품하여 매출을 올리던 권국원씨는 1997년 가을에는 98년 설 선물용으로 1억 2000만원 어치의 순무김치를 주문 받았다. 이를 위해 강화도에서 생산되는 순무를 거의 다 사들이다시피 했던 그에게 큰 사건이 생기는데, 97년 말 IMF 사태로 인해 종합금융사들이 거의 대부분 붕괴되기에 이른 것이다. 졸지에 납품처를 잃어버린 권국원씨는 200t에 달하는 그 많은 순무를 처분할 길이 없게 되었다. 저장성이 좋지 않은 순무는 썩어가고 있었고, 그처럼 큰 손실을 감내할 수 없었던 권국원씨는 고민 끝에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아는 사람을 통해 남아도는 순무로 식초를 생산할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마침 감식초로 명성을 얻고 있던 전북 임실의 권재갑씨가 당시 감의 작황이 안 좋아 식초 생산설비를 놀리고 있었다. 식초생산설비가 필요했던 권국원씨는 그의 도움으로 순무 160t을 식초로 가공하였다. 그냥 두면 썩어서 폐기처분해야 할 순무를 식초로 가공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시 그 많은 식초를 판매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고, 이것은 지금까지도 자금순환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남아있다. 이 같은 경험들을 통해서 권국원씨가 얻은 결론은 수급이 불안정한 순무를 가공하여 안정적인 경영을 도모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각종 순무가공상품 개발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이 많은 일들을 혼자 진행하기 어려웠던 그는 학계와 업계, 지방자치단체 등의 여러 인사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서 해결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어내는 순무가공 상품들은 순무의 거의 모든 부분을 활용하는 것으로, 재기 넘치는 아이디어와 그의 말대로 '뿌리에서 잎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순무 자체의 특성이 결합된 결과이다. 순무말랭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순무 부스러기는 원래 달리 활용할 방도가 없던 것인데 권국원씨는 이것을 활용하여 순무환을 개발하였다. 그가 순계분리해낸 순무씨 중에서 약리효과가 뛰어난 것으로는 아홉 번을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기능성이 우수한 건강식품을 만들기도 했다. 순무김치에 이어 '강화순무골'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순무쥬스는 그 기능성에 비해 색깔과 단맛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채, 복숭아, 강화의 사자발 약쑥 등의 재료들과 혼합하여 여러 종류의 순무쥬스를 개발해낸 것이다. 그 밖에도 순무씨를 압착하여 만든 순무씨기름이나 그 기름을 다시 가공한 순무비누 등 권국원씨의 아이디어 상품들은 매우 다채롭다. 그는 올해 들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초기 순무가공상품들의 마케팅과정에서 얻은 결론인 '사람들에게 상품들을 팔러 다닐 것이 아니라, 강화도의 명물인 순무를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한 새로운 사업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순무캠프를 설치하여 소비자들이 직접 강화도에 찾아와 순무김치를 손수 담그는 '순무김치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강화도 천혜의 자원인 갯벌을 활용한 자연체험프로그램도 시작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선조이기도 한 조선조 명장 권율장군의 생가터가 인근에 남아 있는 것을 활용하여 장래에는 그 생가터를 복원하고 '호국항쟁'의 역사로 각인된 강화도의 이미지를 살려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이렇듯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농촌이 될 때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업을 통해 준비되며 실천되고 있다. | |||||||||||||||||||
6. 향토지적재산의 내용 | |||||||||||||||||||
(1) 자원(원소재)의 명칭 | |||||||||||||||||||
순무, 순무씨, 홍화, 복숭아, 유채 등 | |||||||||||||||||||
(2) 자원의 분포 또는 생산조건 | |||||||||||||||||||
'강화순무골'에서 원료로 사용하는 순무는 강화도에서 재배되는 순무들 중에서도 특별한 품종의 것들만을 엄선한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순무는 한국에 15종, 일본에 17종, 유럽에 2종, 미국에 2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강화도에 분포하고 있는 순무들도 그 모양과 맛에 따라 다양하다. 모양을 보면 넓적한 팽이, 둥글고 통통한 팽이, 삼각형, 장독형, 긴 삼각뿔 등의 형태로 다양하다. 맛은 겨자 맛과 인삼향, 고구마 맛, 일반 무 맛, 강한 매운 맛, 찝찔한 맛 등 다양하다. 이렇듯 다양한 종류의 순무가 존재하는 것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화도 각 농가에서 자가 채종하면서 재배한 탓에 이루어진 교잡과 재배지의 토양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뿐만아니라 환경에 민감한 작물인 순무는 재배방법에 따라서도 그 모양과 품질이 달라진다. 가령 내한성 작물인 순무를 밀식재배할 경우 같은 토양에서라도 품질이 떨어지고 줄기와 잎의 크기가 작아진다. 이렇듯 다양한 순무 중에서도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고, 건강식품으로서의 기능성이 우수한 것들만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가공상품 품질의 표준화를 꾀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순무는 추위에 강하고 더위에 약한 작물이다. 그리고 산성토양에서 잘 자라며, 토양에 영양분이 너무 많아도 재배가 잘 안 된다. 