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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하셨어요?" "사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먹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는데도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들은 볼 일이 있어 나가고 난 남은 작업을 해치우는데 방금 전의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식사하러 가요. 도당동에 된장찌개 맛있게 하는데 있어요." 그래서 찾아간 도당동의 시골보리밥집. 평범한 동네에 평범한 가게, 테이블 네 개짜리 보리밥 집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분위기를 살펴보니 일단 괜히 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맛집을 두루 다니다 보니 '감'이라는 게 있다. 인간관계에서 선입관은 나쁘다고 하지만 식당에 대해서는 선입관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그 집에 대해서 평이 내려지고 대부분 예상대로다. '이 집은 맛있을 것 같은 걸', '이 집은 음식이 기대가 안 가는 걸'하는 식이다. 잠시 후 깍두기와 땅콩조림 반찬이 나오고 보리밥과 나물이 나왔다. 그런데 나물이 무려 열 가지가 넘는다. 가끔 나물을 적게 주는 집이 있어, 나물을 밥에 넣으면서 같이 식사하는 사람 눈치를 봐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나물을 가져간 후 맨 나중에 싹쓸이 하곤 했는데 이 집은 그럴 염려가 없다. 고사리, 호박, 도라지, 꽈리고추찜, 취나물, 콩나물, 가지나물, 마늘쫑, 버섯 등등. 참 다양하게도 나온다. 그렇게 해서 받는 가격은 한 그릇에 4000원!
나물을 한 가지씩 밥 위에 얹고 고추장을 뜨는데 주인아주머니 한마디 하신다. "고추장 많이 넣지 마세요." 맞다! 맞어! 비빔밥에 고추장 많이 넣어봤자 고추장 맛밖에 더 나겠는가? 고추장 많이 넣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는 걸 보니 비빔밥에 대해 뭔가 아시는 분이다. 곧이어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가 나왔다. 아주머니가 직접 밥 위에 몇 국자 퍼준다. 밥을 이리저리 비벼서 한 수저 떠먹고 우물우물 씹고서 된장찌개 한 수저 떠 넣으니 어느새 입안이 텅 빈다. 된장찌개가 참 구수하면서도 개운하다. 알고 보니 2년 묵은 집 된장으로 끓였다고 한다. 된장에 박은 무짠지가 들어가서인지, 특별한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맛과 간이 있다. 맛있어서 계속 떠먹게 된다. 찌개는 2년 묵은 장으로 해야 맛이 나고 장아찌는 좀 더 오래된 장에 박으면 맛이 난다. 된장과 달리 고추장은 오래 묵으면 맛이 떨어진다. 굳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장아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을 건 고추장에, 오래두고 먹을 장아찌는 된장에 묻는 게 좋다. 이 집은 가게에 나와서 먹는 손님보다 배달이 더 많다.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아저씨는 배달을 아주머니는 주방과 홀을 책임지고 있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타주신다. 맛이 다르다 했더니 커피믹스가 아니고, 직접 커피와 설탕 프림을 넣고 탄 것이었다. 다방도 미리 내려둔 원두커피가 나오는 세상, 커피 한잔까지 직접 타는 정성이 음식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