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자와의 ‘보통국’ 일본 / 이주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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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소 다로 총리는 금년에 선거를 치를 듯했다. 그런데 금융위기를 끌어들여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라며 미루고 있다. 30%대까지 떨어진 지지율이 이유다. 선거에 나설 형편이 아닌 것이다. 자민당에서는 ‘말을 갈아타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가 애쓴다고 금방 좋아질 경제가 아닌 줄 아는 탓이다. 정권이 바뀌면 다음 총리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다. 지난해 아베 신조는 그를 ‘저주’하며 1년 만에 총리 자리를 내놓았다. 지난 9월 후쿠다 야스오도 그를 ‘저주’하며 1년도 못 채우고 권좌를 내려왔다. 다음은 아소 다로의 순서다. 참의원에서의 여소야대가 오자와가 자민당을 궁지에 빠뜨리는 수단이다. 아베·후쿠다·아소 모두 할아버지·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38·53·39살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후 쉽게 당선을 거듭하며 관록을 쌓았으나 남다른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그런데도 총리가 된 것은 ‘이름값’이 있었고 운이 따랐기 때문이다. 닦고 연마한 지도자의 자질은 없었다. 필요할 때 행동하지 않았고 위기에서 결단하지 못했다. 곤란에 처하자 투지를 불태우는 대신 주저앉았다. 오자와 이치로도 자민당 국회의원이던 부친의 급서로 스물일곱에 뒤를 이었다. 그리고 빠르게 출세하여 40대에 2인자인 당 간사장에 올랐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달랐다. 거의 정상에 손길이 닿던 1993년 7월 자민당을 뛰쳐나왔다. ‘보통국가 일본’의 역사를 열어야 하는데, 그러자면 강한 정부를 세워야 하고, 강한 정부를 세우려면 양대 정당제가 들어서야 하며, 이를 위해 자민당에 몸담고만 있으면 편하게 국회의원 할 수 있는 중선거구제 대신 치열하게 다퉈야 살아남는 소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창조’를 위해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자와는 같은해 8월 자민당과 공산당을 뺀 8개 정파를 묶어 ‘비자민 연립정권’을 세웠다. 정권은 단명에 그쳤고 권력은 자민당에 돌아갔으나 그 전에 염원을 이뤘다. 1994년 소선거구 중심으로 선거제도를 바꿔 ‘양대 정당제’를 향한 길을 연 것이다. 그 후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좌절도 겪었다. ‘오만’으로 비치는 강한 성격도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결국 제1야당 당수로 재기했고 이제 집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대양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바다에 뛰어든 무모’로 비쳤던 그가 이제 그 대양을 거의 다 건넌 것이다. 아베·후쿠다·아소가 당할 수 있는 오자와가 아닌 것이다.
오자와를 ‘성공할 지도자상’이라고 하면 과대평가일지 모른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는 행동하는 인간이다. 언행을 일치시키려 하는 정치가다. 그의 ‘보통국가’는 이제 과거에 구속받지 않고 현재의 스스로에 자신을 가지며 국제사회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일본이다. ‘보통국가’는 ‘역사의 채무자’가 빚을 벗어던지는 것이다. 남는 것은 ‘역사의 채권자’인 한국의 준비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상대와 맞설 …. 이주흠 전 외교안보연구원장·선문대 객원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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