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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동아시아 축구 스타’로 떠오른 북한 정대세

빠른 발·저돌적 플레이 …‘아시아의 루니’ [중앙일보]

‘동아시아 축구 스타’로 떠오른 북한 정대세
부모 고향이 의성인 재일교포 3세
국적은 한국 … 북한여권 받아 출전

정대세(24·가와사키) 돌풍이 불고 있다.

한국 국적의 북한 대표팀 스트라이커. 짧은 머리에 강인한 인상, 저돌적인 플레이는 남북한은 물론 일본과 중국 축구팬까지 사로잡았다.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두 경기에서 일본과 한국의 골문을 연달아 열어 젖히며 ‘동북아의 웨인 루니(맨U)’로 떠올랐다.

수비수와 치열한 몸싸움을 하다 한 템포 빠른 슛으로 골망을 흔드는 모습에서는 프리미어리그 톱스타 루니를 연상시킨다.

20일 한국전에서도 그는 동물적 감각으로 한국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국적은 한국, 여권은 북한

북한 축구대표팀 스트라이커 정대세<下>가 동료를 업고 달리는 체력훈련을 하는 도중 밝게 웃고 있다.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성격이 쾌활하고 성실하다는 평이다. [충칭=뉴시스]
정대세의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그의 부모는 경북 의성이 고향이다. 일가친척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의 외국인 등록증에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여권은 북한 것을 갖고 있다. 부모가 한국인이라 그가 마음만 먹으면 한국 여권을 취득할 수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북한에 여권을 신청했다. 북한은 헌법상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일본의 외국인 등록증을 무시하고 여권을 발급했다. 인터넷 백과사전 격인 위키피디아(wikipedia) 일본판에는 정대세의 국적란에 한국과 북한을 모두 적어 놓았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그가 북한 여권을 소지했기에 북한 대표로 뛸 수 있다고 유권 해석했다. 그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한국 국적의 부모와 친척을 배려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수원 삼성 소속인 북한 대표 안영학처럼 그도 K-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지만 FIFA 규정상 북한 대표로 뛰었기 때문에 한국 대표로 국제 경기에 출전할 수는 없다.

◇오카다가 놓친 대어

지난 시즌 J리그에서 혜성같이 등장했던 정대세. 하지만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 C급 계약자(연봉 480만 엔 상한 적용)였다. 사실 입단 당시 정대세는 프로 진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2007 시즌 전반기 주로 교체로 나섰던 정대세는 정규리그에서 2골을 넣었다. 후반기 첫 경기인 지바전에 선발 출장해 C급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장시간 450분을 채웠다.

족쇄에서 벗어난 정대세는 후반기에 폭발했다. 한번 터지면 연속 골로 이어지는 활약으로 팀 동료인 J리그 득점왕 주닝요(22골)에 이어 12골로 팀내 득점 2위에 올랐다. 현재 그의 추정연봉은 1200만 엔(약 1억원)이다.

정대세는 대학생 시절이던 2005년 요코하마 마리노스를 찾아가 테스트를 자청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요코하마는 현재 일본 대표팀을 이끄는 오카다 다케시 감독이 맡고 있었다. 하지만 오카다는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정대세는 무명임에도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준 가와사키의 세키즈카 다카시 감독 밑에서 활짝 피어났다.

◇‘김삼순’이 고마워

정대세는 총련계 학교를 다녀 한국말을 그런대로 하지만 북한 대표팀 첫 발탁 때는 동료와 서먹서먹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8월 첫 소집(마카오·동아시아대회 예선) 때 일본에서 인기 높은 한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DVD를 챙겨갔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북한 대표팀에 쉽게 녹아드는 촉매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휴식 시간에 숙소에서 DVD를 보고 있을 때 동료 선수들이 찾아와 관심을 보인 것이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함께 보며 친해졌고 정대세의 방은 어느새 사랑방이 됐다.

정대세는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말도 재미있게 잘하고 엉뚱한 구석도 있다. 20일 남북한 경기가 끝난 뒤 기자가 “한국에서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하자 그는 “이 얼굴로는 스타가 힘듭니다”라면서 활짝 웃었다.

장치혁 기자, 충칭=최원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