생육기간은 75일인데 주로 가을(8월 중순)이나 이른 봄(3월 중순)에 파종하므로 병충해와 큰 관계없이 재배할 수 있다. 우수한 품질의 순무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전적으로 순수한 것을 분리해내야 한다. 순무종자의 순계분리는 채종할 순무마다 격리하여 놓고, 꽃이 피면 벌을 넣고 유포지를 씌워 채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한 채종을 반복하면 5년 차에는 97.5%가 같은 순종만 태어나는 '순종 종자'를 분리해 낼 수 있다. 권국원씨는 본인이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순계분리 해낸 순무 종자들을 재배농가들에 직접 공급한다. 종자를 공급받은 농민들과는 계약재배의 형식으로 가을순무를 전량 공급받는다. 가을순무를 원료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공급물량이 딸릴 경우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순무를 구매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2001년 현재 계약재배 면적은 총 2만평으로 29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강화순무골'에 공급되는 순무는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시용하지 않는 친환경농법을 통한 재배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권국원씨는 재배농가들에 경동시장에서 버리고 남는 한약재들을 수거하여 비료로 공급하여 엽면시비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 비료는 진딧물을 제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인근의 애린농원에서 지렁이를 사육하여 생산하는 분변토를 공급받아 기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하고 있다. | |||||||||||||||||||
(3) 향토지적재산의 기술적 특성 | |||||||||||||||||||
강화도의 순무는 특유의 향과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인체에 이로운 효과들이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강화도 순무가 약성이 강한 이유는 게류마늄, 세레늄 등이 풍부한 황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해풍과 깨끗한 환경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의 식품분석결과에 따르면, 순무에는 다량의 칼슘(가식부 100g 당 뿌리에 50.5mg, 잎/줄기에 74.3mg), 칼륨(뿌리에 179.3mg, 잎/줄기에 149.0mg), 아스코르빈산(뿌리에 17.4mg, 잎/줄기에 18.2mg), 디아민, 나트륨, 철분 등을 함유하고 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순무는 오장을 이롭게 하며, 간기능 증진에 도움을 주어 간장질환(황달)에 이롭다. 숙취해소, 치질과 만성변비에도 효과가 있으며 침침한 눈을 밝게 해준다. 그리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하고, 배에 물이 가득찬 증세, 비만증에도 효과가 있다.' 이 밖에도 변증방약합편, 변증방약정전,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왕실양명술 등의 옛 한의서들에서 순무의 효능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순무를 원료로 삼아 '강화순무골'에서는 10여종의 순무김치와 순무쥬스, 순무식초, 순무환, 순무말랭이, 순무피클, 순무시래기, 순무분말, 순무씨, 순무씨기름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최근에는 순무비누, 순무강정 등의 신상품 개발에도 성공하였다. 이러한 제품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건강에의 이로움'을 원칙으로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생산되는 상품별로 그 제조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순무김치로는 순무깍두기, 순무밴댕이깍두기, 순무동치미, 순무홍삼김치, 순무포기김치, 석박지, 순무백김치 등 다양한 상품이 있다. 이 김치를 담글 때 사용되는 물은 청정한 천연 암반수이며, 원료가 되는 순무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된 것들이다. 맛을 내기위해서 인공감미료를 사용하는 일 없이 오직 천연재료만을 양념으로 사용한다. 소금 또한 죽염만을 사용하고 있다. 순무식초는 순무와 감을 3년동안 천연발효시켜 만든다. 순무쥬스는 이 순무식초를 원료로 하여 만들어진다. 순무환은 순무분말 35%, 순무청분말 35%, 아홉번 찌고 아홉번 말린 순무씨 15%, 3년간 숙성건조된 강화 동검도 산 사자발 약쑥 15%의 배합비율로 만들어내고 있다. 순무말랭이는 질 좋은 가을순무를 잘게 잘라서 24℃의 냉풍으로 48시간 건조한 뒤 다시 햇볕에 24시간 건조시켜 만든다. 순무피클은 순무를 1 x 4 x 0.5 cm 크기로 썰어 죽염에 절인 다음 설탕, 죽염, 통후추, 통계피, 마늘, 생강, 붉은 고추 등을 이용하여 만든다. 순무시래기는 파종 후 60일 이전에 수확한 순무청을 24℃의 냉풍으로 48시간 건조한 뒤 다시 음지에서 24시간 건조하여 만들어낸다. 사실 '강화순무골'에서 생산되는 여러 순무가공상품들은 그 제조방법에 있어서는 최대한 전통적인 방식에 근접하려 노력하고 있을 뿐 별다른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이 오히려 상품들의 품질을 탁월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
(4) 상표 | |||||||||||||||||||
생산되는 모든 제품의 포장용기에는 직사각형의 라벨이 부착되어 있다. 라벨에는 유통기한, 회사명(강화순무골), 원료명, 보관방법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
(5) 포장용기/재질 | |||||||||||||||||||
순무김치는 800g 들이의 젓갈용기와 유사한 유리 그릇에 포장하여 판매하고 있다. 순무쥬스는 1.5ℓ 들이 일반 음료수 PET 병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순무식초는 900㎖들이 유리병에 담아 판매한다. 순무말랭이는 폴리에스테르 지퍼백 용기에 담아 판매하고 있는데 그 중량은 100g 이다. | |||||||||||||||||||
