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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신촌블루스 이정선ㆍ엄인호

<신촌블루스 이정선ㆍ엄인호의 30년 세월 만담>

이정선 "학교에서 대중음악 가르치는 건 모순"
엄인호 "가요계 종사자들이 가요계를 죽였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30년의 세월은 이들을 선생님과 자칭 룸펜으로 바꿔놓았다.

안경에 단정한 머리의 동덕여대 공연예술대 학장 이정선(58), 밤색 선글라스에 반백의 말총 머리를 한 '현역' 엄인호(56).

예술이 태동하던 동네, 신촌 골목에 있던 클럽 레드 제플린에서 함께 공연하며 한솥밥을 먹던 이들이라기엔 시간의 흔적이 외모에서 꽤 묻어났다.
그러나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의 첫 인사는 역시 '음악'이었다.

엄인호가 "오는 길에 도어즈(Doors) 음반을 샀다"고 하자 이정선은 "CD로 들으면 음질이 안 좋을텐데…"라며 LP 찍는 공장이 모두 문을 닫은 아쉬움부터 꺼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78년 이광조와 함께 통기타 트리오 풍선을 결성하고 1979년 음반을 낸 이래 지금까지. 1986년 4월부터 레드 제플린에서 이광조, 한영애, 김현식, 정서용 등과 함께 공연하다가 그해 6월 대학로 파랑새극장에서 첫 공연 포스터를 찍으면서 신촌블루스란 팀명을 처음 썼다.

만담(漫談)처럼 풀어낸 이들의 대화는 80년대를 추억하는 신촌블루스 시절 에피소드, 음악 시장 침체의 원인, 음악을 대하는 젊은 뮤지션의 얕은 자세를 질타하는 이야기로 물 흐르듯 이어졌다. 이정선은 뼈가 있는 냉소적인 말을 툭툭 내뱉었고, 엄인호는 담배 여러 개비를 피우며 조근조근 설명했다.

둘은 6월27~28일 오후 9시 경기도 고양어울림누리 별모래극장에서 신촌블루스의 '선생님과 룸펜'을 무대에 올린다. 통기타로 '외로운 사람들', '우연히', '건널 수 없는 강' 등을 노래할 예정이다.


▲이정선(이하 이): 룸펜과 노숙자의 차이가 뭔지 아니. 룸펜은 하는 일 없이 먹고 사는 사람, 노숙자는 하는 일도 없고 먹고 살기도 힘든 사람이다. 그러고보면 인호는 마누라를 참 잘뒀어. 껄껄.

▲엄인호(이하 엄): 형, 시인 이상이 룸펜이잖아. 내가 술만 먹지 당구, 장기, 바둑도 안하잖아.

▲이: 자유롭게 사는 네가 부럽기도 해. 넌 내가 월급받는 게 부럽겠지. 우리 마누라는 정기적으로 월급 나온다고 좋아하던데. 난 가르치는게 재미있어. 누군가가 나로 인해 실력이 느는게 좋아. 그래서 기타 교본 '이정선 기타교실'도 냈던거고.

▲엄: 난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형은 스탠더드한 인생이지만, 난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지. 어디 가고 싶으면 가야돼. 미국으로 6개월 간 훌쩍 떠나기도 했잖아. 그럼 아침 출근은 어렵지.

--유쾌한 워밍업도 잠시, 대화는 훌쩍 신촌블루스 시절로 타임머신을 탔다.

▲엄: 신촌블루스 때를 생각하면 '아! 옛날이여'란 탄식이 절로 나와. 사실 신촌블루스는 느슨하게 들어왔다 나가는 동아리로 시작했잖아. 92년 4집까지 내고 이후부터 다 떨어져나가고 내가 지켰지만 2년 전부터 신촌블루스를 쓰지 않겠다고 말해도, 내 밴드 공연을 할 때면 매번 따라붙더라고. 어쩔 수 없이 계속됐지. 진짜 그때는 음악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는데.

▲이: 그때는 음악으로 위로받았지만 지금은 재미있는 매체가 너무 많아.

▲엄: 사람들이 여유도 없지. 요즘은 40대만 되면 장래를 불안해 하니. 자식에 '올 인' 하기도 하고.

▲이: 89년 2집까지 하고 나니 통기타가 그립더라고. 매너리즘에도 빠졌지. 그래서 팀을 나간거야.

▲엄: 사실 형이 나가니 음악적으로 아무도 참견 안하고 좋더라. 그래도 우린 달랐기에 좋았어. 형은 어쿠스틱하고 음악적 섬세함이 있었고 난 '양아치' 스타일로 내 마음대로 흐트려 놓는 실험적인 스타일이었지. 얼마 전 KBS 1TV '콘서트 7080'에 나갔는데 배철수 씨가 '혹자는 신촌블루스에 블루스가 없다'고 지적한다는 거야. 그래서 똑같이 '그 사람은 블루스를 아나'라고 되물었어.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생각이지. 지금 생각해도 분해.

