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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오은선의 숨은 이야기

'철의 여인' 오은선의 숨은 이야기

입력 : 2009.10.14 13:56 / 수정 : 2009.10.18 18:14

오酒선… 사랑… 왕고집… 감성녀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7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도전하는 여성’의 상징으로 떠오른 오은선 대장. 8000m급 고산을 ‘내 집 드나들 듯’ 넘나들며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영웅’이지만 정작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동료 산악인들의 입을 빌려 ‘인간 오은선’의 모습을 그려봤다.

43세 미혼… 대학 때 산악부 선배 짝사랑

1966년 전북 남원에서 2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오은선 대장은 올해로 만 43세다. 그녀는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와 가셔브룸 1봉(8068m) 등정을 위해 `출국하던 지난 6월 “만약 내게도 반려자가 있다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아직까지 산만큼 나를 매료시킨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14좌에 모두 오를 때까진 결혼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오 대장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오 대장에게) 연인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6월 사석에서 “이 나이 먹도록 순정이 없었다면 거짓말 아니겠느냐”며 ‘아련한 사랑의 기억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지난 7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 등정 때의 오은선 대장. photo 블랙야크
오 대장과 ‘대학산악연맹’ 동기인 산악인들은 이 같은 오 대장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오 대장의 동기인 한 산악인은 “이젠 다 지나간 옛날 이야기”라며 “은선이가 학창시절 좋아했던 사람이 하나 있긴 했다”고 말했다. 이 산악인은 “은선이가 같은 학교(수원대) 산악부의 한 선배를 몹시 좋아했었다”며 “하지만 연인 관계는 아니었고 은선이 쪽에서 속으로만 좋아했던 일종의 짝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오 대장이 좋아했던 ‘선배’는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성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성격이었기 때문에 산을 좋아했고, 또 그랬기 때문에 여자친구 사귀는 것을 꺼렸다”는 것이다. 오 대장의 동기는 “그 선배도 은선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성격 때문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고 말했다. 이 ‘선배’는 현재까지 산을 타며 등산과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산악인 모임에서 이따금씩 서로 마주친다고 한다. 오 대장의 동기는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무덤덤해 하는 그냥 선후배 사이일 뿐”이라고 전했다.

오은선 대장을 잘 아는 다른 산악인은 “은선이가 스파게티집을 할 때(오 대장은 2000년 평촌에서 스파게티 집을 차린 적이 있었다)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람에 대해 “산을 타는 사람은 아니었고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뒤 “서로 마음에 있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뤄지진 않았다”고 말했다.

마라톤 여왕… 대학산악연맹 대회 1등 도맡아

오은선 대장의 키는 154㎝다. 170㎝가 넘는 서양의 여성 산악인들과는 체격에 있어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몸무게는 48㎏에 불과하다. 하지만 체력에 관해서는 얘기가 다르다. 웬만한 남자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인하다는 것이다.

오 대장이 학창시절 있었던 일화. 1980년대 중반 대학산악연맹은 매년 체육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연맹은 마라톤으로 대회 피날레를 장식하곤 했는데, 예외없이 항상 1등을 한 사람이 오 대장이었다는 것. 오 대장과 함께 연맹 체육대회에 자주 참석했다는 한 산악인은 “대학 캠퍼스를 10바퀴를 도는 대회를 해마다 열었는데 그때마다 매번 은선이가 1등을 차지했다”며 “솔직히 놀라웠다”고 말했다. 오 대장과 동기인 다른 산악인은 “(오 대장이) 내가 나가면 또 1등을 할 것 같다고 미안해하면서 일부러 뛰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동기는 “한마디로 (오 대장은) 잘 뛰고 잘 걸으면서도 잘 안 지치는 체질”이라며 “학교 때부터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체력이) 강했다”고 전했다. 오은선씨를 테스트한 태릉선수촌은 “심폐기능이 마라토너 황영조씨보다 좋다”고 평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천부적인 심폐기능으로 인해 오 대장은 8000m 고소에서도 대단히 빠른 속도를 낸다고 한다. 2004년 에베레스트 북릉 등반 때 오 대장은 4시간 전에 캠프를 떠난 외국 대원들을 모두 따라잡고 선두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 대장은 “산소를 쓰니까 거의 평지에서 걷는 듯한 기분이더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산악인들이 붙여준 별명은 날다람쥐. 등반속도가 빠르고 몸이 재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오 대장은 “튼튼한 몸을 갖고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해한다”고 말했다.



왕고집…"한다면 한다" 아무도 못말려

산악인들이 말하는 오 대장의 성격은 ‘명확하다’는 것. “그러면 그런 거고 아니면 아닌 거라고 확실하게 말하는 직선적인 성격”이란 것이다. 한 산악인은 “예를 들어 술자리를 가질 경우에도 그렇다”며 말을 이었다. “동기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오 대장이) ‘난 오늘 석 잔만 마실래’라고 일단 말했으면 누가 뭐래도 석 잔 이상은 안 마시는 스타일”이란 것이다. 이 산악인은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 잔만 더 하고 가라든가, 그럼 술 마시지 말고 조금만 더 있다 가라는 식의 말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다”며 “한번 자기가 가겠다고 했으면 누가 뭐래도 가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다른 산악인은 “그런 성격 때문에 솔직히 (오 대장이) 욕도 많이 먹었다”며 “친구들이 ‘솔직한 것도 좋지만 너무 그렇게 직선적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여러 번 말했지만 달라지지 않더라”고 말했다. 오 대장과 동기인 한 산악인은 하지만 “포터를 50~100명씩 이끌고 가야 하는 히말라야 고산 등반에선 카리스마가 없으면 대원들을 통솔하지 못한다”며 “오 대장의 경우엔 그런 단호한 성격이 있기에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서울 용마산 폭포공원에서. photo 조선일보 DB

