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잠드는 섬, 느릿하게 돌아보라…석모도 버스여행
강화도 석모도에 다녀왔다. 자동차는 집에 두고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시외버스 여행은 자동차 여행이 주지 못하는 묘한 재미가 있다. 바다만 보지 않고 산에도 가봤다. 석모도는 산도 좋다.
△시외버스로 여행하기
1980년대 초만 해도 시외버스는 열차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여행수단이었다. 버스터미널은 배낭은 물론 보따리, 텐트, 담요까지 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들뜬 여행자들의 목소리는 한 음계쯤 높아서 터미널은 늘 왁자지껄했다. 터미널의 소란스러움은 명동이나 광화문의 소음과는 달랐다. 불쾌하지 않았다. 휴가 내기도 눈치가 보였던 시절, 짬을 내어 떠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었다. 여행자들의 마음은 터미널에서부터 이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실어나르는 비행기를 보며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던 것처럼 한때 버스터미널도 여행을 꿈꾸는 자들의 공간이었다.
물론 요즘 시외터미널은 예전 같은 떠들썩함이 없다. 고속버스는 여전히 주요한 운송수단이지만 시외버스는 이제 타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도 시외버스에는 고속버스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가 있다. 바로 ‘느린 여행’의 즐거움이다. 속도에 매달리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서울 신촌 터미널에서 강화행 버스를 탔다. 오전 7시20분 출발한 강화행 버스엔 딱 4명이 탔다. 앞자리에 앉은 60대 남성은 김밥을 꺼내 먹었다. 기자도 미리 사놓은 빵과 두유를 꺼냈다. 버스에서 요기를 해야 할 정도로 허기진 것은 아니었지만 달걀이라도 까먹으며 즐거워했던 옛생각이 나서다. 버스는 김포공항 앞 송정역에서 승객을 더 태웠고, 김포의 고촌에선 네댓명이 올라탔다. “고촌까지만 끊은 손님 나오세요.” 시외버스는 구간마다 요금이 다르기 때문에 기사는 승객이 어디서 탔는지 신경을 썼다. 1시간25분 만에 도착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외포리행 버스를 탔다. 여기서부터는 할머니 할아버지 승객이 많다. 외포리까지는 20분. 외포리 버스매표소는 70년대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허름했다. ‘매표소’란 글씨는 간판쟁이가 쓴 것이 아니라서 어수룩했고, 허름한 건물 내에선 노인이 표를 팔고 있었다.
다음은 배를 탈 순서. 석모도행 배가 떠나는 선착장은 정류장 뒤편에 있다.
석모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지갈매기다. 거지갈매기와 여객선의 하루 일과는 똑같다. 배가 떠나면 갈매기도 새우깡을 얻어 먹기 위해 난다. 5분간 배를 뒤쫓아가며 새우깡을 얻어 먹고, 배가 정박해 있을 때 10분쯤 쉰다. 뱃머리를 돌린 철부선이 떠나면 다시 5분간 날다가, 또 다시 10분 쉬고…. 석모도 갈매기들은 기계처럼 생활하고 있다. 물고기를 잡는 사냥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선착장에 내려 5분쯤 기다렸더니 이번엔 마을버스가 왔다. 노란색 큰 버스는 보문사행, 마이크로 버스는 상리와 하리행이다. 보문사행 버스는 60대 이상의 할머니 승객이 많았다. 물론 주말이면 여행자들로 꽉꽉 찬다. 출발시간이 남아 운전기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한 할머니가 ‘어부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처녀 땐 밧줄처럼 팽팽했을 것 같았던 목소리는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졌다. 발라드는 ‘뽕짝’, ‘뽕짝’은 판소리처럼 들렸다. 뒷좌석의 할머니는 노랫가락에 신경도 쓰지 않고 며느리 얘길 꺼냈다. “요즘 애들은 시에미가 어딜 가도 물어보질 않아요.” 또다른 할머니는 신음하듯 “나무관세음보살, 애고 애고 나무관세음보살…”만 뱉어냈다. 시외버스는 아직도 옛날을 싣고 달렸다.
△해명산~낙가산 산행
옛사람들이 보기엔 석모도는 바다보다 산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석모도의 행정지명은 삼산면(三山面)이다. 삼산이란 해명산, 낙가산, 상봉산을 뜻한다. 삼수면이 아니라 삼산면이 된 것은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는 뜻이리라.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해명산에서 낙가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많이 탄다. 50대로 보이는 남성 3명과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로가 평이해요. 그냥 능선따라 쭉 가면 되거든요. 좌우로 바다가 보여서 경치는 좋고…. 내려서는 길이 몇갈래 있는데 이정표가 잘 돼있으니까. 2시간30분이면 보문사까지 갈 수 있어요.”
