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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 사회’로의 변화를 주목하라

2011년의 話頭 - 문화

‘세로토닌 사회’로의 변화를 주목하라

글 : 洪思琮미래상상연구소 대표

⊙ ‘엔돌핀’은 성장시대 사회의 상징
⊙ ‘행복’ 추구하는 세라토닌 사회에서는 재미, 웰빙, 배려를 중시
⊙ <제빵왕 김탁구>, <아바타>, 法頂 열풍 등이 세로토닌사회의 문화 코드 보여줘

洪思琮
⊙ 1955년생. 서경대 철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 (재)정동극장장,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조교수·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정책대학원 주임교수,
숙명여대 교내벤처기업 (주)아트노우 대표이사, (재)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등 역임.
現 미래상상연구소 대표, (사)농어촌미래문화연구소 이사장.
⊙ 저서 : <극장경영> <이야기가 세상을 바꾼다>.
2010년 최대의 히트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사랑과 용서를 내용으로 하는 ‘세로토닌 시대’의 문화코드를 잘 읽은 드라마다.
유행가는 변화하는 시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반영한다. 1970년대 우리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가수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모르는 중년세대는 드물 것이다. 이 노래가 당시 인기가요 상위 순위에 수개월 동안 올랐으니 <가슴 아프게>가 누린 인기를 가늠하게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와 만나자 마자 사람들은 이 노래가 이별의 정한(情恨)을 주제로 한 유행가임을 바로 눈치챌 것이다. 가사에 나타난 분명한 정황은 사랑하는 두 남녀 중 어느 한쪽이 바다를 건너 어디론가 멀리 떠났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애인과 자신을 갈라 놓은 바다를 한없이 원망하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님이 떠난 바다 건너 저편의 세계가 어디인가’라는 점이다. 적어도 나의 생각으로는 바다 건너의 세계가 로스앤젤레스 아니면 샌프란시스코 정도가 아니었나 상상해 보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가사 소절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해 저문 부둣가에 떠나가는 연락선을 /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국제간 페리호도 아니고 연락선이 다니는 곳이라면 연평도 흑산도 정도의 연안 섬지역이라는 얘기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사랑하는 애인이 섬으로 떠났다고 해서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편견일 뿐이다. 농사 외의 특별한 소득이 없었던 그때의 대다수 젊은이들은 농경지(農耕地)로부터 멀리 떠날 수 없었다. 농작물을 돌보지 않으면 농사가 망쳐지고 집안 식구가 굶어 죽을 판에 사랑하는 연인이 떠난 바다 건너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큰 모험이다. 오늘날 초등학생도 다 가지고 있는 휴대폰은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나 이 노래에 공감했고, 이 노래는 인기가요로 떠올랐던 것이다.

<가슴 아프게>의 인기는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돌출한 문화현상으로 보는 것이 맞다.


<가슴 아프게>에서 <무조건>으로

그리고 세상은 크게 변화했다. 생산의 주력이 농사에서 공장과 기계로, 그리고 정보나 IT첨단기술로 바뀌는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이 이어졌다.

이런 사회변화에 걸맞게 유행가도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2004년도 히트가요인 박상철의 <무조건>은 <가슴 아프게> 시대의 종말을 노래한다.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 언제든지 달려갈게”로 시작을 여는 이 가요의 하이라이트는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 태평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서라도 / 무조건 달려갈 거야”다.

연안 섬 지역으로 떠난 애인과 통한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한많은 농경사회 젊은이들의 의식은 그 사이 확장된 정보유목민(情報遊牧民)의 사고(思考)로 무장한 신세대의 젊은이들에 의해 교체됐다. 그 변화의 속도와 기간은 빠르고 짧았다.

빈약한 농경제에 의존하던 한국사회는 1970년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급진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정보화의 성장 동력에서 자신감을 얻은 사람들은 ‘사랑한다면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인들 못 건너랴’ 하는 모험적인 메시지와 자신감을 담은 <무조건>에 공감했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기간은 불과 40~50년 사이다.

산업화 측면만 보더라도 서구 선진국들이 이루어낸 수백 년의 업적을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단기간에 압축시켜 성취해 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급격한 경제성장은 한국사회의 핵심적 가치를 성장 중심, 생산성 중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두 자릿수의 성장률은 높아진 부동산의 자산가치를 증대시켰고 주식시장까지 달구어 냈다. 이러한 성취의 이면(裏面)에 상실감도 커졌다. 부동산 버블로 부자가 된 사람들의 흥분과 소외감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의 열패감(劣敗感)이 공존(共存)하는 비정상적 사회가 필요한 것은 고도성장의 목표로 향해 모든 에너지를 모으는 길밖에 없었다.


성장사회와 엔돌핀
늙은 소와 할아버지의 인연을 잔잔하게 그려낸 다큐영화 <워낭소리>.

