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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콩국수

여름철 점심에는 고소한 콩국수가 최고
아내가 만든 고소하고 시원한 콩국수
이승철(seung812) 기자
▲ 오늘처럼 무더운 주말은 시원 고소한 콩국수가 그만입니다
ⓒ 이승철
"여보, 여보! 서둘러요, 늦으면 안 되니까."

주말인데도 오늘 아침은 유난히 부산스러웠다. 요즘 한창 인기 절정인 심형래 감독의 역작 <디워>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어제 저녁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의 손에는 영화 예매권 두 장이 들려 있었다.

"지난주에는 당신이 <화려한 휴가> 예매해서 봤으니까 내일은 <디워> 한 번 보자고요."

그런데 조조 영화라 아침 8시 20분에 시작했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영화관이니 뜨겁고 무더운 낮시간보다 더워지기 전에 보고 오자는 것이었다. 서두르는 아내 덕분에 늦지 않게 영화관에 도착했다. 영화는 예상보다도 훨씬 재미있었다. <디워>는 어차피 블록버스터형 오락영화가 아닌가.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는 할리우드형 오락성에 걸었다.

그런데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구성이 어쨌다느니, 내용 전개가 어쨌다느니 하는 건 괜한 트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재미있는 영화였다. 어쩌면 할리우드 영화를 능가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번 <화려한 휴가> 때는 내내 울다가 나왔는데 오늘은 그냥 재미있던 걸? 심형래 감독 참 대단한 사람이야. 오락영화 그 정도면 성공작 아닌가? 그만하면 미국에서도 성공할 것 같던데요. 물론 내용이나 역사성, 구성면에서는 <화려한 휴가>가 더 볼 만한 영화였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내가 내린 짤막하고 즉흥적인 촌평이었다.

▲ 삶아서 껍질을 벗겨놓은 콩을 믹서로 갈아서 콩국물을 만들었다
ⓒ 이승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불볕이었다. 아직 오전 10시 반인데도 무더위가 벌써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겨우 10분을 걸었는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간단한 샤워로 땀을 씻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여보!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아내는 벌써 점심 걱정을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집에서 밥 해먹기 귀찮으니까 외식하러 나가자는 신호일 수도 있고,

"난, 당신이 만들어 주는 음식은 뭐든 좋아."

이건 아내에게 아부하는 말이 아니다. 30년 넘게 길들여진 음식 맛이어서 그런지 그 어떤 요리사가 만든 음식보다 나는 아내가 만들어준 요리를 좋아한다. 더구나 오늘같이 무더운 날 외식하러 나가기는 더욱 귀찮은 일이다.

"그런 소리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감동 같은 것 안 해요. 그런데 아 참, 오늘 날씨도 무더운데 콩국수 어때요?"
"콩국수? 좋지."

대화 도중에 아내는 갑자기 콩국수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 콩국수를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 오늘 점심 메뉴는 콩국수가 되었다.

▲ 끓는 물에 국수를 삶아 차가운 물에 식혀 건져놓았다
ⓒ 이승철
아내는 즉시 콩국수 만들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콩을 삶아 불려 껍질을 벗겨낸 다음 찬물에 식혀 놓았다. 그 콩을 믹서에 갈아 국물을 만들어 놓은 다음 적당히 간을 맞춰 놓는다. 간을 보는 것은 내 몫이다. 이만하면 적당하다고 생각되면 아내는 꼭 내게 간을 봐달라고 하는데 오늘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콩 이래 봬도 서리태예요. 몸에도 아주 좋은 검은 콩."

아내는 색다른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내게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습관이 됐다.

그 다음 오이를 잘게 썰어놓고 밥상을 차렸다. 상이라야 무를 썰어 무친 생채나물과 잘 익은 파김치, 달랑 두 가지다. 콩국수에는 많은 반찬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국수를 적당히 삶아서 역시 찬물에 바로 식혔다.

식힌 국수를 한 그릇용으로 적당량을 채반에 뭉쳐 놓은 걸 보니 네 개다. 우리 부부가 먹으면 두 개면 족한데 말이다. 내가 왜 네 그릇이나 만들었지 하고 말하려는 순간 아내가 눈치를 챘는지 먼저 말하고 나온다.

"아! 이거 두 그릇은 앞집 00네 주려고, 우리만 먹을 수 있나? 나눠 먹어야지."

아내는 항상 이런 식이다. 음식을 만들면 항상 넉넉하게 만들어 누군가와 나눠먹는 것이 습관이다. 우리 식탁에 두 그릇을 말아 내놓은 다음 나머지 두 그릇도 마저 국물을 부으려고 한다. 앞집 부부 외출했는지 모르니까 한 번 알아보고 국물 붓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냥 붓고 만다.

▲ 우리 부부 오늘 점심은 영화보다 고소한 콩국수를 만들어 먹었지요
ⓒ 이승철
"앞집 사람들 없으면 아래층에 주면 되지 뭘" 한다. 그런데 내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앞집 부부는 외출하고 없었다. 아내는 국수 두 그릇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 아저씨가 더 좋아하던 걸."

아래층은 마침 점심 전이더라는 것이다. 그 사람들도 콩국수를 좋아하는지 무척 반기더라는 것이었다. 무더운 주말 아침에 오락영화 한 편 보고 점심은 그렇게 아내와 둘이 콩국수를 만들어 위·아래층 부부가 시원하고 고소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아까 그 영화 맛보다 이 콩국수 맛이 더 시원하고 고소한 걸.'

콩국수를 먹으며 아내에게 슬쩍 공치사를 했다.

"그럼, 누구 솜씬데. 호호호."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법이다. 아내는 너무 많이 들어서 감동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역시 한마디의 칭찬으로 고소한 콩국수 맛이 더욱 감칠맛 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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