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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파이'' 김산호 화백을 만나다

'라이파이' 김산호 화백을 만나다
지난달 경복궁역서 '만몽 김산호 회화전' 열어
최미현(thegrace21) 기자
한민족 탄생 신화를 아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군신화'만 떠올립니다. 저 또한 그러한 지식만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지난 3월 21일 우연히 경복궁역 메트로 전시관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곳에선 '만몽 김산호 회화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신화적 존재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치우천황'이나 '환웅', '안파견 한님' '웅녀' 등이 그려진 대형 그림을 흥미롭게 바라보았습니다. 구경하면서도 그저 상상속 인물이려니 생각하다가, 전시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쥬신제국사>라는 책을 잠깐 보게 됐습니다.

그 책에는 그림과 함께 그림의 존재를 설명하는 많은 참고 서적이 주석으로 달려 있었습니다. 작가가 직접 방문한 문화유적 및 현장답사 사진도 함께 실려 있었죠. 마침 그 자리엔 책의 저자인 김산호(65)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한민족의 고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책도 구입하게 됐는데, 그 때까지도 저는 김산호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 김산호 화백의 <대쥬신제국사>
ⓒ 김산호

▲ 서울 메트로 전시관 회화전 설명회 자리에서 김산호 선생(왼쪽).
ⓒ 다물넷(김산호)
아, 그런데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김산호 선생님은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SF 장편 만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를 총 32권(4부작) 연재하며 미국의 '슈퍼맨'이나 일본의 '아톰'과 비교되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성경보다 많이 팔렸다고 하니 인기를 짐작할 만 하지요.

▲ 2005년 라이파이 동호회 모임중에서
ⓒ 다물넷(김산호)
인기를 발판으로 1966년에는 미국에 진출합니다. 이른바 메이저리그 진출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미국 3대 메이저 만화출판사 중 한 곳으로 명작 만화를 주로 만들었던 찰튼 코믹스가 그가 몸담았던 곳입니다. 여기서 60여편이 넘는 만화를 출판했는데, <용녀>는 세계 17개국에서 출판되기도 했답니다.

1980년대에는 산호 그룹을 만들어 사업가로 변신합니다. 1980년대 세계 최초 바다 밑을 여행하는 관광 잠수함 마리아 1호를 사이판 앞바다에 띄우고, 제주도 서귀포 문섬에 마리아3호를 띄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은 방대한 고대사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다물넷'이란 출판사를 별도 설립한 뒤, <대쥬신제국사>를 시작으로, <조선해군과 대제독이순신>, <두만강>, <대불전>, <대한민국사>, <왜사>를 펴냈습니다. 모두 우리나라 고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 책에서 소개된 고대사 인물들만 2500명이 넘습니다.

대단하죠. 그럼 여기서 김산호 선생님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이처럼 고대사에 흠뻑 빠진 이유를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실제로 존재했었던 고대사를 발굴하고 연구하여 우리 한민족의 뿌리와 자랑스러운 고대사를 젊은이들에게 알게 해주어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다물'과 '쥬신'의 의미에 대해서도 질문했지요. '다물'은 '되물린다' '되찾는다' '되돌려 받는다'를 의미하며, '쥬신'은 조선이나 여진, 숙신의 이두식 표현으로서 여진족, 말갈족 등을 모두 아우르는 표현이라고 하시는군요. 즉 '대쥬신제국사'라고 하면 고조선뿐만 아니라 한민족 전체를 뜻하는 것이지요.

▲ 경복궁역 메트로 전시관에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산호 화백)
ⓒ 다물넷(김산호)

▲ 오궁(하늘의 오방에는 오궁이 있다. 동궁은 창룡, 남궁은 주조, 서궁은 함지, 붕궁은 현무, 중궁은 자궁이다) 김산호 선생님의 역사회화책[ 대쥬신제국사 -치우천황] 중 나오는 그림을 김산호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게제함.
ⓒ 김산호
김산호 선생님은 "지금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고조선이라는 표현은 바른 표기가 아닙니다. 고조선이라면 옛 조선인데 이씨 조선(조선왕조)을 뜻하는지 가자조선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표현입니다. 다행히 내년에는 '고조선'이 아닌 '단군조선'으로 바뀐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단군이야기를 신화로만 알고 있습니다"라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교과서를 뒤져봤지요.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살펴보니 '단군신화'로 소개되던 내용이 7차 교육과정에서는 '단군이야기'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신화'에서 '이야기'로 바뀐 것이죠. 김산호 선생님과 같은 분들의 수 십 년간의 현장답사와 고증연구를 통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6학년 말하기 듣기 쓰기 교과서 둘째마당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 찾기(티나라 이용, 대한민국 초등학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초등학교 교육 사이트)를 해보니 북한 평양에 있는 단군릉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단군릉의 존재는 단군이 신화가 아닌 역사 속 인물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화형식으로 만든 한민족 탄생신화

삼국이전의 고대사를 담고 있는 책으로는 '규원사화(숙종 원년, 북애자 저)', '부도지(삼국 초기 신라 박제상 저, 1953년 박금 복원)'가 있습니다. 김산호 선생님의 <대한쥬신제국사> 치우천황 편은 신라(新羅)때 비서(秘書)인 <부도지(符都誌:하늘에 관한 기록)>에서 전하는 단군시대 이전 한민족 탄생신화를 비교적 상세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제가 동화형식의 탄생신화를 써봤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줬더니 흥미롭다고 하네요. 그 내용을 살짝 소개합니다.

