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엔씨소프트 창업주

김택진 대표 “게임도 문화콘텐트 … 왜 다들 얼마 벌었느냐고만 묻나요”

온라인 게임 ‘아이온’ 판매 100만 장 돌파한 엔씨소프트 창업주

그는 가슴에 노란색 회사 로고가 찍힌 푸른색 셔츠와 밤색 면바지를 입고 덜렁덜렁 편집국에 나타났다. 한 일주일쯤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42) 대표. 어쩌면 그게 이 동네 사람들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체면, 외모, 형식 같은 건 별로 따지지 않으면서 바닷가 모래만큼 떼돈을 버는 IT라는 동네 말이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출시한 ‘아이온’이라는 게임이 속된 말로 ‘대박’이 났다. 국내 시장은 물론 일본·중국으로 진출했다. 11월부터 미국과 유럽 시장에 출시했는데 예약 주문으로만 45만 장을 팔았다고 한다. 올해 중으로 북미 시장에서 ‘아이온’ 100만 장을 파는 게 엔씨소프트의 목표다. 지금까지 온라인 게임 100만 장 돌파는 세계 최대 게임업체인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가 유일하다고 한다. 리니지·리니지2 게임으로 국내 시장을 석권한 뒤 후속타가 없어 고전하던 엔씨소프트의 화려한 부활 축포인 셈이다.

그 덕분에 김택진도 엄청난 부자가 됐다. 그는 엔씨소프트의 주식 26%를 갖고 있는데 이 주식의 시가총액이 지난 5월 1조원을 넘어섰다. 주식 총액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서열 아홉째 부자다. 1997년 금융위기 때 직원 17명, 자본금 1억원으로 엔씨소프트를 창립해 불과 12년 만에 이룩한 성과다.

김택진은 서울공대 재학시절 이미 ‘한메 타자’ ‘아래아 한글’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또 2007년엔 MIT 공과대에서 24세에 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 소녀’ 윤송이 박사와 결혼해 새롭게 뉴스메이커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중앙일보가 그를 인터뷰하게 된 건 물론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아이온’의 성공 때문이다. 갑자기 1조원대의 부자가 되면 어떤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직접적 이유는 엔씨소프트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성공하면 문화부에서 취재해 재미있는 얘기들을 기사화한다. 하지만 게임은 성공하면 다들 얼마 벌었느냐고만 물어본다. 게임도 문화 콘텐트다. 왜 게임을 경제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느냐.”

그 주장은 그럴싸해 보였다. 그래서 김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는 10월 말 중앙일보 편집국 회의실 한 곳에서 이뤄졌다.

김종혁 문화스포츠에디터, 이영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그에게 성공은

관련핫이슈

-김 대표를 미국의 빌 게이츠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던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까.

“전혀 아니에요. 솔직히 부담스럽고 그렇게 안 불렸으면 좋겠어요. (웃으며) 사실은 그동안 한국의 빌 게이츠라고 불렸던 분들이 정보기술(IT) 업계에 많았는데 다 뒤안길로 사라졌거든요.”

-엔씨소프트의 주식 가격 상승으로 재산이 1조원이 됐다던데 지금도 그렇습니까?

“떨어졌대요. 하지만 신경 안 씁니다. 그동안 주식을 사고 팔아 본 적이 없으니 제 재산은 그냥 숫자일 뿐이죠. 저는 월급쟁이입니다. 안철수 박사님 같은 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냥 일하는 거죠.”

-돈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도 있고 그것 때문에 살고 죽기도 하는데 관심 없습니까.

“내 몸이 건강한데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하죠. 제가 AB형이라 이상주의일지도 모르겠어요. 서울대에 다닐 때 선배들이 우린 국민 세금으로 공부했으니 나중에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얘길 했어요. 나는 ‘전산쟁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한메 타자교본’도 만들고 ‘아래아 한글’도 만들었어요. 엔씨소프트 창업할 때만 해도 국내에는 게임 산업이란 게 없었거든요. 아무도 안 하는 걸 해보자는 꿈을 갖고 뛰어든 거예요. 돈 벌 기대는 못했어요.”

-‘아이온’은 얼마나 성공했습니까.

