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은 毒’… 고위직 29명에 첫 명퇴 통보
![]() |
![]() |
■고위 외교관은 외시 출신? 막내리는 순혈주의
외무고시 출신들의 성역(聖域)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던 외교통상부의 ‘순혈(純血)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외교관들의 임무와 채용 경로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국민과 탈북자 보호에 관한 영사 업무를 소홀히 하는 등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한 비판 여론도 외교부의 개혁을 촉진하고 있다.
![]() |
외교부는 최근 고위직 외교관 29명에게 부 창설 후 처음으로 명예퇴직을 통보했다. 이 중 10여 명은 “내가 왜 그만둬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퇴직 후 갈 수 있는 자리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제협력단, 재외동포재단 등 3개 재단의 이사 및 일부 고위직. 그러나 자리가 채 10개도 안 돼 외교부는 대기업에 명예퇴직자들이 갈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앞으로 10년간 매년 20∼30명은 명예퇴직을 해야 ‘머리’만 비대한 조직이 정상화될 수 있다”며 “앞으로 대사를 한 번도 못하고 물러나는 외교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지난해 말 비(非)외시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김호영 전 행정자치부 행정관리국장을 외교부 2차관에 임명한 것도 외교부의 개혁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였다. 외교부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부처 간 인적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고위공무원단에 올해부터 편입되기 때문에 다른 부처 출신들의 외교부 진입도 늘어날 전망이다.
▽‘순혈주의를 경쟁 구도로’=본보는 외교관 등 외교부 직원들의 채용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인사 관련 자료를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말을 기준으로 9등급(다른 부처 3급) 이상 고위직 외교관 370명 가운데 외시 출신은 292명으로 전체의 78.9%를 차지했다.
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 대사 및 외교부에서 중시하는 ‘가’급 공관장, 차관 차관보 및 주요 실국장을 지낸 72명 중에선 67명(93%)이 외시 출신이었다.
특정 대학과 학과 출신이 주요 보직을 독점하는 현상도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대사나 실국장을 지낸 고위 외교관 72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52명으로 72%나 됐다. 외교부 내에서 최대 학맥을 형성하고 있는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은 9등급 이상 고위직에서는 17.1%(63명), 주요 대사 및 실국장 등에선 37.5%(27명)를 차지했다.
한편 2004년 10월 현재 외교부 8등급(다른 부처 4급) 이하 직원 중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등 산하 기관 직원 및 계약직을 제외한 1082명의 채용 경로를 분석한 결과 외시 출신은 절반가량인 55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행정고시와 기술고시 출신은 각각 37명(3.42%)과 1명이었다. 나머지 488명은 특채와 외무공채 행정공채 출신이었다. 이는 최근 외시 출신이 줄어드는 반면 특채 출신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 준다.
1월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으로 부임한 강경화 전 국제기구국장과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비외시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들.
강 전 국장은 1998년 국제전문가로 외교부에 특채된 뒤 장관보좌관 등을 거쳤다. 김 본부장은 1995년 통상자문변호사로 외무부와 인연을 맺은 뒤 2003년 통상교섭조정관을 거쳐 2004년 45세의 나이로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 자리에 올랐다.
외교부 관계자는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국장급 이상 중 비외시 출신이 30% 정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
![]() |
▽“외교 역량 강화 계기 삼아야”=1997년 외환위기로 22개 해외공관이 폐쇄되면서 1991년 1730명이었던 외교부 정원은 현재 150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해외여행자 수는 2000년 약 550만 명에서 2005년 현재 1030여 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게다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3 등과 같은 다자외교가 활성화되면서 외교부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외교부 내에선 인력 탓만 할 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외부인사 영입 등 구조조정을 외교역량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다.
한 중견 외교관은 “정말 선배로 대우해 주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많은 외시 출신들도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구조조정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고 제대로 일할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발하는 기류도 있다. 한 외교관은 “특채나 다른 부처 출신 인사 수혈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언어 구사 능력이나 특정 분야의 전문성만으로는 종합적 사고력과 탁월한 정보 수집 능력이 필요한 외교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 |
![]() |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선진국 외교부 인사제도
美, 학계-법조계와 인사교류 원활
英, 대사급 승진자 학력-성적 따져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한국과는 달리 외교관 채용 시 학력에 제한을 두거나 경력, 전공 등에 따라 임용직급을 달리하고 있다. 미국에선 국무부와 학계, 법조계 간 인사 교류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어 순혈주의에 의한 고위직 독점 현상은 거의 없다. 또 1차 시험인 필기시험을 치를 때 △경영(Management) △영사(Consular) △경제(Economy) △정치(Political) △공공(Public) 외교 등 5가지 경력 경로를 택하게 한 뒤 면접시험으로 합격 여부를 정한다.
면접을 통과해도 채용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신원조회 등을 거쳐 ‘고용적격자 명단’에 올라도 2년 내에 임용되지 않으면 필기시험부터 다시 치러야 한다. 또 임용 후 FO-3(한국 외무관 7, 8년차에 해당)로 승진한 뒤 5년 이내에 테뉴어(tenure·재직권)를 받지 못하면 자동 퇴직된다.
영국은 ‘제한경쟁 공개채용제도’를 통해 철저하게 엘리트 위주로 외교관을 선발한다. 특히 대사급까지 승진할 수 있는 ‘패스트 스트림’ 채용의 경우 학력 및 성적에 따라 응시자격을 제한한다.
벨기에는 24개월간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시보 기간을 거친 뒤 이 기간에 작성한 평가보고서 등을 종합해 최종시험 응시자격 부여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시험은 영어, 제2외국어, 시보 기간 중 익힌 실무 등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탤런트 윤태영(33)씨의 결혼식 (0) | 2007.02.16 |
---|---|
[경제계 인사]한진중공업 부회장 최재범 씨 (0) | 2007.02.14 |
소설가 조정래 (0) | 2007.02.06 |
호감으로 변한 현영 (0) | 2007.01.21 |
삼성, 화려한 승진 뒤엔 씁쓸한 퇴장도… (0) | 2007.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