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강낭콩물을 내려 쑨 새알심 동지죽이다. | | ⓒ 전갑남 | | 아침을 먹으며 동지 팥죽이 생각나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올해도 팥죽 쒀야지?"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매년 하던 일을 올핸 왜?" "애동지 때는 팥죽 대신 팥떡을 해먹는다잖아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분한테 들은 이야기란다. 동지가 22일이다. 올해 동지는 음력으로 11월 3일이다. 초순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라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애동지 때 팥죽을 쑤면 별로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렇죠?"
"그럼 팥 대신 강낭콩으로 쑤면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네."
결국, 아내는 팥 대신 강낭콩으로 새알심 동지죽을 쑤기로 했다. 금세 찹쌀을 담그고, 강낭콩을 물에 불린다. 오늘 저녁은 맛난 새알심 동지죽이다. 기대된다.
동지 때 비는 소원은 각별하다
내가 클 때만 해도 우리 어머니는 동지 때 잊지 않고 동지팥죽을 쑤었다. 푸짐하게 쒀 이웃들과 나눠먹고, 빨간 죽을 대문간과 마당 구석구석에 뿌렸다. 한 해 동안 묵은 찌꺼기를 떨어버리고, 천지신명의 밝은 기운이 솟아오르기를 빌었다.
어머니는 음의 기운에서 양의 기운으로 바뀌는 절기인 동지에 새해 소원을 빈 것이다. 죽을 뿌리면서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셨다. 온갖 잡귀는 물러가고, 좋은 일이 집안 가득 찾아들라는 마음을 담으셨다. 간절한 기원이 담긴 어머니의 정성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한겨울의 얼어붙은 땅에서 씨앗은 더 강한 생명력을 키워내고, 땅 속에 숨었던 해충들은 추위에 얼어 죽는다고 한다. 자연의 조화 속에서 새해를 앞둔 절기에 우리 조상들은 잡귀를 쫒는 의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붉은 색을 무서워하는 잡귀의 속성을 알고 곡식 중에서 유난히 붉은 색을 지닌 팥으로 죽을 쒀 잡귀를 쫒는 의식에 사용했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고, 땅에 뿌렸던 것은 인간과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액 막음의 차원을 넘어 희망찬 기운을 받아 밝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돌아오는 새해엔 좋은 일만
| | ▲ 새알심을 빚는 아내 | | ⓒ 전갑남 | | 나는 퇴근과 함께 다른 약속도 뿌리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왔다. 아내는 벌써 불린 강낭콩을 삶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방앗간에서 찹쌀도 빻아다 놓았다.
강낭콩이 삶아진 물이 팥물처럼 빨갛다. 강낭콩을 으깨어 색깔고운 콩물을 걸러내니 더욱 걸쭉해진다.
| | ▲ 새알심 동지죽에 들어간 강낭콩 | | ⓒ 전갑남 | | 우리는 지난 여름 수확해둔 강낭콩이 많이 있다. 강낭콩도 영양면에서 보면 여느 곡식에 떨어지지 않는다. 비타민 B군이 풍부하고, 신진대사를 순조롭게 한다. 암을 예방하고 당뇨병에 좋다고 알려졌다. 특히, 갱년기 여성들에게 좋은 식품이다. 강낭콩은 밥에 넣어 먹으면 파슬파슬한 맛이 그만이다. 죽을 쑬 때 팥 대신 이용하면 요긴하다.
| | ▲ 달라붙지 않게 가루를 묻혀 새알심을 상 위에 올려놓는다. | | ⓒ 전갑남 | | 새알심을 빚을 차례다. 찹쌀가루에 적당히 간을 하여 찬물에 반죽한다. 반죽이 끝나자 아내가 새알심을 같이 만들자 한다. 적당이 떼어 길쭉하게 밀고 조금씩 떼어 손바닥으로 굴리자 하얀 새알심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모양새가 새 알처럼 예쁘다.
| | ▲ 콩국물이 끓어 오르면 새알심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 | ⓒ 전갑남 | | 이제 푹 끓여진 강낭콩물에 새알심을 넣는다. 한소끔 끓이자 새알심이 동동 뜬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다. 풀풀 끓어오르는 죽에서 단내가 난다.
"여보, 동치미 좀 꺼내 봐." "아참, 동지죽에 동치미가 딱 어울리겠네."
| | ▲ 새알심 동지죽과 잘 어울리는 김장김치와 동치미 | | ⓒ 전갑남 | | 맛 들여진 김장김치에 시원한 동치미가 곁들여진 뜨끈한 새알심 동지죽! 이런 게 음식궁합이라고 하나보다. 아내가 상을 차린다. 벌써 해가 떨어진 지 오래다.
"와! 부드러운 새알심이 저절로 넘어가네." "강낭콩죽이지만 팥죽맛 이상이죠?"
"달짝지근한 게 아주 맛있어." "당신은 뭣을 먹어도 맛있다면서. 고마워요."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맛있다. 한 그릇을 금세 비우고 또 한 그릇을 먹었다.
이제 병술년이 서서히 저물어 간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 한다. 묵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정해년을 맞이 해본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건강과 행복이 넘치기를 기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