술 못하는 그녀… 취해 넘어진 후 '오酒선' 별명


오 대장은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 한 동기는 “(오 대장) 집안이 술하고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동기는 “(오 대장 주량이) 많아야 소주 반 병 정도”라고 말했다. 그런 그녀가 술을 마시고 쓰러진 적이 있다. 대학 4학년 때였던 1988년의 일이다. 한 동기는 “설악산 백담사로 동기들끼리 산행을 갔었다”며 당시의 에피소드를 전해줬다.

“한 14~15명가량 됐어요. 동기들끼리 먼저 가고 (오 대장은) 나중에 현장에서 합류하기로 했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얘가 오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한참을 더 기다리다 보니까 저만큼에서 (오 대장이) 터덜터덜 오는 거예요. 그런데 좀 이상해요. 자세히 보니까 눈에 안대를 하고 있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말을 안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술 먹고 넘어졌다’는 거 있죠. 요즘도 그렇긴 하지만 당시에도 (오 대장이) 거의 술을 못했거든요. 그런데 술 마시고 넘어져서 안대까지 하고 왔으니 얼마나 웃기던지…. 더구나 겨울도 아니고 한여름이었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그 이후로 별명이 ‘오주선’이 됐어요. 술 주(酒)자를 써서 오酒선이요.” 이 동기는 “하지만 오 대장이 당시 왜 ‘넘어질 정도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히말라야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 photo 블랙야크

그만의 건강비결… 개고기와 홍삼, 그리고 불가마

해외 고산 원정은 한번 갔다 오면 초죽음이 된다. 남아있는 한 줌의 체력까지 박박 긁어 모두 소진하고 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입맛이 있을 리 없다. 입이 칼칼하고 목이 뻑뻑해져서 씹어 삼키는 일도 고역이 된다. 게다가 오은선 대장은 입이 짧은 편이다. 평소에도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고 한다. 오 대장 스스로가 사석에서 “소식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그녀가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꼭 찾는 음식이 있다. 바로 개고기다.

오 대장의 제부이자 산악인인 김유진(43)씨는 “(오 대장) 집 근처에 단골집이 있다”며 “매번 원정을 갔다 올 때마다 몸보신을 위해 2~3차례씩 개고기를 먹는다”고 말했다. 여성산악인 배경미씨는 “소진된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오 대장이) 보신탕을 찾곤 한다”고 했다.

오 대장이 ‘막강 체력’을 유지하는 배경엔 어머니의 정성도 한몫한다. 인삼을 사다가 찐 뒤 말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 손수 ‘홍삼’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 제부 김씨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홍삼을 꾸준히 먹으며 건강을 다진다”고 말했다.

오 대장이 건강을 다지는 또 다른 비결은 ‘불가마’. 오 대장은 몸이 찌뿌드드해지면 어머니와 함께 포천에 있는 한 불가마 집을 찾아 거적을 뒤집어쓰고 땀을 빼곤 한다. “체내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개운해진다”는 것이 그녀가 불가마를 찾는 이유다.

두 얼굴의 그녀… 산에선 철녀, 내려오면 '감성녀'

오 대장은 치밀하고 냉철한 것으로 유명하다. 8000m급 고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 한왕용(43)씨는 오 대장에 대해 “말은 덤벙덤벙하지만 성격은 엄청 꼼꼼하고 치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오고 나면 오 대장은 다른 사람이 된다. 풍부한 감성을 가진 평소의 성격이 여과없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오 대장과 절친한 여성산악인 배경미씨는 “평소의 오은선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성격이 예민하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다가도 잘 울고 이야기하다가도 잘 운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 얘기를 듣다가도 수시로 울먹거린다고 한다. 굳이 눈물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감정이 생기는대로,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슬퍼지면 눈물을 흘리는 솔직한 사람이 오은선이라고 한다.

오 대장 출국 직전인 지난 9월 7일, 오씨는 배경미씨와 함께 소프라노 이춘혜 교수(가톨릭대)의 독창회를 보러 갔다. 이 교수는 등반과정을 정식으로 마친 산악 매니아. 이날은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를 오르다 지난 7월 숨을 거둔 고(故) 고미영 대장의 49재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마지막 곡을 부르기 직전 “이곡은 고 고미영 대장을 위해 바치겠다”며 노래를 부른 뒤 자신의 공연을 보러온 오 대장을 발견하고서는 “오은선 대장을 위한 노래”라며 한 곡을 더 불렀다고 한다. 이때 이 교수가 부른 노래는 ‘나의 길을 혼자 가려 한다’는 내용의 러시아 전통곡. 감수성 예민한 오은선 대장이 벌겋게 눈시울을 붉혔음은 물론이다.


/ 이범진 기자 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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