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독립기업
76세의 노장老將 이어령이 젊음을 이야기한다. 나이든 사람으로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회한에 젖은 목소리로 힘없이 읊조리는 게 아니다. 인생의 풍부한 지혜와 경륜을 담아서, 젊은이보다 더 펄떡거리는 시각으로 대학, 대학생에 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이 꼭 젊은이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대학생’처럼 ‘젊게’ 살 ‘비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령의 서재에는 7대의 컴퓨터와 2대의 스캐너, 무선공유기, 프린터 등 각종 디지털 장비가 자리 잡고 있다. 7대의 컴퓨터는 그 자신이 직접 네트워킹했다. 그는 이 컴퓨터들을 이용해 직접 자료를 검색하고, 모으고, 정리한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 회로망과 연결해 젊은 생각들을 논리정연하게 쏟아낸다. 그에게 있어 컴퓨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뇌의 확장이다. 그런 만큼 그가 이야기하는 젊음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박제된 젊음이 아니라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싱싱한 젊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젊어질 수 있는 비결을 9개의 매직카드Magic Card로 설명한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카니자 삼각형Kaniza Triangle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
이 단순하고 짧은 노랫말에는 ‘뜨는 것’과 ‘나는 것’, ‘나는 것’과 ‘높이 나는 것’이 단계별로 선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확실히 ‘뜨는 것’과 ‘나는 것’은 다르다. 공기든 물 위든 ‘뜨는 것’의 힘은 밖에서 온다. 구름이나 풍선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기 위로 떠다니다가 사라지고, 물에 뜬 거품과 부평초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표류하다가 꺼져버린다. 하지만 ‘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힘과 의지로 움직인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향해 돛을 올리고 날개를 편다. 독수리의 날개는 폭풍이 불어도 태양을 향해 꼿꼿이 날아오르고, 잉어의 강한 지느러미는 거센 물살과 폭포수를 거슬러 용문龍門에 오른다.
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자성어에 ‘천외유천天外有天’이란 말이 있다.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차원을 한 단계 높여 ‘높이 높이’ 날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매기 ‘조너선’처럼 혼자서라도 높이 높이 나는 비행연습을 해야 하고, 다른 무리의 갈매기 떼를 만나 함께 비행을 해야 한다.
갈매기 ‘조너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카니자 삼각형’이다. 그림에서 보듯 게의 집게발처럼 생긴 것이 팩맨Pac-Man이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그 사이로 하얀 삼각형이 보인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그림이다. 보는 사람의 시각 속에서만 나타나는 삼각형인 것이다.
이 가상의 삼각형은 우리가 높이 날아야 할 공간, 창조적 상상력과 그 지성의 영역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집게발 같은 팩맨의 모양만을 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 사이에 있는 삼각형의 공백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상관없다. 꿈, 상상력, 창조공간, 미래의 판타지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높이 날아올라야 할 창조적 상상력의 하늘이라는 것이다. 높이 날기 위해서는 지식과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떴다 떴다 비행기>에서 “우리 비행기”는 내가 아니라 “우리 친구, 우리 이웃, 그리고 우리나라”다. 올해로 우리나라는 60년 환갑을 맞는다. 이번만은 추락하지 말고 높이 높이 날아야 한다. 이를 위한 추임새의 노래가 팩맨의 입속에서 흘러나온다.
2) 물음느낌표Interrobang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 유배 시절, 대정향교의 유생들 공부방인 동재에 ‘의문당疑問堂’이란 현판을 써주었다고 한다. 스승의 말을 듣고 그냥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속에 의문을 품으며 학문에 정진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어른들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묻는 것은 선생님 몫이고 아이들은 대답만 한다. 시험이라는 것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주눅이 든 아이들은 질문하는 버릇을 잃게 된다.
근대에 와서 서양문명이 동양문명을 제압한 가장 큰 무기는 알파벳 문장의 맨 뒤에 찍히는 물음표가 아니었을까. 이 간단한 부호가 과학과 기술을 낳고 위대한 문학과 철학을 태어나게 한 부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의문과 질문을 나타내는 물음표의 문화가 부족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각자 자기의 고유한 문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물음표만은 서양의 것을 그대로 따다 쓰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 그래서 기성관념에 본질적 의문을 던지는 것, 이것이 바로 모든 지적 활동의 출발점이다. 내가 지금까지 배운 지식, 알고 있는 모든 사물들에게 물음표를 달아보라. 그러면 세상을 덮고 있던 먼지와 때가 벗겨지면서 낯설게 보일 것이다.
