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中) "만리장성, 압록강까지다" 선언
기존보다 2500㎞ 늘려… 고구려 세력권 편입 의도… 韓·中 역사분쟁 재연될듯
중국이 명나라 때의 만리장성 동쪽 기점을 기존의 허베이(河北)성 산하이관(山海關)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떨어진 압록강 하류의 랴오닝(遼寧)성 후산(虎山)산성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랴오닝성 후산 일대는 우리 역사학계가 고구려의 요동 방어기지인 박작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곳이어서, 중국의 고대 세력 범위를 둘러싼 양국 간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문물보호국이 지난 25일 랴오닝성 후산시에서 만리장성 동쪽 기점 표지 개막식을 가졌다고 CCTV 등 중국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이날 개막식에서 중국장성(長城)학회는 만리장성의 서쪽 기점인 자위관 풍경구, 베이징 부근에 있는 바다링 풍경구 등과 함께 후산이 만리장성 동쪽 기점임을 공표하는 '장성선언'을 공식 발표했다.
우궈창(吳國强) 중국장성학회 비서장은 "랴오닝성 고고학 전문가들의 조사와 전문가 위원회의 논증 과정을 거쳐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 산하이관이 아니라 후산산성이라는 사실이 입증됐으며, 이를 세계에 선포한다"며 "이번 선언으로 압록강변의 만리장성이 본래 모습을 회복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으로 선언한 후산산성은 압록강 하구 단둥(丹東) 부근으로, 기존의 기점인 산하이관에서 직선으로 400㎞가량 떨어져 있다. 중국은 최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만리장성이 산하이관에서 동북쪽으로 계속 뻗어 올라가 요동 북쪽의 창투(昌圖)에 이르고, 남쪽으로 내려와 압록강변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만리장성의 길이는 기존의 6300㎞에서 8851.8㎞로 약 2500㎞가량 늘어나게 된다.
중국이 이처럼 만리장성 동쪽 기점을 압록강변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고구려가 활약했던 요동 지역을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청두(成都)상보는 27일자에서 "산하이관이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라고 돼 있는 교과서도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지난 2007년 5월부터 동북공정의 하나로 명나라 때의 만리장성 유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지난 4월 국가문물보호국과 국가측량국이 공동으로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이 후산산성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中 잇단 만리장성 늘리기…속셈은?
東端 2곳 모두 고구려 터..고고학계 `동북공정 굳히기 의도`
중국이 최근 들어 만리장성 동단(東端) 늘리기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4월 만리장성의 동단(東端)이 지금까지 알려진 산하이관(山海關)에서 한참 동쪽인 압록강변의 단둥(丹東) 후산성(虎山城)이라고 발표하더니 최근엔 또 다른 동쪽 끝인 랴오닝(遼寧)성 신빈(新賓)보다 10.9㎞ 더 동쪽에 있는 지린(吉林)성 퉁화(通化)현에서 만리장성의 유적이 발견됐다는 주장을 내놨다.
공교롭게도 후산성이나 퉁화현 모두 우리 고대사의 숨결이 흐르는 지역으로, 우리 고고학계는 중국의 이런 시도가 고대사 왜곡 논쟁을 촉발시켰던 동북공정의 '굳히기' 시도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25일 북한 접경지역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후산성에서는 중국 국가문물국이 주관한 요란한 행사가 열렸다. '만리장성 동단 기점-후산'이라고 명명한 표지 개막식이었다.
중국 장성(長城)학회 비서장 우궈창(吳國强)은 "만리장성이 서쪽의 자위관에서 동쪽의 산하이관까지라는 게 정설로 여겨져 랴오둥(遼東) 장성은 지난 300년간 '묻혀' 있었다"며 "장성의 동단이 후산성임을 확인한 것은 중국 고고학계의 중대 사건이자 만리장성 본래의 면모를 회복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후산성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만리장성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고고학계 인사들은 "만리장성의 동단이 산하이관이라는 교과서 내용은 이미 잘못된 것"이라며 "바로잡아질 것"이라고 밝혀 머지않아 교과서내용도 수정될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이에 앞서 지난 4월, 2년여의 측량조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졌다며 만리장성의 길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천500여㎞가 더 긴 8천851.8㎞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동안 산하이관-후산성 구간이 만리장성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데 대해 중국 고고학계는 "청나라 누르하치가 한족의 진입을 막기 위해 도랑과 담을 쌓으면서 이 일대 장성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지린성 문물고고학 연구소도 지난 22일 퉁화현 싼커위수진 남쪽에서 길이 172m, 높이 4m 규모의 진한(秦漢)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만리장성 유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자오하이룽(趙海龍) 연구팀장은 "출토된 도자기 파편 등의 유물이 한대 중기의 특징이 있다"며 "한나라의 고도인 츠보쑹(赤柏松)에 인접한 점으로 미뤄 츠보쑹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이 새롭게 만리장성 동단으로 규정한 후산성은 오랫동안 고구려의 대표적 산성인 박작성으로 인정돼왔다. 서기 648년 당(唐) 태종(太宗)의 침략에도 함락되지 않았던 성이다.
중국도 2004년 후산성 증축과 후산성 역사박물관 건립 전까지는 후산성의 성벽이나 대형 우물 터 등에 고구려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 표지를 내걸었다. 그러다 후산성 증축과 함께 슬그머니 안내판에서 고구려에 관한 언급을 모조리 삭제했다.
후산성 역사박물관 내에 있는 '당조강역도(唐朝彊域圖)'에는 고구려와 백제를 당나라 영역으로 표시하고 삼국 가운데 신라만 독립국가인 것처럼 구분해놨다.
우리 고고학계는 "요동은 물론 만주까지 원래의 중국 영토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명나라 때 여진족을 막으려고 산하이관 동쪽에 세웠던, 장성과는 구별되는 호원(壕垣.도랑과 담)인 '요동변장(遼東邊藏)'을 만리장성에 편입시키면서 고구려의 박작성마저 만리장성으로 둔갑시켰다"고 지적했다.
최근 만리장성 유적이 발견됐다고 밝힌 퉁화현 역시 인근 지안(集安)과 함께 대표적인 고구려 발흥지로, 2006년 고구려 초기로 추정되는 무덤 50여 기가 몰려 있는 2개의 고분군이 발견됐던 곳이다. 당시 퉁화현 고고학계는 이를 근거로 기원전 37년 고구려 주몽이 나라를 세운 곳은 랴오닝 환런현이 아닌 퉁화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고구려 박작성이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편입된 데 이어 공교롭게도 또 다른 고구려 근거지에서 재차 만리장성의 흔적이 나타났다. 동북공정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차지하려는 학술적 시도였다면 만리장성 늘리기는 '물증 확보'를 위한 구체적 행동으로, 우리 고대사 유적이 위태로워 보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따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기록 5개, 거가대교 (0) | 2009.10.29 |
---|---|
대한민국 도시계획史 (0) | 2009.10.18 |
터 이야기 -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 (0) | 2009.07.21 |
`서울~춘천 고속도로` (0) | 2009.06.10 |
통일한국의 심장 파주 (0) | 2009.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