쉬운 산행길이라고 했다. 해명산 정상(327m)까지 딱 30분 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산행은 그리 쉽고 만만하지는 않았다. 해명산 정상에서 보문사(낙가산)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세상의 모든 거북이들에게 산은 똑같다. 동네 뒷산도 힘들다. 높건 낮건 산은 산이다. 산행을 같이 시작했던 등산객을 10여분 만에 놓쳤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산 속으로 사라졌다.
[IMG5]입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뉴턴은 틀렸어!” 적어도 산에선 중력의 법칙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산꾼들은 달표면을 걷듯이 성큼성큼 가는데 기자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바위 하나도 조심스럽게 넘었다. 그래도 거북이들이 산을 타는 이유는 뭘까? 거북이도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고, 정상에 서 본 거북이는 그 환희를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게 산이다.
물론 경치는 아름다웠다. 바다는 어디서나 보였다. 바위 위에서도, 숲 사이에서도 보였다. 마루금을 올라챌 때마다 다른 바다가 나왔다. 산행을 해보면 석모도가 왜 아름다운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길잡이
강화행 버스가 다니는 신촌버스터미널은 신촌전철역 7번 출구로 나간다. 10~15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강화버스터미널까지는 1시간30분 걸리며 요금은 4200원. 터미널에서 외포리까지 버스요금은 1000원. 외포리에서 석모도 가는 배삯은 왕복 2000원이다. 시외버스가 경제적이지만은 않다. 세명 이상이면 자가용이 훨씬 경제적이다.
강화군 홈페이지(www.ganghwa.incheon.kr) 메인 화면 중간 오른쪽에 교통종합정보가 있다. 시외버스를 클릭하면 신촌, 대전, 영등포 등에서 가는 버스 시간표와 버스회사 연락처도 나와있다. 강화군내 버스는 평일 남쪽과 북쪽, 공휴일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다닌다. 시간표가 실려있다. 석모도 마을버스 시간표는 군청 홈페이지에 없다. 석모도 버스는 군내버스가 아니라 마을버스(032-932-3137)다. 배가 도착하면 버스가 10~20분 내에 온다. 보문사행은 매시 10~15분에 출발한다. 1시간마다 떠난다. 관광객이 적은 상리와 하리행 버스는 2시간 간격이다. 공휴일에는 승객이 많아서 버스도 증편한다. 보문사행은 1000원이다.
해명산 등산을 하려면 운전기사에게 “등산로 입구에 세워달라”고 하면 전득이 고개 앞에 내려준다. 전득이 고개까지 버스료는 800원이다. 등산로의 종착점은 보문사로 돼있지만 등산로에서는 보문사로 들어갈 수 없다. 보문사를 빙 둘러 철조망과 담장이 쳐있다. 보문사 마애불을 보려면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보문사 입장료는 2000원. 산내들식당(032-932-3257)의 추어탕이 별미다. 보문사 전 매음1리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추어탕 전골은 1만5000원, 2만원, 3만원이다. 펜션도 함께 운영한다. 평일 5만~6만원. 주말은 7만~8만원이다.
<글 최병준·사진 김창길기자>

보문사에서 내려다본 전경.
△시외버스로 여행하기
1980년대 초만 해도 시외버스는 열차와 함께 가장 보편적인 여행수단이었다. 버스터미널은 배낭은 물론 보따리, 텐트, 담요까지 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들뜬 여행자들의 목소리는 한 음계쯤 높아서 터미널은 늘 왁자지껄했다. 터미널의 소란스러움은 명동이나 광화문의 소음과는 달랐다. 불쾌하지 않았다. 휴가 내기도 눈치가 보였던 시절, 짬을 내어 떠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었다. 여행자들의 마음은 터미널에서부터 이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알랭 드 보통이 공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꿈을 실어나르는 비행기를 보며 즐거움을 느낀다고 했던 것처럼 한때 버스터미널도 여행을 꿈꾸는 자들의 공간이었다.
물론 요즘 시외터미널은 예전 같은 떠들썩함이 없다. 고속버스는 여전히 주요한 운송수단이지만 시외버스는 이제 타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도 시외버스에는 고속버스에서 느끼지 못하는 재미가 있다. 바로 ‘느린 여행’의 즐거움이다. 속도에 매달리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석모도 앞에 펼쳐진 갯벌.
다음은 배를 탈 순서. 석모도행 배가 떠나는 선착장은 정류장 뒤편에 있다.