물음표와 짝은 이루는 기호는 느낌표다. 알고리즘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컴퓨터는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 번갯불처럼 스쳐가는 아이디어의 이 느낌표!
물음표형 인간은 복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끝없이 회의하고 묻고 시험하고 주저하는 햄릿처럼, 가슴에 칼을 품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머뭇거린다. 그래서 물음표만 있는 사람은 회색지대에 멈춰서 있다. 그러나 느낌표의 ‘감동感動’은 느낄 감感, 움직일 동動, 즉 ‘느껴야 비로소 움직인다.’를 말한다. 풍차를 거인으로 알고 뛰어드는 돈키호테의 열정과 저돌적인 행동이 보여주듯 말이다. 물음표가 자동차의 브레이크라고 한다면 느낌표는 액셀러레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물음표는 느낌표가 있기 때문에, 느낌표에는 항상 물음표가 동행하기 때문에, 각자 특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물음느낌표는 젊음을 탄생시키는 매직카드다. 좌우 어느 한쪽 뇌만으로는 통합적인 미래의 나, 그리고 문명을 창조할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영어권에는 ‘최초의 펭귄First Penguin’ 이란 관용어가 있다. 펭귄들이 뒤뚱뒤뚱 떼를 지어 바다로 모여들지만 정작 바다에 뛰어들기 직전에는 일제히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머뭇거린다. 바다 속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먹잇감이 있지만 동시에 위험한 물개나 바다표범 같은 천적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뭇거리고 있는 펭귄의 무리 가운데 바다를 향해 맨 먼저 뛰어드는 용감한 펭귄이 있다. 그러면 그때까지 머뭇거리고 있던 다른 펭귄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Just Do It! 불확실하지만 일단 무언가 저지르는 것. 끝없이 회의하다가도 순간적 직관이나 느낌으로 판단하고 삶 속으로 뛰어드는 것. 이것이 의문과 감동이 한 몸이 된 ‘물음느낌표’의 상징적 부호가 의미하는 바이다. 자, 준비가 다 되었으면 불확실한 바다로 용감히 뛰어들어라. 젊음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난다. 젊음은 그렇게 탄생한다.
3) 개미의 동선Ant's Trace
옆의 그림에서 보면 개미의 행동은 머리카락 뒤엉킨 것처럼 어수선해 보인다. 먹이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먹이가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모르기에 멋대로 배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먹이를 찾으면 귀신같이 자기 집으로 달려간다. 그것도 제 위치에서 제 집 구멍까지 최단 경로를 찾아 일직선으로 돌아간다. 다른 개미들이 먹이가 있는 곳을 똑바로 찾을 수 있도록 페로몬을 분비하면서.
사는 동안 우리 주위에서는 반은 규칙적이고 반은 우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러한 현상을 일컬어 ‘유우성Contingency’이라고 한다.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예상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요, 그 현장이다. 그리고 ‘예스’와 ‘노’ 사이에 끼어 있을 때 인간은 가장 많은 학습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한다.
만약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이 시간표대로라면 학습의 프로세스는 제로에 가까워진다. 반대로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 앞에 직면하는 경우에도 역시 학습의 의지는 전무할 것이다. 영어에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말이 있다. 실수나 우연을 통해 의미 있는 일이 창조된다는 것을 뜻한다. 플레밍 박사의 페니실린 발견이 대표적 세렌디피티다. 하지만 비범한 것을 평범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세렌디피티란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것도 비범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과 눈을 지닌 사람에게만 우연이나 실수까지도 행운이 되는 세렌디피티의 가능성이 찾아온다.
4) 오리- 토끼Duck-Rabbit Illusion
옆의 그림은 비트겐슈타인의 애매도형이다.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여주면 오리라고도 하고 토끼라고도 할 것이다.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그림의 내용이 달라진다. 이렇게 사물을 자르는 칼자루가 내 눈 속에, 마음속에 쥐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세상 보는 눈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 그림을 오리-토끼로 동시에 인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기를 써도 오리로 보일 때는 토끼 모습이 사라지고 토끼로 보일 때는 오리가 지워진다. 언제나 둘 중 하나 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관점이라는 것은 내 마음 안에 품고 있는 자유이면서도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편으로 쏠리는 편향성을 갖게 된다. 쏠린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고,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쪽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향과 배제-그래서 우리의 현실은 다의적인 것인데도 늘 삶의 반쪽밖에는 볼 수 없게 된다.