“국내에서 출시된 게임 중에서는 역사를 만들고 있는 중이죠. 성공만 하는 건 아닙니다. 중국 시장에선 처음에 굉장한 인기를 끌더니 지금은 뒷심을 못 받고 있어요. 미국과 유럽에선 한국 게임이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어서 기대가 낮았는데 잘 되고 있어요. 출시 전에 예약만 45만 장이었고 11월 중에는 100만 장 카피를 넘어설 것 같거든요.”

-미국과 유럽 시장의 100만 장이 어떤 의미입니까.

“게임 패키지는 30만 카피가 나가면 ‘트리플 에이’로 불려요. 전 세계적으로도 100만 장이 넘은 게임은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와 저희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뭡니까?

“수많은 실패죠. 리니지하고 리니지 2를 갖고 이미 나가봤잖아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 시장을 학습했고 이해했어요. 우린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 나라 고객들은 어떤 콘텐트를 좋아하는구나, 우리 기대보다 반응이 덜한 건 뭐구나 하는 걸 배우죠.”

-리니지 1, 2는 왜 구미 시장에서 실패했습니까.

“미국 시장에서 힙합이 유행인데 좋은 포크송을 갖고 나간 꼴이죠. 아무리 좋아도 시대의 유행이나 관심과 안 맞잖아요. 유행하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다 배경과 사연이 있어요. 게임은 유럽과 미국이 30년 전쯤에 시작한 걸 저희가 10년 전부터 추적 중인데 이제는 그 리듬감을 조금씩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죠.”

-나라별로 차이가 있을 텐데 그네들의 정서에 맞는 게임을 개발하려면 뭐가 필요하죠.

“인문학적 소양입니다. 게임은 여러 종류가 있어요. 갤러그처럼 자극과 반응이 핵심이거나 퍼즐처럼 뭔가를 풀어내는 것도 있고. 저희가 만드는 롤플레잉 게임(RPG)은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시작합니다. 판타지에 관한 한 기본적으로 톨킨의 세계관이 깔려 있는 거죠. 그게 영화가 됐다가 주사위 게임이 됐다가 컴퓨터 게임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친 거죠. 그런 배경을 알아야 해요.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게임을 만들어야 관객들이 이해합니다.”


그에게 삶은

-김 대표는 세상의 흐름과 어떻게 접촉합니까.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어디서 얻습니까.

“회사 옆이 코엑스인데 거기 영화관을 많이 갑니다. 거기 있는 서점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가고요. 회사 가다 보면 PC방이 있는데 거기도 들어가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접하고, 노래도 많이 듣고 그래요.”

-주로 무슨 책을 읽습니까.

“주말에 주로 가는데 경영서나 과학책, 프로그래밍 관련 책도 보고 시도 읽고 그래요. 저는 일단 잡으면 끝까지 다 읽으니까 선택을 잘해야 해요.”

-시를 읽는다는 게 좀 의외네요.

“마음을 닦는 데 시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정결한 단어들을 보면서 평온해지죠.”

-변화에 잘 적응하는 것 같은데 의무로 그럽니까, 아니면 좋아서 하는 건가요.

“좋으니까 하는 거죠. 제가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좋았고요. 천성인가 봐요.”

-김 대표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본질은 뭡니까.

“헌신이라고 생각해요. 리더의 헌신. 그러니까 남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을 보여주는 거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뭐라고 봅니까.

“잘 참는 게 장점이에요. 억울한 일을 겪어도 세상을 살다 그런 일 당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냐고 생각해요. 인내가 제일이라고 어릴 때부터 생각했어요.”

-단점은 뭡니까?

“어떤 것에 몰입하면 다른 걸 소홀할 때가 많아요. 관심이 있는 건 스토리가 머리 속에서 영화 찍듯이 그려지고 꿈까지 꾸는데 다른 건 안 그래요. 그래서 주변에 상처를 줘요. 잘 안 고쳐지네요.”

-그거 천재들의 특징 아닙니까. 자랑처럼 들리네요.

“어릴 땐 모르는데 나이가 드니까 문제가 많아요. 이젠 제가 챙겨줘야 할 게 많은 자리에 있잖아요. 한 번은 뭘 생각하면서 밥 먹는데 뭘 먹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나중에 집사람한테 원망을 들었어요.”

