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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가 쓴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어렸을 때부터 금각사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금각사를 보았을 때 그가 상상했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금각사를 만나게 된다. 어떠냐 곱지? 아버지가 물을 때도 그는 그저 무덤덤하다. 미조쿠지가 금각사에 살게 될 때부터 금각사는 점점 그에게 다가온다. 여름날의 금각사, 깊은 밤의 금각사, 위엄에 넘친 우울하고 섬세한 건물, 벗겨진 금박을 여기저기에 남긴 호화 화사한 망해 같은 건축, 가까워졌는가 하면 멀어지고 친숙하면서도 뚝 떨어져 있는 불가해한 거리에 청명하게 떠있는 금각! 금각사는 그렇게 그의 내면으로 차츰차츰 다가온다. 아름다움은 세월을 벗 삼아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알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은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일수도 있다. 누군가는 천국의 숲이라고도 또 누군가는 비밀의 정원이라고 불렀던 그이, 400여 종의 목련과 호랑가시나무를 보전해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은 그,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천리포 수목원, 그와의 첫 만남을 위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을 기억해내며 나는 나를 겸손한 자리인 구석쪽으로 분류하며 차를 달렸다. 서산 태안을 지나 만리포 옆 천리포에 다다랐다. 조금만 더 가면 백리포라고 했다. 단순한 거리를 나타내는 단어에 포가 붙어서 내는 형언키 어려운 정한이라니........ 넓어서 너그럽고 푸르러서 깊어 보이는 변함없는 모습의 바닷물에 아주 잠간 발을 담궜다. 세상의 모든 바다와 연결되어 있고 그들과 무시로 통하면서도 아무것도 아니란 듯 고요한 모습으로 무량의 바다는 내 발을 받아 주었다.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만도 못한 소유나 지적 부스러기를 지녔다며, 지니고 있다며, 네게는 없지 않느냐며, 소리치는 내가 보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기도하고 싶은, 혹은 가만히 침묵하며 묵념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었다.
그 바다를 끼고 천리포 수목원은 펼쳐진다. 입구에 조촐하게 서있는 나무수국을 바라보며 놀란다. 한그루 정갈하게 서서 이제 막 연미색 꽃을 피워내고 있었는데 세상에 이제까지 보아왔던 나무수국과는 격이 달랐다. 나무라는 이름이 무색한, 휘어진 가지에 힘겹게 피어있는 수국만 보다가 정말 이름처럼 격에 맞는 나무의 수국이라고 나 할까, 어떤 색도 더하거나 빼지 않은 천연그대로의 모시만이 돋보이게 바느질 한 우아한 한복 입은 여인 같다고나 할까, 그 여인 뒤로 둥그스름한 지붕을 한 집 두 채가 보였다. 무어랄까, 초가가 아니면서도 초가의 순한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었다. 실제 그 자리에 초가가 있었는데 너무 낡아서 허물을 수밖에 없었고 대신 초가집 형상을 한 그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둥그스름한 연한 아이보리빛의 그 집은 천리포 수목원을 만든 민병갈 원장의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여겨졌다. 초가처럼 생겼지만 초가가 아닌 건물처럼,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으로 살았지만 미국사람인 칼 밀러, 나무와 결혼했다는 그 남자, 사람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나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자 애쓴 푸른 눈의 이방인, 한사람의 헌신으로 인해 삶에 지친 강팍한 현대인들이 이 숲에서 느끼고 갔을 위무와 평강의 양은 얼마나 될까, 수목원에서 바라보는 푸른 하늘의 흰구름만큼일까? 아니면 저 바다의 푸르름 만큼일까, 400여종이 넘는다는 목련의 세계는 일천한 안목으로 거의 엿볼 수도 없었다. 윤기 나는 아파리의 태산목 열매를 상견례한 정도랄까, 호랑가시나무도 너무 많은 종류로 인하여 다가가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후박나무집 정원에서 정말 멋지고 잘생긴 후박나무를 만나 안녕하세요, 정말 준수하시네요. 어쩌면 그렇게 잘나셨나요? 능청스런 사랑 고백을 좀 길게 하고 좀 길게 서성였을 뿐이다. 더군다나 언덕을 통째로 굵게 보아야 하는 통찰의 시각은 아예 전무했으니,
기실 나무를 동정하기란 나처럼 공간 지각력 없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나뭇잎의 생김새, 목피, 가지와 줄기의 차이, 그 모든 것들이 겨우 흔하디흔한 꽃이나 구분해내는 내게는 난해하기 그지없다. 어쩌면 나무는 실제 암호로 되어있는 신이 보낸 비밀의 편지 같은 건지도 모른다. 눈 있는 자, 읽을 능력이 있는 자, 귀 있는 자, 볼지어다 알지어다 들을지어다. 나무라 하여 성깔도 없는 줄 아는가? 무언의 박해도 한다. 나무는 나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절대 보여주질 않는다. 나무 사진을 찍을 때 마다 나는 절망한다. 내가 바라본 나무의 모습과 사진속의 나무의 모습은 정말 천지차이이다. 왤까, 내 시선이 아직도 미흡하여 나무를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읽어내지도 못한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도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숲 사이에서 서성이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이러하리라, 화려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세련되기 보다는 편안한, 서로서로 평안함 속에서 공존하는, 천리포 수목원은 내가 가본 꽤나 많은 수목원들중 그다지 크거나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대신 표현하기 어려운 부드러움이 주는 안온함이 있었다. 푸른 눈의 이방인이 한국인이 되어 한국에서 살 때 그는 자기 고향에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더 많은 ‘다름’을 수용했으리라, 혹 그에게 배인 깊은 수용력이 천리포 식물들이나 천리포 땅에 전이되어 그런 순후한 부드러움을 나타내는지도 모를일이다.
천국의 숲, 비밀의 정원. 천리포 수목원을 떠나는 순간 그리움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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