오리냐 토끼냐의 양자택일의 강박관념이 우리를 가위눌리게 한다. 사고가 흑백의 이분법적으로 경직되는 것이다. 오른쪽 방향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오리라고 하고 왼쪽 방향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토끼라고 한다. 거기에서 좌파 우파가 생겨나고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중간이란 없다.
선禪에서는 깨달음의 방식으로 ‘줄탁동시啐啄同時’란 콘셉트를 사용하고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밖에서는 어미닭이 껍질을 쪼고 안에서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려고 한다. 어느 한 쪽의 힘만으로는 결코 알을 깰 수 없다. 안과 밖이 시기를 맞춰 동시에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름밤 아버지는 덥다고 창문을 열라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모기 들어온다고 창문을 닫으라고 한다. 괴로운 오리-토끼다. 문을 닫으면 아버지가 호령을 하고 문을 열면 어머니가 괴로워한다. 이럴 때 우리가 유리한 어느 한쪽에 서려고 한다면 오랫동안 상처 입은 그 줄서기의 비극을 재연하는 것이다. 이 비극에서 벗어나는 길은 망창을 만들어 다는 것이다. 바람은 들어오고 모기는 막아주는 방충망을 창조하는 것이다.
5) 매시업Mash up
이것은 음악양식을 나타내는 로고이다.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음원을 합성해 새로운 곡을 만드는 음악제작 기법을 일컫는 말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금 각 분야에 수많은 매시업이 존재한다. 최첨단기술 역시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 NT(나노기술)가 세쌍둥이처럼 뭉친 융합기술이고, 최신 휴대폰 또한 전화를 걸고 사진을 찍고 문자를 날리는 컨버전스 상품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유행을 타지 않는 점잖은 학계에서도 생물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이 인문학과 동거를 시작해 ‘Consilience(통섭)’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들을 결합해서 지금까지 누구도 모르고 있던 새로운 효능과 가치를 창출하는 기법, 그리고 그 정신이 M자 위의 화살표처럼 오늘의 젊음을 업그레이드하는 비밀 병기, 즉 매시업이다.
19세기에는 담배를 피우면 오래 산다고 해서 담배를 ‘장수연’이라 불렀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암을 일으키는 유해한 연기로 인식돼 가는 곳마다 금연 팻말이 붙어 있었다. 생명공학이 지배하는 21세기의 담배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캐나다의 바이오케미컬사는 암 치료 단백질을 합성하는 새로운 담배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부정적이냐 긍정적이냐 하는 담배의 이미지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같은 암 치료 담배 모델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경계 붕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다. 이 실험은 캐나다와 미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첨단 기술에는 국경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의 유전자를 담배에 심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인간과 식물의 경계선이 없다. 유전공학 자체가 물질과 생명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그레이존에 속해 있다.
21세기의 트렌드는 ‘원융회통圓融會通’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 사자숙어에 외국인과 경쟁해서 앞설 수 있는 비법이 들어 있다.
◆ 원圓
21세기가 새로운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직선적 사고 패러다임이 원형적, 순환적 사고 패러다임으로 바뀌어가는 현상이다. 서양은 원인-전개-결론이 일직선으로 이어지지만 소통의 세계, 정보의 세계에서는 기-승-전-결의 ‘전’이 개입돼 비선형적 현상이 생겨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21세기형 인물은 종래의 공장식 학교 교육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원형-순환형 패러다임에서 출현한다.
◆ 융融
지금까지는 기술 개발에 여러 분야의 학문이 협조적으로 이용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더하기’였다. 이제 여러 분야 기술의 ‘복합적Composite’ 이용을 넘어 ‘융합적Fusion’ 이용으로 변화하고 있다. 21세기 기술 경쟁에서는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기술 융합, 즉 기술을 잘 ‘뭉치는’ 자가 승리한다. 앞으로 사고-노동 인간과 놀이 인간의 두 인간관간 이항 대립을 넘어 하나로 융합한 총체적 사고 체계로 전환해야 하고 교육은 그러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 회會
앞으로 인간 생활을 결정하는 운명의 키워드는 ‘링크’ ‘인터랙티브’ ‘접속’ 그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인간과 기계를 이어주는 ‘인터’라는 말이다. 21세기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문지방을 넘어서 세계의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특징이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부딪치고 마주하면서 미래의 기술과 삶을 탄생시키는 것이 21세기의 모델이다. 이 자유로움과 흡수력과 유연성이 실리콘밸리의 신화이며 그 미래이다.
