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앙증맞게 감자 갈기 | | ⓒ 김대갑 | | 지난 일요일은 아침나절부터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마음을 심상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인 것 같아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마 이 비가 그치면 지난 여름의 그 무더웠던 열기는 새벽 빗자루에 쓸려 가는 먼지처럼 허공으로 날아갈 것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나른하게 창 밖을 응시했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 심란하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절로 생각나는 것이 바로 부침개와 막걸리이다. 부추전도 좋고, 대구전도 좋고, 김치전도 좋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이런 날에 반드시 먹는 별식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생감자를 갈아서 부쳐먹는 감자전이다.
밀가루나 계란, 부추 같은 일체의 잡물을 섞지 않고 오로지 감자만 갈아서 프라이팬에 부쳐 먹는 감자전. 신선한 생감자의 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감자전은 내가 집사람에게 가르쳐 준 별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하나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역시 내가 집사람에게 가르쳐 준 별식인 콩국수였다. 이제 우리 가족이 총출동하여 콩국수와 감자전을 해 먹어야 한다. 아빠의 진두지휘 하에 말이다.
| | ▲ 콩껍질은 이렇게 까는 거야 | | ⓒ 김대갑 | | 우선, 우리 집 막내가 감자를 갈겠다고 나선다. 아빠가 껍질을 벗겨놓은 알 감자를 앙증맞은 손으로 집더니 강판에 쓱싹쓱싹 갈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에 뒤질세라 딸아이가 어젯밤에 불려놓은 콩의 껍질을 까겠다고 나선다. 그리하여 두 놈이 나란히 거실에 앉아 감자를 갈고 콩 껍질을 까기 시작한다. 그러면 집사람은 국수를 삶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아빠는 막내아들 옆에서 감자를 같이 갈아보기도 하고, 딸아이 옆에서 콩 껍질을 까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새 두 가지 일은 고스란히 아빠의 차지가 되고 만다. 고사리 손으로 강판에 감자를 간다는 것이 어디 보통 힘든 일인가? 또한 두 손가락을 이용하여 콩 껍질을 까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놈은 어느새 TV에서 방영되는 만화영화를 보느라 저희들이 하겠다고 나선 일을 팽개치고 만다. 귀엽고 고얀 놈들!
| | ▲ 어, 잘 갈렸다. | | ⓒ 김대갑 | | 사실 콩국수와 감자전은 손이 참 많이 가는 음식이다. 콩국수의 경우만 해도 무려 6가지의 공정(?)이 소요되고, 감자전은 강판에 감자를 갈아야 하는 심한 노동(?)을 요구하는 음식이니 말이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별식을 위해 아빠는 감자 갈기와 콩 껍질 까기라는 중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들어가는 음식이지만 두 가지 다 고단백질에 담박하면서도 깔끔한 맛을 아이들에게 주니 어찌 힘든 일을 마다하리오. 그런데 두 가지 다 동시에 하려니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허허.
마침내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이제 콩은 삶아서 믹서기에 갈기만 하면 되고, 감자는 프라이팬에 굽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조금의 실수라도 발생하면 우리 가족의 별식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 것이며 아이들은 원망에 가득 찬 시선으로 아빠를 노려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냥 푹 쉬라고 했다. 일주일 내내 우리 가족을 위해 불철주야 애쓴 지어미인데 일요일까지 일한다는 것은 좀 과한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국수만 삶아놓고 쉬라고 했다.
| | ▲ 감자익는 마을마다 피어나는 향기 | | ⓒ 김대갑 | | 우선 프라이팬과 양은 냄비를 동시에 렌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가열차게 스위치를 돌린다. 프라이팬 위에는 갈아놓은 감자를 놓고, 양은 냄비 안에는 나체가 된 콩을 넣고 삶기 시작한다. 콩이 구수한 향을 풍기며 익어 가는 동안, 감자전이 하나둘 완성된다.
감자전은 익으면서 신선한 야채 향을 흩날리는데, 그 향에 취한 가족들은 저마다 손에 젓가락을 하나씩 들고 식탁에 앉아 감자전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우선 감자전 한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정확히 10분만에 한 접시가 사라진다. 모든 게 너무나도 맛있게 구운 아빠의 솜씨 덕분이다. 후후.
| | ▲ 짠, 감자전 완성! | | ⓒ 김대갑 | | 이제 콩국수를 준비할 차례. 감자전 한 접시를 일부러 남겨놓은 채 다 삶아진 콩을 믹서기에 넣고 갈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물 조절을 잘 해야 한다는 것. 믹서기에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콩국이 묽어져서 맛이 없고, 물이 너무 적으면 콩국이 뻑뻑해서 먹기가 힘들다. 가는 도중에 수시로 콩의 점성을 확인해야 한다. 적당히 찰지게 간 콩이 바로 맛있는 콩국수의 비법이다.
드디어 콩국수도 완성. 오이와 참깨, 삶은 계란을 넣고 콩국수를 비비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적당히 식은 감자전이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음식 궁합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콩국수의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혀끝에 감돌 때, 감자전의 달착지근하면서도 부드러운 살결이 입안을 희롱한다. 게다가 몸에도 좋은 건강식이니 그야말로 일타삼피라!
비는 계속해서 창 밖을 때리고 식탁 위에는 콩국수와 감자전의 아름다운 만남이 계속되고 있었다. 더불어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별식여행도 계속되고 있었다.
| | ▲ 콩국수와 감자전의 아름다운 만남 | | ⓒ 김대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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