(6) 설비 및 장치 | |||||||||||||||||||
제품에 따라 생산설비는 매우 여러 가지의 것이 사용되고 있다. 이중에는 상당부분 외부의 협력업체의 생산라인을 임대하여 생산되고 있다. 강화도의 공장에는 제품과 원료를 저장하기 위한 컨테이너 박스 모양의 큰 저온저장고가 5개 설치되어 있다. | |||||||||||||||||||
7. 생산자의 형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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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향토지적재산의 홍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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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향토지적재산의 부가가치 발생경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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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향토지적재산의 가치증대방안 | |||||||||||||||||||
(1) 자원관리분야 | |||||||||||||||||||
순무는 기상변동에 따라 수확량 변화가 매우 큰 작물이다. 안정적인 원료수급을 위한 계약재배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원료가 되는 순무의 품질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계약재배가 지속될 필요가 있으며, 순계분리 작업이 더욱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통분리된 순무 품종마다의 특징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생산품 각각에 적절한 품종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순무 가공상품이 건강에의 이로움을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순무 유기재배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 |||||||||||||||||||
(2) 생산기술분야 | |||||||||||||||||||
(3) 유통/상품화 분야 | |||||||||||||||||||
순무의 해외수출이나 백화점 납품 등과 같은 강화 지역 외 소비지에서의 마케팅 전략은 당장에 실현하기에는 많은 거래비용을 필요로 한다. 중간 유통단계를 줄이고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주문판매나 사이버마케팅과 같은 방식에서 먼저 출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순무가 강화도에서만 유일하게 재배되는 작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지역 특산물로서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현재 강화도에는 주말에만 4-5만대, 연휴기간에는 10만대의 외지 차량들이 들어오고 있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된다면 강화도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광객들을 주요 목표로 하는 지역수준에서의 특산물 마케팅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강화도가 지니고 있는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자산들을 활용한 관광객 대상 체험프로그램들 내에 순무 가공상품이 소개될 수 있도록 지역내 네트워크를 조직하고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것이다. 중간유통단계를 통해 소비지로 진출하는 마케팅은 앞서의 '짧은 유통경로'를 기반으로 충분한 역량이 확보된 이후에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울러 순무김치 같은 저장성이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도 식탁에서 사용되는 상품은 캐터링(catering) 업체들과 같은 곳과 계약을 맺어 직접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 |||||||||||||||||||
(4) 공공지원 | |||||||||||||||||||
생산시설이나 설비 등에 대한 많은 정책지원이 해당 공공기관의 실적 지상주의, 관료주의적인 태도로 인해 실효성을 잃는 경우가 많다. 가령 올해 초에 실시되었던 폭설로 인한 비닐하우스 설비 보상과 같은 사례를 보면, 여전히 쓸만한 비닐하우스 철골들을 재활용하지 않겠다는 전제 하에 새로운 자재들을 구매할 지원자금 융자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생산자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고정자본 비용 지출이 더 증가하게 되는 모순적인 경우가 많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자금지원체계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 |||||||||||||||||||
(5) 기타 | |||||||||||||||||||
강화군 내에서 생산되는 순무김치가 여러 종류 있으며 그 품질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각 상품들의 차별성이 세간에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 '강화순무김치'로 알려지게 됨으로써 품질향상에 노력을 하는 생산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겪는 사례가 있다. 특히 지적재산권 침해사례도 간간히 발견되고 있다.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강구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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