석모도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지갈매기다. 거지갈매기와 여객선의 하루 일과는 똑같다. 배가 떠나면 갈매기도 새우깡을 얻어 먹기 위해 난다. 5분간 배를 뒤쫓아가며 새우깡을 얻어 먹고, 배가 정박해 있을 때 10분쯤 쉰다. 뱃머리를 돌린 철부선이 떠나면 다시 5분간 날다가, 또 다시 10분 쉬고…. 석모도 갈매기들은 기계처럼 생활하고 있다. 물고기를 잡는 사냥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선착장에 내려 5분쯤 기다렸더니 이번엔 마을버스가 왔다. 노란색 큰 버스는 보문사행, 마이크로 버스는 상리와 하리행이다. 보문사행 버스는 60대 이상의 할머니 승객이 많았다. 물론 주말이면 여행자들로 꽉꽉 찬다. 출발시간이 남아 운전기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한 할머니가 ‘어부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처녀 땐 밧줄처럼 팽팽했을 것 같았던 목소리는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졌다. 발라드는 ‘뽕짝’, ‘뽕짝’은 판소리처럼 들렸다. 뒷좌석의 할머니는 노랫가락에 신경도 쓰지 않고 며느리 얘길 꺼냈다. “요즘 애들은 시에미가 어딜 가도 물어보질 않아요.” 또다른 할머니는 신음하듯 “나무관세음보살, 애고 애고 나무관세음보살…”만 뱉어냈다. 시외버스는 아직도 옛날을 싣고 달렸다.
△해명산~낙가산 산행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등산로가 평이해요. 그냥 능선따라 쭉 가면 되거든요. 좌우로 바다가 보여서 경치는 좋고…. 내려서는 길이 몇갈래 있는데 이정표가 잘 돼있으니까. 2시간30분이면 보문사까지 갈 수 있어요.”
쉬운 산행길이라고 했다. 해명산 정상(327m)까지 딱 30분 만에 도착했다. 하지만 산행은 그리 쉽고 만만하지는 않았다. 해명산 정상에서 보문사(낙가산)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세상의 모든 거북이들에게 산은 똑같다. 동네 뒷산도 힘들다. 높건 낮건 산은 산이다. 산행을 같이 시작했던 등산객을 10여분 만에 놓쳤다.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더니 산 속으로 사라졌다.
[IMG5]입에서 쇳소리가 나왔다. “뉴턴은 틀렸어!” 적어도 산에선 중력의 법칙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산꾼들은 달표면을 걷듯이 성큼성큼 가는데 기자는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바위 하나도 조심스럽게 넘었다. 그래도 거북이들이 산을 타는 이유는 뭘까? 거북이도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고, 정상에 서 본 거북이는 그 환희를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게 산이다.
물론 경치는 아름다웠다. 바다는 어디서나 보였다. 바위 위에서도, 숲 사이에서도 보였다. 마루금을 올라챌 때마다 다른 바다가 나왔다. 산행을 해보면 석모도가 왜 아름다운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길잡이

선착장에서 보문사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
강화군 홈페이지(www.ganghwa.incheon.kr) 메인 화면 중간 오른쪽에 교통종합정보가 있다. 시외버스를 클릭하면 신촌, 대전, 영등포 등에서 가는 버스 시간표와 버스회사 연락처도 나와있다. 강화군내 버스는 평일 남쪽과 북쪽, 공휴일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어 다닌다. 시간표가 실려있다. 석모도 마을버스 시간표는 군청 홈페이지에 없다. 석모도 버스는 군내버스가 아니라 마을버스(032-932-3137)다. 배가 도착하면 버스가 10~20분 내에 온다. 보문사행은 매시 10~15분에 출발한다. 1시간마다 떠난다. 관광객이 적은 상리와 하리행 버스는 2시간 간격이다. 공휴일에는 승객이 많아서 버스도 증편한다. 보문사행은 1000원이다.
해명산 등산을 하려면 운전기사에게 “등산로 입구에 세워달라”고 하면 전득이 고개 앞에 내려준다. 전득이 고개까지 버스료는 800원이다. 등산로의 종착점은 보문사로 돼있지만 등산로에서는 보문사로 들어갈 수 없다. 보문사를 빙 둘러 철조망과 담장이 쳐있다. 보문사 마애불을 보려면 주차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보문사 입장료는 2000원. 산내들식당(032-932-3257)의 추어탕이 별미다. 보문사 전 매음1리에서 내려달라고 하면 된다. 추어탕 전골은 1만5000원, 2만원, 3만원이다. 펜션도 함께 운영한다. 평일 5만~6만원. 주말은 7만~8만원이다.
<글 최병준·사진 김창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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