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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하나로도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얻는다

유전자 하나로도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얻는다

입력 : 2009.09.01 03:03

김정범 박사

김정범 박사,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에 새 지평
사람 신경줄기세포에 유전자 'Oct4'만 집어넣어 인체 모든 세포로 자라나게
환자에 적용 길 열어 癌유발 가능성 극복 과제로

한국인 과학자가 유전자 하나만으로 다 자란 인간 세포를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유도만능줄기세포(iPS)'다. 세포 분화과정을 거꾸로 돌린다고 해서 '역분화 줄기세포'라고도 불린다. 환자의 세포를 떼내 유전자 하나만 변형시켜 치료용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유전자 하나만으로 배아줄기세포 생성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의학연구소의 한스 슐러(Scholer) 교수와 김정범(金正範·35) 박사 연구진은 '네이처(Nature)'지 8월 28일자 인터넷판에 "사람의 신경줄기세포에 'Oct4'란 유전자 하나만 집어넣어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iPS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는 이번 논문의 제1저자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원시세포로,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세포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다. 이를테면 심장병에 걸린 환자에 주입하면 건강한 심장세포로 자라나 손상된 심장세포를 대체할 수 있다. iPS는 배아줄기세포와 거의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2007년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Shinya) 교수는 사람 피부세포에 Oct4·Sox2·Klf4·Myc 4개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iPS를 만들었다. 하지만 Myc와 Klf4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라는 문제가 있었다. 또 4가지 유전자를 동시에 집어넣으면 세포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분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수를 줄이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김 박사는 이 경쟁에서 선두 주자다. 지난해 '네이처'지에 Oct4와 Klf4 2개의 유전자만으로 생쥐세포에서 iPS를 만들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셀(Cell)'지에 생쥐의 신경줄기세포를 Oct4 유전자 하나만으로 iPS로 변환시켰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는 이런 공로로 지난해에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의 '젊은 과학자상'을, 올해엔 독일 MTZ 제단이 처음 제정한 '우수 젊은 연구자상'을 받았다. 이번엔 사람 세포에서 유전자 하나로 역분화에 성공한 것이다.


중간단계 없는 역분화가 목표

김 박사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신경줄기세포에서는 역분화를 일으키는 4가지 유전자 중 Oct4를 제외한 3가지가 이미 자체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인체에서 작동하지 않은 Oct4만 집어넣어 iPS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처지는 "이번 연구는 앞으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며 "유전자 하나만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간단하면서도 안전하게 실제 환자에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은 과제는 환자에 주입한 iPS가 필요한 세포로 자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암을 일으키는 문제다. 김 박사는 "앞으로는 iPS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다 자란 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곧바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세포로 생쥐 만들어내기도

줄기세포는 수정란에서 얻는 배아줄기세포와 출생 이후 척수나 혈액 등에서 얻는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이나 난자를 파괴해야 얻을 수 있어 생명윤리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그런 문제는 없지만 분화능력에 한계가 있다. 즉 신경줄기세포는 신경세포, 혈액줄기세포는 혈액세포처럼 특정 세포로만 자란다.

iPS는 두 줄기세포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하루가 다르게 연구가 발전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연구진은 '네이처'지에 "생쥐의 피부세포로 iPS를 만들고, 이를 계속 자라게 해 생쥐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생쥐들은 나중에 새끼까지 낳았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 데일리(Daley) 교수는 "iPS가 배아줄기세포가 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켰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물 수준이지만 iPS를 이용한 세포치료도 성공했다. 같은 달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구진은 미국심장학회 발간 '순환(Circulation)'지에 "심장발작을 일으킨 쥐의 심장 세포로 iPS를 만든 다음, 이를 다시 손상된 심장에 주입해 심장기능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와 함께 '세포치료' 목적으로 연구되는 줄기세포의 한 종류.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삽입, 세포 초기 상태인 배아줄기세포와 거의 같게 만든 것이다. 난자나 수정란을 쓰지 않아 윤리논란에서 자유롭지만, 삽입한 유전자나 유전자 전달체인 바이러스의 안전성 문제로 환자 적용이 늦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