-롤 모델(role model)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인생이 아니라 사업만 놓고 말한다면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죠. 사람들이 자기의 꿈에 감동할 때까지 한길을 파고 있잖아요. 잡스가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존경할 만합니다.”


그에게 게임은

-게임은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서 제작이 시작되는 겁니까.

“공동작품이죠. 누구 한 사람이 만드는 시대는 지났어요. 게임은 수백만, 수천만 명이나 되는 사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어서 공동창작, 집단 창작의 영역입니다.”

-김 대표는 해외 시장을 강조한다는데 이유가 뭡니까.

“무엇보다 세계 시장을 상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분야에 우리가 종사하고 있어서죠. 국내 시장만 보고 가다간 원하는 작품도 못 만들고 성공도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인가요.

“자동차, 컴퓨터도 그렇죠. 뭐든 성공하려면 세계의 흐름을 따라야 하는 시대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게임도 그랬는데 한참 뒤처져 있다가 확 따라가는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우리가 도전 정신이 충만한 민족 아닌가 싶어요. 저희가 게임경쟁에 뛰어든 건 정주영 회장이 모래밭에 조선소 만든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게임은 일본과 미국이 다 잡고 있어서 아무도 경쟁할 엄두를 못 냈죠. 저도 돈벌이가 아니라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서 뛰어들었어요.”

-게임이 문화 콘텐트라고 주장하던데 근거가 뭡니까.

“게임이 옛날 갤러그처럼 ‘자극과 반응’ 수준이던 시대는 지났어요. 요새 게임은 종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그 안에는 스토리도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요. 리니지 2의 음악은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작업했고, 아이온은 재일동포 작곡가 양방언씨와 함께 했어요. 사람들은 이제 게임을 통해 음악·미술·스토리를 즐깁니다. 파생상품도 많이 나오죠. 영화처럼 게임이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multi use)의 중심이 되는 것이죠. 게임을 하나의 종합문화상품으로 인식해야 이런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 사용자는 20~30대가 75%를 넘더군요. 앞으로 게임의 미래를 어떻게 보세요.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커질 거예요. 요즘 게임 하는 사람이 늘었다지만 음악이나 영화처럼 많진 않아요. 앞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지금은 20~30대가 게임산업의 축이지만 앞으로 10~20년 뒤에는 노년층이 주축이 된다고 봐요.”

- 아이들은 중독성 문제가 있잖습니까.

“저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거 생각 않고 재미있게만 만드는 게 목표인 때도 있었어요. 그래서 중독성도 생기고. 자동차도 매연 때문에 고생하니까 친환경차를 만들려고 하잖아요. 게임도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게임을 너무 오래하면 기능이 떨어지도록 만드는 거죠.”

-게임 말고 다른 사업도 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평생 하나라도 제대로 해 보자고 생각하며 삽니다. 한국 게임이 세계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산업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고 싶어요.”

김택진은

1967년생.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재학 중 동아리 ‘컴퓨터 연구회’에서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 등과 함께 ‘아래아 한글’을 공동 개발했다. 한글타자 연습 프로그램 ‘한메타자’와 ‘베네치아’ 게임 등도 그의 작품. 2002년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세계 e-비즈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혔다. 2003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선정한 ‘최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엔씨소프트는

김택진 대표가 외환위기였던 1997년 13명의 직원과 함께 1억원의 자본금으로 창업했다. 초기에는 게임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였으나 98년 발표한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아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게임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리니지’의 매출액은 지난 10여 년간 1조2000억원을 돌파했으며 ‘리니지 2’도 2003년 상용화 이후 79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북미·유럽·일본 등의 주재원을 포함해 30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아이온’의 성공으로 올해 연매출이 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온은

가상 세계에 살고 있는 천족(天族)과 마족(魔族), 그리고 이들을 위협하는 용족(龍族) 간의 갈등을 기본 줄거리로 하는 롤 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이다. ‘아이온’은 게임 속에 존재하는 탑의 이름. 플레이어는 천족과 마족 중 한 종족을 선택, 이야기의 주체가 되어 게임 속 갈등을 풀어간다. 그동안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캐릭터 간 전투 및 이동이 2차원적인 움직임이었던 데 비해 아이온은 캐릭터가 하늘을 나는 ‘비행 시스템’을 도입한 본격 3차원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