아직 하늘과 땅이 창조되기 전인 선천(先天:太初)에는 따뜻한 빛만이 있었습니다. 빛은 고요함 가운데 고요함으로 존재하였습니다. 태초에는 시간이 흐르지도 머물지도 않았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는 팔려(八呂:여덟 악기)의 음(音:소리)이 들려왔습니다. 그 여덟 악기의 소리는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듯,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리듯, 잠자는 벌집을 건드리듯, 잠자는 독수리를 건드리듯, 선천을 깨우고 또 깨웠습니다.

그 소리들은 서로 만나 화합하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며 여러 가지 소리들로 변하였습니다. 그 변화는 소리에 따라 수많은 별들이 생겨났습니다. 별들은 소리의 크기에 따라 큰 별, 작은 별이 되며 끝없이 생기고 또 생겨났습니다. 생겨난 별들은 제각각 다른 소리와 빛깔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맑고 투명한 푸른색을 가지고 선천의 소리를 담은 별이 있었습니다. 그 별을 요즈음 사람들은 '지구'라고 부릅니다.

이제 태초의 우주는 돌연 나타난 소리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변하였습니다. 이처럼 태초의 우주(선천)가 끝나면서 짐세(朕世: 지상의 세상)가 나왔습니다. 동시에 실달성(實達成)과 허달성(虛達成)도 생겨났습니다. 실달성은 보이는 성이고, 허달성은 보이지 않는 성이었습니다. 마고대성(麻姑大城)과 마고주신(麻姑主神) 역시 그 소리로부터 나왔습니다. 마고주신의 온 몸은 소리로 인해 생겨난 별들의 온갖 색깔들의 빛으로 감싸 있었습니다.

그 빛은 마고주신의 커다랗고 예리한 눈망울을 통해서 쏟아졌습니다. 마고주신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온 우주의 빛들이 소리와 어울려져 쏟아지니 그 모습은 꼭 춤을 추는 듯했습니다. 마고주신은 짐세(지상의 세상)의 젖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는 마고대성에서 살았습니다. 마고주신은 태초의 우주인 선천을 아버지로 삼고 지상의 세상을 어머니로 삼아 궁희와 소희를 낳았습니다.

궁희와 소희는 오만가지의 새로운 아름다운 빛깔을 담은 맑은 목소리와 오만가지 새로운 소리를 연주해낼 수 있는 악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고주신은 궁희와 소희에게 "위대한 나의 후손이여"라고 외치며 태양별을 선물하였습니다. 궁희와 소희가 우주를 거닐며 연주할 때면 별들이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궁희와 소희도 선천과 후천의 정기를 받아 여덟 명의 천인 각각 네 천자와 네 천녀를 낳았습니다.

이들은 마고대성 안의 지유(지유:땅의 젖)를 먹고 자랐습니다. 네 천자와 네 천녀의 눈망울은 오색찬란한 빛으로 늘 빛나 있었습니다. 마고주신은 네 천자와 네 천녀에게 "아름다운 나의 천자, 천녀여" 라고 외치며 금성별을 선물하였습니다. 또한, 마고주신은 네 천녀에게 천상의 소리를, 네 천자에게는 하늘의 소리를 맡아보게 하였습니다.

마고주신이 천부(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을 계승할 때 네 천자와 네 천녀가 천상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를 연주하였는데, 이 때 성안에 소리가 울려 퍼지며 수많은 천인들이 생겨났습니다. 마고주신은 특별히 천자를 닮은 천인을 '남자'라 부르고, 천녀를 닮은 천인을 '여자'라 불렀습니다. 천인들은 자꾸 불어나 온 성안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마고주신은 고심 끝에 그들을 맡을 관리자가 필요함을 알고 음을 골라 뽑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황궁씨, 백소씨, 청궁씨, 흑소씨였습니다.

따뜻한 빛만 있던 선천에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여덟 가지 악기의 소리(팔려)로 인하여 수많은 별들과 짐세(지상의 세상), 허달성(보이지 않는 성), 실달성(보이는 성), 마고대성, 마고주신, 궁희, 소희, 천자, 천녀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재미있게 잘 읽었나요? 이 내용은 1-2장 부분입니다. 원본이 궁금하다면 <대쥬신제국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최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