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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진리의 '성기 봉납'은 지난 1980년대 초반에 일찌감치 단절되었다. 문암리의 성제의는 3~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별신굿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별신굿 자체가 잘 열리지 않기 때문에 거의 단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삼척시 갈남리에서만 '해신당'과 '성민속박물관'이라는 장치에 의해, 일종의 관광상품으로 변모한 성제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전통적인 의미의 남성기 봉납 제의는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많은 원한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위험한 존재에게 목제로 만든 남근, 일명 '각좆'을 바쳐서 사후에라도 운우지정을 맛보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바라는 민초들의 소박한 심성이 숨어 있었다. 어찌 보면 해학적이면서도 지극히 말초적인 제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라는 마을에 가면 남성기를 봉납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남성기를 신으로 모신 서낭당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우람한 남근석이 불끈 불끈 솟아 있어 지나가는 이방인들에게 기이함과 별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제비리는 남대천 남쪽 칠봉산 밑자락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형국이 꼭 제비집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제비리에는 윗회산, 등고개, 개화대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중에서 윗회산이 가장 위쪽에 있는데 이 마을에서만 남자성기를 수호신으로 모신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의 주된 농작물이 '마늘'이라고 한다. 강장제로, 정력제로 널리 알려진 마늘! 이 마늘이 남성기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윗회산의 특용작물인 것이다. 뭔가 재미있는 냄새가 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숫서낭이야 말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가 와서 마을 전체가 홍수로 떠내려갔을 때도 이 서낭당과 남근석만은 아무런 화를 입지 않았다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그만큼 영험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남성기가 신앙의 대상으로 된 이유를 유교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추론한다.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남성중심주의가 정착된 이후 남근석 숭배 사상이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여근석은 불경스럽고, 외설스러운 존재로 비하되고 말았다. 제비리에서 남근석을 수호신으로 모신 이유도 이런 전통적인 습속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추론한다면 마늘을 특용작물로 재배한 마을의 경제적인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껍질을 깐 마늘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는데, 그 부드러운 곡선이 꼭 여성의 나체를 연상시킨다. 또한 둥그렇고 매끈한 속살은 여성의 요염한 엉덩이나 젖가슴을 상징하기도 한다.
밖으로 솟아있는 높이 약 100cm, 돌무더기에 묻힌 것까지 합하면 약 150cm, 그리고 둘레는 약 60cm인 마을의 수호신인 남근석. 생겨난 연유야 어찌 되었든 제비리 윗회산의 남근석은 마을의 재화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골맥이 할배’이자 ‘수구막이’이다. 보기에는 초라하고 가치 없게 보이지만 그 속에 깃든 민초들의 염원은 세세연연토록 이어질 것이다.
해안가에서는 남성기를 봉납하고,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남성기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곳. 성산면 위촌리라는 곳에 가면 개의 성기를 닮은 바위와 그 바위를 바라보는 여근석이 있다는 곳. 명주 혹은 아슬라라고 불리던 신비의 땅, 강릉. 참으로 흥미진진한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