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이 만난 사람]영혼이 있는 사람 안철수 KAIST 교수 | ||||||
2009 10/13 위클리경향 845호 | ||||||
ㆍ“토목공사보다 SW산업, 강조해도 소용없네요”
언론이 특정인물을 직설적으로 호평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고결한 사람으로 기술(記述)했다가 나중에 검은 구석이라도 발견되면 망신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안 교수에 관한 인물탐구형 기사를 쓰는 많은 언론은 이 같은 위험을 기꺼이 무릅쓴다. 위험도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골의사 박경철씨는 안 교수를 인터뷰한 뒤 “정돈되고 정갈하며 투명한 사람, 이 이상의 상찬을 못하는 것이 아쉬울 만큼 그는 인격적으로 인터뷰어를 매료시켰다”고 썼다. 다른 한 인터뷰어는 “그는 현실의 ‘엄친아’였다. 심지가 곧았고, 품성이 뒷받침됐으며, 콘텐츠가 있었다. 심지어 겸손했고, 인간적인 매력까지 갖췄다”고 했다. ‘엄마 친구의 아들’, 즉 공부 잘하고 착하고 매너도 좋은 완벽한 남자라는 말이다. 안 교수가 몇달 전 TV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 코너에 출연했을 때 반응은 가위 열광적이었다. 그의 인품, 진정성에 매료된 시청자들은 “이런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 “안철수를 대선 후보로 밀자”고 아우성을 쳤다. 이 바람에 졸지에 ‘잠재적 대권후보군’에 오르게 됐지만 사실 안 교수의 능력은 끊임없는 도전과 성공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됐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의대 교수가 됐고, 의사 일을 하면서도 세계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했다. 의사 일을 접고는 컴퓨터 보안 벤처기업을 설립해 최고의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더니 10년 만에 회사 경영을 다른 이에게 물려주고 유학을 떠나 미 와튼 스쿨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들어갔다. 그렇게 의학박사에서 공학석사, 경영학석사로 20년 동안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단 한 차례 구설에 오르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게는 소위 ‘안티’라는 게 없다. 무엇이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길 좋아하는 사람들도 안철수란 이름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 안 교수와 인터뷰 약속을 잡고 난 뒤 가장 고민한 부분은 다름 아닌 그의 바른생활 이미지였다. 그의 말과 생각이 교과서적이라면 TV 매체와 달리 활자로 전달됐을 때 흥미와 감동이 반감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안철수연구소 사무실에서 가졌다. 지난번 ‘무릎팍도사’에 나와 한 말씀을 듣고 감동받았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위에서는 어떤 반응이던가요. “제가 그런 것을 느낄 만한 틈이 없었습니다. 방송은 6월에 나왔지만 녹화는 4월에 했어요. 방송이 나올 때 저는 미국에 출장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8월 말에서야 들어왔으니 반응이란 게 다 지나간 뒤였거든요.” 안 교수님이 오락 프로에 나간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사전에 전혀 몰랐어요. 제가 TV를 보지 않거든요. 그래도 저로서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거기서 말씀한 것은 <행복바이러스 안철수>나 <내 인생의 결정적 순간> 같은 책에 그대로 나오는 내용 아닙니까. 담당 PD가 그 책을 보고 그런 말을 해 달라고 요청하던가요. “아닙니다. 그건 제가 늘 하던 말을 그대로 한 것일 뿐입니다. 누가 저보고 항상 똑같은 말을 한다며 말에 일관성이 있다고 해요. 과거와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기 정리가 돼 있으면 같은 말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미국에서 돌아온 뒤 방송에 나온 것을 찾아보니 4시간 촬영한 게 1시간 분량으로 줄어 있더군요.” 시간관계상 편집됐을 법한 얘기를 책에서 조금 인용해 보자. 어린 시절 소년 안철수의 면모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무엇이든 만들고 분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과학 소년이 어머니에게 “메추리 알을 품으면 메추리가 나오느냐”고 물었다. 어머니가 그렇다고 하자 실제 메추리 알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들었다가 “꿈이 박살났다”는 게 안 교수의 회고다. 대학생이던 어느날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는 대목도 눈에 들어온다. 그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만 그 분야에서 일정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남 몰래 흘리는 땀과 눈물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제가 의사의 길을 접을 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내 모습을 관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느낀 게 내가 내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산다는 것이었어요. 내 인생에서 성공이란 무슨 의미인지, 무엇이 만족스런 삶인지 찬찬히 생각하게 됐죠. 그러니까 생각이 정리가 되더군요. 그 뒤부터는 변함이 없어요.” 성공의 개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세상에서 성공이라 하면 부, 지위, 명예 같은 것을 얘기하잖아요. 저는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이런 것을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마다 성공의 개념이 달라야 한다는 거죠.” 그럼 교수님의 성공은 어떤 겁니까.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크로마뇽인이 그린 벽화를 후대 사람들이 보고 ‘아, 그때 누군가 살아있었구나’하고 알게 되듯이 나(我)라는 존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게 제 바람입니다. 책을 써서 남기는 것도 흔적이고, 나의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의 생각이나 사회 제도가 바뀐다면 그것도 좋은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영어로 메이크 어 디퍼런스(make a difference)라고 합니다.” 의사생활을 계속 했어도 흔적은 남길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컴퓨터 백신전문가로, 또 대학교수로 변신은 왜 했나요. “흔적은 결과를 말하는데 저는 결과지향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결과는 하늘이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모든 변수를 포함한 결과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예요. 직업을 바꾸게 된 것은 새로운 일이 더 의미있고 재미있으며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야에서 흔적을 남기는 게 최선의 선택인 거죠.” 사실 안 교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밤 잠 안자고 백신을 만들어 일반인에게 무료로 나눠준 것, 그 하나만 해도 역사에 길이 남을 ‘안철수의 흔적’이다. 그런데 이 과거 흔적에 대해 안 교수가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까. 혹시 이런 생각은 해 보지 않았나요. 그때 교수님이 만든 백신으로 저를 포함해 국민 모두가 큰 혜택을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백신은 공짜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측면 말입니다. 그게 오늘날 정보보안 사고를 가져오는 원인(遠因)으로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무료 배포의 부작용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하나는 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든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회 풍조이고, 다른 하나는 위험에 대한 관리 의식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건 꼭 컴퓨터 보안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예요. 