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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장골'' 어린 영혼

너훌너훌~ 춤으로 되살아나는 '애장골' 어린 영혼
21일 마산 MBC홀, 춤타래 정기공연 '애장터' 눈길
이종찬(lsr) 기자
▲ 경희 춤타래 무용단 정기공연 '애장터' 팸플릿
ⓒ 춤타래
벌판에는
묻히지 못한
씨앗들이
살고 있다

거친 땅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아가는
모진 목숨들이 있다.

언젠가는
땅속에 묻혀
풀잎이 되고
나무가 될 날을
기다리면서…

-경희 춤타래, '버려진 아이들' 모두


애장터란 옛 사람들이 어린 아이의 주검을 내다버리는 장소였다. 애장골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낙태아와 정상아로 태어나지 못한 갓난 아이, 몹쓸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아이들을 내다버리는 깊은 산골이었다. 덕매(어린 아이의 주검을 땅에 묻지 않고 장사 지내는 것)라는 독특한 장례방법인 이러한 풍속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설과 옛 어른들의 기억을 통해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들리는 애장터 이야기는 우리의 슬픈 과거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충청도 청원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 이 슬픈 전설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낙태수술', '미혼모', '입양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게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종합대책 수립'이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여성 10명 중 4명이 성경험을 했으며, 100명 중 3명이 낙태수술을 했다. 게다가 우리 나라에서 불법 낙태수술로 희생되고 있는 태아는 매년 33여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렇찮아도 자녀 양육비, 교육비 등으로 아이 낳기를 꺼리는 우리의 현실을 비추어보면 참으로 슬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춤타래 대표 김말애 경희대 무용과 교수
ⓒ 춤타래
"해외공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홀트 아동복지기관을 통해 외국에 입양된 한국 어린이들의 새까만 눈망울을 지켜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 아리고 슬픈 일이었습니다. 민담의 하나인 애장터를 한국 춤사위로 작품화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이러한 슬픈 현실을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시는 글' 몇 토막

황금빛 들판에 선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고 있는 시월.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왔으나 제게 주어진 목숨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이 세상을 등진 어린 영혼들을 기리고 달래는 경희 춤타래 무용단의 정기공연 '애장터'가 무대에 올려져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오는 21일 두 차례(오후 3시, 6시)에 걸쳐 마산MBC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경희 춤타래 무용단(대표 김말애)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마산시, 마산MBC, 경남도민일보, 경남여성회, 마산YWCA, 경희대학교 무용학부가 후원한다. 기획은 최현주 박은혜, 대본은 이창구, 연출은 조현희, 음악은 박범훈 김철환. 무대는 구슬 최기봉, 조명은 신호, 의상은 그레타리 정선.

이번 공연은 애장터 풍경을 묘사한 '프롤로그',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어머니의 '기원', 남녀 쌍둥이가 태어나는 '잉태의 고통', 아기를 애장터에 버리는 '버림', 버려진 처녀의 '성장', 성장한 남매의 '만남', 남매의 '사랑', 그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회환', 남매의 '좌절', 어머니의 '죽음', 에필로그 '영혼을 달래며' 등 모두 11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 춤타래 무용단의 멋진 춤사위
ⓒ 춤타래
프롤로그에서는 애장터의 쓸쓸하고 슬픈 풍경이 드러나는 가운데 애장터에 버려진 어린 영혼들의 넋이 되살아나 자신의 슬픈 과거를 나직하게 읊조린다. 이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기를 안은 여인들이 하나 둘 나와 애장터에 자신의 아기를 버리면서 몹시 괴로워한다.

첫 막이 열리면 어머니가 여인들과 함께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제의의 춤(기원)을 춘다. 이윽고 산고의 고통과 기쁨의 춤 속에 남녀 쌍둥이가 태어난다(잉태의 고통).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면 산고를 치른 어머니가 일어나 자신이 낳은 쌍둥이 중 여자아이를 애장터에 몰래 갖다 버리며(버림) 억누를 길 없는 슬픔을 토해낸다.

이어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는 군무가 펼쳐지면서 나무들과 바위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고, 자연의 보호로 산속에서 자란 처녀의 목가적인 산속 생활(성장)이 그려진다. 그때 한 청년이 산 속으로 사냥을 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청년은 처녀와 자연의 간호(만남)를 받고 깨어난다. 이윽고 청년은 처녀와 함께 우염과 숙명으로 맺어진 사랑의 춤(사랑)을 춘다.

그때 꿈속에서 두 남녀와 어울려 정겨운 춤을 추다가 꿈에서 깨어난 어머니는 아들의 연인인 처녀를 통해 그 옛날 애장터에 버린 자신의 딸아이를 떠올리며 못 견디는 그리움(회한)에 휩싸인다. 이어 결혼을 약속한 청년이 어머니에게 처녀를 인사시킨다. 이때 어머니는 그동안 자신이 간직하고 있었던 정표를 두 사람의 손에 건넨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처녀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노리개를 꺼낸다.

▲ 애장터란 옛 사람들이 어린 아이의 주검을 내다버리는 장소
ⓒ 춤타래
어머니는 처녀의 노리개를 보고 두 사람이 결코 맺어질 수 없는 쌍둥이 남매라는 사실에 망연자실한다. 어쩔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아들과 딸이 좌절(좌절)하는 가운데 애장터의 비극을 슬퍼하던 어머니는 결국 자신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나고(어머니의 죽음) 만다.

에필로그에서는 애장터에 버려진 어린 영혼들의 넋을 달래는 회한의 춤이 펼쳐지면서 그들의 슬픈 영혼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슬픈 춤사위로 드러낸다. 이어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버려진 아이들에게 바치는 헌시가 나직하게 읊조려지면서 무대의 막이 내린다.

예술감독 및 안무를 맡은 김말애 교수는 "이번 공연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버려지는 아이들' 즉, 입양아 문제를 춤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아무쪼록 이 공연을 통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입양아 문제를 다함께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어 김 교수는 "해가 바뀌고 계절이 달라져도 춤을 추면서 자연에게 얻는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공연의 기획을 맡은 박은혜(춤패 뉘 무용단 대표)는 "무용의 질적 향상과 대중성의 회복을 위해 눈부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경희 춤타래는 우리 무용계의 창작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무용단체"라며, "이 단체의 무용사적 비중이 큰 것은 최승희의 업적을 이어받은 이가 김백봉이고, 김백봉의 뒤를 잇는 사람이 바로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말애이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 주어진 목숨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이 세상을 등진 어린 영혼들을 기리고 달래는 한국 춤 '애장터'
ⓒ 춤타래
경희 춤타래 무용단은 1989년 경희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사람들을 주춧돌로 창단된 한국창작무용단체로 김말애 교수 지도 아래 정단원, 준단원, 연수단원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경희 춤타래 무용단은 그동안 서울국제무용제 대상, 우수상, 안무상, 음악상, 연기상 등을 받았으며, 수많은 국내외 공연을 펼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