◆통通
21세기 최고의 교육 수단과 방법 그리고 목표는 바로 인터넷을 위시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사통팔달의 사이버커뮤니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의사와 마음을 전달하고 감동을 나누는 소통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통’ 패러다임이다.
6) 연필의 단면도Hexagon
연필의 단면은 세계 어디서나 육각형이다. 만약 연필 단면이 사각형이었다면 손가락으로 쥐고 쓰는데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그래서 연필 자루는 원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원통형 연필은 얼마나 구르기 쉬운가. 조금만 기울어도 책상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원과 사각형의 끝없는 갈등과 긴장의 딜레마 사이에서 육각형이 생겨나게 된다. 그것은 잡기 쉽고 잘 구르지도 않는다. 육각형이 연필의 표준 형태가 된 데에는 제작상의 원인도 있었다. 연필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낭비하는 것이 원형이고 가장 절약되는 것이 사각형이다. 그러나 육각형이면 사각형보다는 못해도 원형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다.
육각형 모델은 자연계에서도 꽤 많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벌집인데, 이 벌집은 서로 다른 벌들이 다른 장소에서 만들었음에도 접합 부분이 한 치의 빈틈이나 어긋남 없이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벌들에게는 지우개가 없다. 벌들은 할아버지도 손자도 똑같은 육각형의 집을 지어갈 뿐이다. 반면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지울 줄 안다. 연필의 육각형 위에 지우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필에서 얻는 최종적 학습은 바로 지우개가 달려 있는 연필 모양이다. 고정관념을, 편견을, 그리고 일상성에 토대를 둔 도구적 사고를 지울 수 있는 하나의 지우개,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고의 틀이다.
7) 빈칸 메우기Blank
□ilk의 빈칸 채우기. M자를 넣으면 밀크가 되고 S자를 넣으면 실크가 된다. 난이도가 같은데도 사람에 따라 그 선택이 달라진다. 삶이란 것도 결국은 이런 빈칸 메우기와 같다. 반은 운명처럼 주어진 문자가 있고 그 옆에는 마음대로 자신이 써넣을 수 있는 자유로운 공백이 있다. 운명과 선택이 뒤얽혀서 그때그때의 낱말들을 결정하고 그것들이 모여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들을 꾸며내는 것이다.
빈칸이 있으면 채워야 한다. 상상력과 창조력을 발휘해서 하루하루를 빛의 언어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랑하고 생각하고 감동하고, 때로는 사전에도 지도에도 없는 낱말들을 찾아내 나만의 이야기를 엮어가야 한다.
◆ 獨□
새 대통령과 관련해서 빈칸을 메운다면 어떤 것이 들어가게 될까. 쉽게 떠오르는 것이 독주獨走와 독창獨創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을 보고, 대통령은 사람들을 보고 다시 뛰자고 한다. 선진화의 푯대를 향해 뛰자는 거다. 하지만 속도 조절을 잘 못하면 새 정부는 독재, 독선이 아니라 독주 현상에 빠지게 된다. 새 정부가 독주하지 않고 국민의 동행자가 되려면 카이사르 이후의 난국을 통치하는데 성공한 로마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는 격언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정치의 속도 문제는 조선조 때부터 존재했다. 선조 때의 문신 정탁이 수업을 마치고 스승인 조식에게 하직인사를 할 때의 일화이다. 조식은 정탁에게 뒤란에 황소 한 마리를 매어 두었으니 타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소가 보이질 않아 멍하니 서 있는 정탁을 향해 조식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말과 행동, 그리고 의기가 너무 민첩하고 날카로운 것이 질주하는 말과도 같네. 그러다가는 넘어지기 쉬우니 매사에 신중하고 차분하고 둔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네. 그래서 마음의 소를 타고 출사하라는 말일세.” 정탁은 정승이 된 후에 조식이 일러준 ‘우보牛步 정치학’으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황소걸음으로 천천히 가는 것이 안전하기는 하나 글로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대통령의 ‘독’자 퍼즐게임을 독창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다음 빈칸 퀴즈로 넘어가야 한다.