가깝게는 금융위기나 인터넷 대란에서부터 멀게는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든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위험관리가 중요해지는데 개발 성공신화에만 휩싸여 사전에 관리하고 예방하는 시스템이 없는 겁니다.” 무료배포를 하지 않았다면 그런 문제는 없었을까요. “소프트웨어에 대한 경시 풍조와 리스크관리 의식 부재는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양대산맥입니다. V3를 무료 배포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사회문제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얼마전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사이버 테러로 온 나라가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때 안 교수님이 “2003년 인터넷 대란의 교훈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이 기억납니다. 말로는 보안 강화를 외치지만 당장 급한 불만 꺼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둔감해지는 것을 비판했는데 이번엔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바뀌지 않았죠. 예전보다 노력을 조금은 더 하는 것 같은데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의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교수님은 현 정부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이잖아요. 그 위원회에서 이런 말씀은 하지 않나요. “물론 하죠. 그런데 위원회는 아무래도 조언기구여서인지 행동으로는 잘 옮겨지지 않는 것 같아요.” 올해 초에는 “토목공사보다 소프트웨어산업에 집중해야한다”는 말씀도 했는데 위원회에서 이 얘기도 했습니까. “그렇죠. 그래도 잘 반영되지는 않더군요. 위원회에서는 그것 말고도 많은 현안 얘기를 하는데 결국은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 같아요. 무엇이 더 시급한 일인가 하는 판단은 행정부에서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부가 IT산업을 소홀히 본다고 생각하나요. “정부는 IT산업을 IT 자체로 보지 않고 다른 산업을 받쳐주는 역할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성 같은 대기업이 잘 굴러가면 그 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IT 업체들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는 거죠. 하지만 저는 IT가 아직 자체 경쟁력을 가지고 확장해 나갈 부문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점에서 좀 아쉽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된지 1년이 됐는데 우리 교육에 대해 무엇을 느꼈습니까.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은 옛날과 비슷한 것 같아요. 도전정신도 있고 호기심도 있고 인생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주체적이지 못해요. 예를 들어 의대를 가는 대신 창업을 하는 선택의 문제가 있다고 할 때 요즘 학생들은 집에서 반대해 안 된다고 합니다.” 카이스트는 영재들이 가는 학교인데 왜 그렇게 됐을까요. “영재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일 겁니다. 영재에 대한 시각은 부모와 학교, 정부가 서로 달라야 합니다. 부모 입장에선 제 자식이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 혼자 잘먹고 잘살게 하는 게 목표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학교와 정부는 그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영재교육은 정의도 없고 목표도 없습니다. 정부가 영재학생 혼자 잘살게 하는 교육에 국민세금을 쏟아 붓는다면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죠.” 우리 사회에서 교육문제란 결국 대학의 선발방식, 즉 입시로 모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에게 더 좋은 직장과 더 많은 대우를 해주는 사회인센티브 시스템이 문제죠. 따지고 보면 입시도 그 인센티브 시스템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외국에서도 명문대 출신을 우대하는 경향은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전문가를 경시하고 관리자를 우대하는 구조까지 있습니다.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목격한 건데요, 몇조원을 굴리는 대형 벤처캐피털의 직원이 불과 20명이에요. 대충 계산하니 우리나라에서는 200명이 할 일을 거기서는 1명이 한다는 얘기가 되더라고요.”
“미국 회사는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디시전 파워(결정권)를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결정권을 주는 게 아니라 리포트를 써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은 관리자가 전문가의 리포트, 그 중에서도 한 장짜리 요약문을 보고 감(感)으로 내립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지는 게 필요합니다. 가끔씩 뉴욕타임스 책 코너를 보면서 두려움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보기에 어려운 책인데 몇년 동안 장기 베스트셀러로 올라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는 한 분야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미국 사회에 그만큼 많다는 뜻이에요. 그렇게 되면 자연히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줄어들겠죠. 소통의 활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대졸자 수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고학력 국가인 데도 책을 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귀를 막고 사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할 때 안 교수는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불통 공화국’을 상징하는 포즈였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내 손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과거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 제의를 받고도 거절한 적이 있잖아요. “내가 한다고 잘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나 자신이 없습니다. 성공확률이 낮다고 보는 거죠. 그러니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마음은 먹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잠재적 대권후보까지 됐잖아요.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나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처럼 우리도 이공계 출신의 정치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에게 대권 운운하는 것은 조금도 기분 좋은 말이 아닙니다. 황당한 얘기죠. 많은 사람이 ‘듣보잡’이라고 할 거예요.”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으로 인터넷상에서 쓰이는 속어이다. 바른생활의 남자 입에서 이런 속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게 반갑고 신기하다. 보석처럼 단단해 보이지만 세상과 소통하는 창은 늘 열어 놓고 있다는 상징 아닐까. 그가 앞으로 만들어 갈 삶의 흔적이 우리 사회를 밝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 <글·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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