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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성녀와 마녀/0709 /박경리

성녀와 마녀

성녀와 마녀
박경리인디북2003.09.19
책소개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초기작으로 1960년에 발표되었다. 자유롭고 파격적인 삶을 사는 마녀 형숙과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정숙함의 성녀 하란,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 수영의 이야기로 낭만적 사랑과 그 좌절을 다루고 있다. 자유롭고 진보적인 자세를 악으로, 순종과 인내의 삶을 선으로 표현하는 것이 요즘의 가치관과는 많이 다를 수 있으나, 실제 그러한 가치관들이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현실성이 두드러진다. 대작 『토지』의 작가가 바라보는 사랑과 남녀 관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흥미로운 작품.

「성녀와 마녀」는 주로 낭만적 사랑과 그 좌절을 다룬 초기 작품 중 하나로 1960년에 발표되었다. 1969년에는 영화(감독 나한봉)화되었고, 올 9월께에는 MBC소설극장에서 드라마로 방영될 예정이다. 이처럼 오래된 작품임에도 재출간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는 현대인도 공감할 만한 내용인데다 개성 강한 인물들이 엮어 나가는 스토리의 재미와 구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박경리 작품 속에는 주로 여성이 등장한다. 특히 초기에는 자서전적인 요소가 많이 투영되어 주로 여성의 삶을 그렸다. ‘성녀와 마녀’ 역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여성이 등장한다. 성녀로 대변되는 하란과 마녀로 불리는 형숙,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남자 수영. 하란을 향해 남몰래 사랑을 키우는 남자 세준 등 여러 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잘못된 관계를 통해 삶의 모순을 이야기한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볼 때 개인의 욕망을 버리고 한 남자만을 사랑하면서 가부장적인 제도에 매여 있는 하란은 성녀로 일컬어진다. 반면 사랑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란과 결혼하는 수영, 그런 그 앞에 의도적으로 다시 나타나 수영과 하란을 괴롭히고 방황하게 만드는 형숙은 다분히 마녀적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가치관에서 이 구분은 모호해진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남자 혹은 전통적인 가치관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진보적인 삶을
개척해 나가는 형숙이 과연 마녀로만 불려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 주체적인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사랑이나 관습에 얽매여 사는 하란이 성녀로만 불릴 수 있는 건지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의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사회의 편견이나 관습은 어설픈 잣대에 불과하다. 성녀의 삶이 옳은 것인지, 과연 마녀의 삶이 나쁘기만 한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발표된 지 43년이 지났지만, 일찍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작가의 역량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점(여성과 사회 가치관의 충돌 등)을 제시하고 그 해결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매우 크다. 사회의 편견에 싸여 마녀의 본능을 감춘 채, 어쩔 수 없이 성녀인 척 살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또 그런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는, 남성으로 대변되는 사회 관념도 하루빨리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목차

피가 나쁘다 ... 7
귀로歸路 ... 37
공작工作 ... 49
목격 ... 70
역전逆轉 ... 92
결혼행진곡 ... 103
사랑은 멀고 ... 122
귀국 독주회 ... 142
멀고도 가까워라 ... 161
눈을 밟으며 ... 179
해빙기解氷期는 왔건만 ... 189
어느 사나이 ... 222
흔들리는 마음 ... 237
이합離合이 인생인가 ... 257

작가소개

1927년 10월 2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1946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5년에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黑黑白白)」을 『현대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단편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벽지(僻地)」 등을 발표하고, 이어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 『파시(波市)』 등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특히 1969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995년에 5부로 완성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현대사의 전 과정에 걸쳐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으로 영어·일본어·프랑스어로 번역되어 호평을 받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수상하였고,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최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다.

그밖의 주요작품에 『나비와 엉겅퀴』, 『영원의 반려』, 『단층(單層)』, 『노을진 들녘』 『신교수의 부인』 등이 있고, 시집에 『못 떠나는 배』가 있다.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며 시인 김지하가 사위이다.

박경리의 문학은 전반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소외문제, 낭만적 사랑에서 생명사상으로의 흐름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 생명사상이 종합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바로 '토지'이다. 박경리에 의하면 '존엄성은 바로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가장 숭고한 것을 지키는 것'(파시 제1권, 131면, 1993)인데 그의 작품에서 이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본능 이상으로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 및 권력과 집단에 대한 비판, 욕망의 노예가 되어 존엄성을 상실한 인간들에 대한 멸시와 혐오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존엄성을 상실할 때에 바로 한이 등장하는 것이며 이 한을 풀어가는 과정이 곧 박경리 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과정이었던 것이다. (김은철 상지대 국문과 교수)

그녀의 대표작『토지』는 1969년부터 연재를 시작, 26년에 걸친, 4만 여장 분량의 작품으로박경리 개인에게나 한국문학에 있어서나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원고지 분량에 걸맞게 7백여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는 1897년부터 1945년까지라는 한국사회의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격동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동학혁명에서 외세의 침략, 신분질서의 와해, 개화와 수구, 국권 침탈,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이를 종적인 축으로 하여 진주와 간도(만주), 경성, 일본 등으로 삶의 영역이 확대되고 윤씨부인과 최치수, 최서희로 이어지는 최참판댁과 연결되어 삶을 엮어가는 평사리의 주민들, 김길상이나 김환을 중심으로 한 민족운동에 투신하는 인물들, 최참판댁의 전이과정 속에서 부침하는 신지식인들 등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이 형상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 작품에 대한 여러 논의들, 즉 역사소설인가 아닌가가 문제시 되었다거나 농민소설로서의 면모가 부각되었다거나 총괄체 소설, 가족사 소설, 민족사 소설, 총체소설 등의 다양한 장르로 규정되어 온 것은 곧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서사구조, 다양한 층위의 세계가 중층적인 구조로 형상화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