◆ □결
보통명사에 ‘결’자를 붙이면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된다. ‘결’이 무엇을 나타내는 말인지 이해하려면 나무, 돌, 비단 같은 물건에 결을 붙여보면 된다. 물결의 경우처럼 일정한 흐름이 생기고 그것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성질이 나타난다. 물건이나 생명 그리고 마음과 생각에 존재하는 일정한 흐름과 고유한 무늬, 일관된 질서와 특성이 바로 결이다.
모든 개체에는 그 결이 있고, 결을 지니고 있는 것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라 해도 이 지구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한 존재가치를 갖는다. 헤세가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똑같이 생긴 돌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돌 하나가 없어지면 이 지구는 그것이 놓여 있던 자리만큼 비게 된다. 바로 이 결이 있어야 어떤 것이든 새롭고 유일한 ‘독창성’을 지니게 된다.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가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라파엘로가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왕은 그가 딛고 서 있는 사다리가 휘청거리자 때마침 들어온 재상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이보게, 저 사다리 좀 잡아주게.” 그러자 재상이 황당해하며 “아니 폐하, 일국의 재상이 저런 환쟁이의 사다리를 붙잡아주는 게 말이 됩니까?” 하고 불평했다. 그러자 왕은 “저 자의 목이라도 부러지면 저런 그림을 그릴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네. 그러나 자네 목이 부러지면 재상 할 사람은 줄을 서 있다네” 하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독창성의 힘이다. 독창성은 자기 아니면 남들은 못하는 것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남들이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기술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8) 지知의 피라미드knowledge Pyramid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는 사람을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 그리고 ‘즐기는 자’의 세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아는 자를 가장 아랫자리에 두고 즐기는 자를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다.
바비 존스는 골프의 천재로 알려진 사람이다. 당시 달성한 그랜드슬램 기록은 아직도 깬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은퇴하는 날까지 아마추어 골퍼로 활동했다. 큰돈을 벌 수 있는데 왜 프로로 전향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골프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골프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만약 그것이 돈을 버는 수단으로써 직업이 된다면 더 이상 골프를 사랑할 수 없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학문도 수단으로서의 프로페셔널이 된다면 거기에서 창조적 가치가 태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역시 배움의 희열, 학문의 즐거움은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열정에서 나온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그레이트 아마추어Great Amateur'란 말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다. 논어의 호지자를 영문으로 번역하면 ‘those who love it’ 인데, 그것을 독립명사로 옮기면 바로 ‘아마추어’란 말이 된다. 그러므로 호지자의 배움과 학문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야만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호지자의 학문은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상류로 올라가는 잉어 떼를 닮았다. 계속해서 다음 단계의 배움을 향해 등용문의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간다. 등용문을 넘어 용으로 승천할 때 호지자는 비로소 낙지자로 변하고, 그들의 지식정보는 생명의 기쁨 ‘Life’를 찾게 될 것이다.
9) 둥근 별 뿔난 별Form of Stars
우리가 흔히 보는 별 모양은 인간의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윤곽을 본 따 만든 서양 사람들의 상징기호이다. 그래서 백 년 전만해도 별을 단추모양으로 그려왔던 우리 조상들은 성조기에 그려진 별모양을 꽃이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미국을 화기국花旗國이라 불렀다. 서양문화가 들어오기 전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별을 동그랗게 그렸다.
세계는 동과 서의 지역을 따라서 각기 다른 로컬 문화가 있고, 그것을 넘어선 지구 규모의 글로벌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별모양에서 확인하고 또한 인식해야 한다. 말하자면 서구적 근대체험과 전통적 문화체험이 다원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별이란 오각형으로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 은단추모양으로 동그랗게 붙박혀 있는 것도 아니다. 문화에 따라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가 달라진다. 눈이 두 개듯이, 오리-토끼 도형에서 보았듯이 양방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눈으로는 로컬을, 또 한눈으로는 글로벌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에 글로벌과 로컬을 합친 글로컬맨으로 살아갈 수 있다.
- 이어령, 『젊음의 탄생』, 생각의나무,
'낙성大, 공예大'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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