▲이: 하하, 붕어빵에도 붕어가 없는데 뭐. 우리 음악은 '뽕 블루스'지. 분해하지 마라. 장르를 따지는 건 평론가가 할 일이고 음악하는 사람은 그냥 하는거야. 누가 '이번엔 어떤 장르를 써야지' 신경쓰니.

▲엄: 그러고보면 (김)현식이와의 에피소드가 참 많았어. 대마초로 잡혀가 공연 펑크내고, 갑자기 증발하고. 아예 공연 2~3일 전부터 우리 집에 감금해놓고 내 아내가 도망 못가게 감시했어. 술을 먹여서 재우기도 하고.

▲이: 현식이 세상 뜨고 친했다는 사람들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현식이는 노래를 정말 잘했지. 그만큼 잘하는 친구가 없었어.

▲엄: 레드 제플린 시절 이문세와 작곡가 이영훈, 유재하가 오곤 했잖아. 그때 내가 문세와 영훈이를 소개시켜줬잖아. 어느 날 영훈이가 두꺼운 노트를 들고 찾아왔는데 그 안에 '난 아직 모르잖아요' 등 자작곡들이 있었지. 문세가 그때 내게 곡을 달라고 했는데 맞는 곡이 없어서 영훈이를 소개시켜줬지.

▲이: 그랬었어. 현식이는 신촌블루스 활동을 하며 봄여름가을겨울과 밴드를 만들었고 이때 건반 주자가 유재하였지. 결국 현식이가 술 먹고 사고치니 자기 밴드를 만든거야. 껄껄.

--엄인호는 전두환 정권부터 장발 단속을 안해 좋은 점도 있었다, 이정선은 들국화는 팀이지만 신촌블루스는 동아리였기에 누가 빠져도 상관없이 공연 때마다 레퍼토리가 달라졌다며 한바탕 웃었다. 어느새 두 사람의 대화는 현재로 거슬러 올라오기 시작했다.

▲엄: 지금 가요계를 죽인 사람은 음반제작자, PD, 미디어 등 가요계 종사자들이야. 80~90년대 제작자들은 음반으로 번 돈을 재투자 하지 않았어. 밴드로 돈을 벌어도 댄스 팀을 만드는데 혈안이 됐기에 지금 밴드의 맥이 끊긴거야. 가요계 침체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이: 음악하는 자세가 달라져서 그래. 예전엔 음악하다 먹고 살았는데 요즘은 먹고 살기 위해 음악을 하니.

▲엄: 그렇지, 예전에 우린 10년, 20년 미리 준비돼 있었지. 지금도 돈 생기면 악기 사려고 싼 음식을 먹으니. 요즘 애들은 인내란 게 없어. 우리 때처럼 악보만 주면 기타를 치는 애들도 없고.

▲이: 샘플이 없으면 못해, 창의성이 없지. 실용음악과가 생기면서 나온 병폐야. 58개 대학에 실용음악과가 있는데, 학교에서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클래식처럼 가치있는 쪽으로 몰아가려고 하니 편협해지지. 전반적으로 수준은 높아졌지만 교재로 배워서 악보없이 코드만 그려주면 못해.

▲엄: 우리 때는 선배가 '해봐' 하면 기타를 쳤잖아.

▲이: 실용음악과가 애들을 버리고 있어. 창작곡을 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도전 의식이 없으니.

▲엄: 음악적인 동료 의식도 없어. 모두 라이벌이야. 실력이 좋은 친구를 보면 '저것도 음악이야'라고 욕하고 타인의 좋은 점을 배우겠다는 생각이 없어. 모두 독불장군이지. 미국 클럽에선 돈을 안 받아도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는 일본 애들이 많은데.

▲이: 예술에 대한 존경심이 아니라 경외심만 가져도 될텐데, 아쉬워. 난 그래도 일본 음악보다 우리 음악이 좋아. 민족성 때문인지.

--엄인호는 '요즘 젊은이'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아들(엄승현ㆍ28)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의 아들은 엄인호 밴드에서 기타 주자다.
▲엄: 아들이 매일 본 게 내가 기타치는 거잖아. 절대 기타 안 잡겠다고 하더니 군대 갔다와서 결국 기타를 잡더라고. 음악하리라고 기대 안했는데.

▲이: 넌 자유로운 척 하면서 끝까지 아들에게 A/S해.

▲엄: 곧잘하지만 아직은 성에 안차.

▲이: 깊이는 나이가 들어야 나와.

▲엄: 그래서 내가 데리고 하는거야. 1년간 같이 활동했는데 아들과 함께 음반도 내보려고.

▲이: 그놈은 조건이 좋아. 아버지와 팀 하면서 배우는게 많지. 요즘 애들은 테크닉이 좋지만 알맹이가 없잖아. 우리 때는 젓가락 하나만 있어도 노래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