1980년대 재미(在美) 의학자 이상구 박사의 엔돌핀 호르몬 이론은 바로 이런 성장 중심, 생산성 중심 사회가 만든 시의(時宜)에 딱 떨어진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엔돌핀(endorphin) 호르몬은 적당한 기쁨과 쾌감을 만들어 내는 신경호르몬의 일종이다.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의 말에 의하면 흥분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이 엔돌핀 호르몬은 중독성향까지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강도 높은 흥분상태를 요구하고 더 높은 강도의 자극을 원한다. 신(新)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해 왔던 우리의 성장 중심, 생산성 중심 사회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적당한 흥분을 고조시켜 왔다. 이상구 박사가 주창해서 국민과 온 사회의 중추 호르몬이 된 엔돌핀호르몬 이론의 열풍은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이론과도 잘 조화되면서 TV는 물론 모든 매스미디어를 도배하며 국민적 인기와 관심을 모았다.

돌이켜 보건대 1970~1990년대는 국민들로 하여금 엔돌핀 호르몬을 자극해서 성공이라는 가치를 향해 질주하게 만든 시대였다. 성공의 모든 가치는 돈과 권력의 획득, 그리고 어떤 경쟁에서든지 절대로 지지 않는 삶이었다. 배려하고 나누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은 바보들이나 하는 생존방식이다.

그 엔돌핀 호르몬이 넘치는 사회에서 양계장의 닭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적당한 성적 흥분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백열전구의 불빛세례를 받는다. 매일같이 알을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깻잎조차 생산성 향상을 위해 LED조명 아래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키운다. 제대로 잠 못잔 닭과 깻잎이 신경과민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그런지 양계장 닭의 폐사율(斃死率)은 자연산 산란계에 비해 매우 높다. 사람들은 운동을 안 시켜 마블링이 핀 돼지삼겹살을 잠 못 잔 깻잎에 싸 먹고 산다.

성장 중심 사회의 후유증은 흥분과 자극을 더욱더 고조시켜 주는 이 엔돌핀 호르몬 과잉현상으로부터 비롯된다. 사실 엔돌핀 과잉 에너지는 지난 반세기 한국경제를 기적처럼 세계 경제 강국의 반열로 진입시킨 원천(源泉)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의학자들의 언급처럼 끝이 없는 마취적 흥분과 자극을 원하는 엔돌핀 호르몬의 과잉은 언제나 내부의 모순 때문에 비정상적 출구를 찾아 폭발하게 마련이다.


엔돌핀 시대의 종말
법정 스님의 에세이집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도 ‘세로토닌 사회’로의 전환을 잘 보여준다.

엔돌핀 과잉현상이 내면의 에너지를 못 이겨 밖으로 분출되기 시작한 시점이 아마 2002년 월드컵 때가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으로 시작된 흥분상태는 사회에너지를 긍정적으로 융합시키는 데 기여를 했다지만 거꾸로 보면 축구 잘한다고 선진국에 진입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미(南美)의 경우처럼 내면의 모순이 많은 나라일수록 축구에 목을 맨다.

아무튼 한 번 폭발된 엔돌핀 과잉현상은 2008년 광우병(狂牛病) 파동의 촛불시위로까지 나아갔다. 초기 대응을 잘못한 정부의 책임도 있었지만 더 큰 흥분과 자극을 원하는 사회분위기가 제동을 잃고 달려 나간 경우다.

이 엔돌핀 과잉현상의 끝간 데가 촛불시위 이후 그해 말에 우리의 브라운관에 등장한 소위 ‘막장 드라마’ 열풍이 아니었나 싶다.

대중가요도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과 같은 초자극적 내용의 가사가 히트 가요가 되더니 불륜과 범죄, 황당무계 외에 전혀 볼거리가 없었던 <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가 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한 데가 있다. <아내의 유혹> 이 시청률 경신을 거듭하고 있는 시점에 사회 한편에서는 조용한 성찰의 물결이 꿈틀대며 솟구치고 있었다.

엔돌핀이 과잉되면 행복 물질을 뿜어내 흥분을 가라앉혀 주고 사고력을 신장시켜 주는 세로토닌이라는 상대적 호르몬이 작용한다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의 말처럼 당시의 ‘막 나가는 드라마’들도 보이지 않는 도전에 직면했다.

2009년 1월부터, 영화관에서는 한 늙은 소와 할아버지의 인연이 가슴 저리게 그려진 잔잔한 감동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사상 초유의 290만 관객을 넘기며 상영됐다. 그뿐이랴. 치매 걸린 엄마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된 신경숙의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150만부 이상 돌파했고 강부자 주연의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이 연일 매진(賣盡)됐다. 잃어버린 삶의 의미와 구원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선종(善終)도 우리 사회의 엔돌핀 과잉현상을 누그러뜨리는 데 기여했다. 이웃을 섬기며 배려하고 나누는 ‘바보’ 같은 생애를 살아도 존경받는 삶이 있음에 그냥 정처 없이 생산성의 고지를 오르기에 바빴던 모든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2010년에도 계속됐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낙관, 용서와 화해를 그린 <제빵왕 김탁구>가 시청률 50%가 넘는 ‘국민드라마’로 사랑을 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유기적 생명공동체에서의 삶을 그린 3D 영화 <아바타>의 흥행성공, 역경 속에 일궈낸 인간승리의 드라마인 <수퍼스타K>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광, 그리고 지난 3월 법정(法頂) 스님이 열반한 후 삶을 잔잔하게 관조(觀照)한 그의 에세이집들이 매진된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두 줄짜리 시(詩)의 행간에서 읽히듯 비로소 경제가 하산(下山) 길에 이르자 사람들이 바빠서 보지 못했던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사회 여기저기서 엔돌핀 과잉현상이 움츠러들고 세로토닌(Serotonin·시상 하부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로 이것이 부족할 때는 우울증, 스트레스 증가, 폭식으로 인한 비만, 치매 등을 가져오게 된다. 때문에 세로토닌은 삶의 의욕과 생기를 주고 편안한 기운을 주게 하는 행복물질이라고 얘기되고 있다―편집자 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세로토닌 사회’로 이동
세로토닌연구원을 연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가 좌선을 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단지 경제가 나빠져서였을까. 사회가 엔돌핀 과잉에너지로 달려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숨고르기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전환의 시대에 과거에 익숙했던 성장사회의 솔루션 처방이 안 통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명사의 대변환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너무 오만했고 모든 문제의 해법이 물질에만 있다고 믿어 왔다.

2만 달러의 고지 위에서도 우리는 성장과 생산성의 새로운 목표점을 설정하고 ‘4만 달러 성공시대’를 향해 선진화(先進化)를 외쳐 왔다. ‘4만 달러 국민성공시대’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의 선거구호였다.

그러나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에 사람들은 경제성장만이 궁극적인 구원과 행복의 가치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세로토닌 효과다. 세로토닌 호르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로토닌문화원을 연 이시형 박사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점으로 사회가 가라앉기 시작한다’고 예견했다.

사회 도처에 아직도 엔돌핀 과잉에너지가 수그러든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국사회는 세로토닌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다.

가치의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한 세상을 추구하는 세로토닌 사회로의 전환을 읽는 코드는 크게 세 가지다.


재미, 웰빙, 배려

첫째, 사람들은 재미없는 삶을 거부한다. 직장인들도 단지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고 행복하기 위해 일한다. 나의 가까운 지인인 모(某)증권회사 K회장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회사직원들은 ‘과정과 결과가 즐거운 투자를 원한다’고 한다. 즐거우려면 기존의 익숙했던 업무방식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생각과 창의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 생각의 변화는 엉뚱하게도 생산동력의 변화로까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성장 중심 사회의 핵심 동력이던 건설 토목 자동차 산업 등은 상상력을 더욱 필요로 하는 금융, 스마트폰의 ‘앱’을 포함한 문화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서서히 자리를 내어 주고 있다.

둘째, 잘 먹고 잘사는 웰빙 삶를 원한다. 통일벼가 사라진 우리의 주곡(主穀) 식단처럼 ‘막 먹고’ 살던 과거의 생존방식은 지나간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TV는 이런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듯, 친(親)환경, 유기농(有機農), 무공해 먹을거리 이야기와 등산, 자전거, 여행, 그리고 도시의 풍요를 등지고 떠난 귀농인(歸農人)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등산인구가 1800만명에 육박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이와 관련된 ‘아웃도어’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음은 삶에 대한 궁극적 태도의 변화를 실감나게 한다. 고요와 평화와 여백을 즐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 것이다.

셋째, 경쟁보다 나누고 배려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를 중시한다. 모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은 T공익(公益)재단법인을 설립하고 사회봉사 인턴십 직원을 모집했는데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지원해 왔다. 뿐만 아니라 공익활동에 기여하고 싶은 내부의 젊은 변호사들이 많음에 놀랐다. 성공에 대한 가치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누고 배려하는 ‘바보 같은 삶’(?)도 성공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2만 달러 시대의 달성은 또 다른 고지로 향한 4만 달러 시대의 출발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되 지나간 시대의 삶을 성찰하며 소외된 이웃과 함께 번영해 나가는 ‘성장친화형 복지사회’로 가는 기점임을 말해 주고 있다.

세로토닌 사회로의 전환은 문명사의 전환기 때마다 늘 겪어 왔던 산업구조의 개편은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방면의 변환을 몰고 올 것이다.

이미 세로토닌 사회로 전환한 유럽의 선진국은, 나약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온 종교 대신 다양한 문화소비가 상당수 종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야외활동 디자이너 등 옛날에는 이름도 들어볼 수 없었던 직업과 문화콘텐츠, 환경, 농생명(農生命) 산업 등도 지속적인 성장산업으로 경제의 동력을 이끌어 갈 것이다.

정치가들 또한 이러한 유권자, 특히 패러다임의 변환을 주도하는 젊은 유권자들의 ‘좌 클릭’으로 이동해 간 생각을 읽고 미래의 판을 짜야 하지 않을까. 기업도 정치도 개인도 변화하는 세로토닌 사회의 트랜드와 흐름으로부터 멀어지면 성공으로부터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가슴 아프게> 시대’의 향수(鄕愁)에 젖어 ‘<무조건> 시대’를 낮설어 하는 나이든 세대처럼 말이다. 세로토닌 사회에 걸맞은, 재미와 웰빙과 배려를 문화적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2011년 문화계의 화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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