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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붓을 들게 하는 아름다운 정원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구름 싸인 숲, 운림산방
저절로 붓을 들게 하는 아름다운 정원
송영대(greenyds) 기자
▲ 진도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선생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서 지은 집이다. 첨찰산 아래에 지었으며, 아침저녁으로 연무가 운림을 이룬다 하여 운림산방이라 한다.(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 51호)
ⓒ 송영대

첨찰산 아래에는 아름다운 유적지가 2곳이 있다. 하나는 운림산방이요, 또 다른 하나는 쌍계사이다. 절경(絶景)이라기보다 은은한 아름다움으로서 세인들을 매혹하는 이 두 유적 중에서 우선 운림산방에 발을 들였다.

운림산방이나 쌍계사는 첨찰산(尖察山) 아래에 있다는 거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건물의 배치가 자유롭고 넉넉하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운림산방은 양쪽에 내가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아 풍수지리를 생각하였고, 거기에 연못이 있어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워,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룬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 소치화실에 걸려있는 편액으로, 운림산방이라 써 있다.
ⓒ 송영대

운림산방(雲林山房)은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으며, 소치 허련(小痴 許鍊 : 1808 ~ 1893)선생이 만년에 기거하시던 곳이라 한다.

소치선생은 해남에서 초의선사에게 학문과 인격을 수양하고 녹우당을 오가며 윤공재가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을 통해 그림에 대한 다양한 체법과 화법을 터득하였다 한다. 그 후 초의선사의 천거로 추사 김정희선생의 문화에 입문하여 본격적인 서화공부를 하였고, 나이 42세에 이르러 헌종을 알현하여 왕 앞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이 내려준 것으로, 중국의 대화가인 대치 황공망과 비교한 것이라 한다.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라 극찬하였다고 하는데, 시, 서, 화에 뛰어난 삼절이라는 미칭까지 얻은 소치선생은 49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자락에 화실을 지어 소허암, 또는 운림각이라 하였는데, 이게 오늘의 운림산방이라 한다.

소치선생의 남종화의 대가로서, 조선말기 화단에 남종화풍을 토착화 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의 화풍은 후손에게 계승되어 호남화단에 영향을 미치는데, 주로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 한다. 마르고 갈라진 듯한 필력을 구사한 점이 특징이다.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와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완당전집>에 실려 있는 추사 김정희가 오진사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허소치(許小癡)는 화취(畫趣)가 지두(指頭)의 한 경지로 전전하여 들어가니 심히 기특하고 반가운 일이며 진작 그 농묵(弄墨)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 한이로세. 이 사람의 화품은 요즘 세상에 드문 것이니 모쪼록 많이 구해 두는 게 어떠한가.”

허소치가 바로 허련이다. 위 편지의 문장을 보아도 역시 김정희라는 생각이 드나, 그런 김정희가 극찬을 아끼지 않는 소치선생은 얼마나 그 경지가 뛰어났으면 “진작 그 농묵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 한이로세”라는 말까지 하였을까? 농묵이란 말 그대로 먹을 희롱하다는 뜻으로서, 먹을 가지고 놀듯이, 그러나 그 노니는 모습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운림산방의 모습은 옛날에 비해서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남아 남종화의 성지로서, 그리고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 또 어딜까? 이곳에는 소치화실, 소치거처, 소치영정실, 소치기념관, 그리고 진도역사관이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진도역사관을 둘러보지 못하였는데, 대신 천천히 걸으면서 소치선생의 묵향을 느껴 보았다.

▲ 운림산방의 연못. 가운데에는 백일홍나무가 있는데, 이는 진짜로 소치 허련선생이 심은 것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연못 주위에는 석탑과 괴석들, 그리고 나무들이 있다.
ⓒ 송영대

운림산방에 들어서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가운데에 있는 연못이다. 이 연못에는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고 거기에는 백일홍나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진짜로 소치선생이 심은 것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 연못은 영화 <스캔들>을 찍었던 장소로서도 유명하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느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연못 근처에 그 배경 사진을 걸어 놓았다.

▲ 소치화실의 모습. 괴석과 석탑의 모습도 보인다. 연못을 마주하고 바라보고 있다.
ⓒ 송영대

연못 근처에는 소치화실이 있으며, 탑이나 괴석 등이 자리를 잡아 자그마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있다.

소치화실 앞에 있는 3층 석탑은 기단부와 상대갑석과 하대갑석 사이가 길며 이를 탱주 4개로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스님이 좌정하여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곳곳에 괴석(怪石)이 있으며, 한 쪽에는 해태상으로 보이는 작은 석상도 있다. 주름진 이마에 뾰족한 이를 드러내며 헤벌레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무섭다 못해 익살스럽다.

소치화실에는 운림산방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작은 기와집이었으나 이곳에 앉아 경관을 감상하며 붓을 놀리었던 소치선생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 본래 소치선생이 심었던 일지매를 그 문하에 있었던 임삼현의 아들 임순재가 뿌리나누기로 길러 옮겨 심은 것을, 그 아들인 임태영이 원래 있던 운림산방으로 가져다놓았다한다.
ⓒ 송영대

운림산방에는 소치선생이 손수 심어서 가꾼 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일지매와 백일홍, 그리고 자목련이 그것이라고 한다. 일지매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소치선생이 운림산방을 열자 선물한 나무로 알려진다.

임삼현이 소치선생의 문하에 입문하여 수학한 뒤 소치선생이 타계한 후에도 26년간 운림산방을 관리하던 중 산방이 팔리고 당시 의신주재소 엔또 소장이 나무를 일본으로 옮기려고 하였으나 임산현의 아들인 임순재가 진도읍 동외리로 옮겨 심어 가꾸었다 한다.(제2대 나무) 제2대 나무가 살아있을 때 뿌리 나누기로 기른 자목 한 그루를 임순재의 아들인 임태영이 원래 있었던 이곳에 옮겼다고 하며, 봄이면 고아한 꽃을 피우고 맑은 향기를 퍼뜨리고 있다 한다.

소치거처는 작은 초가이다. 주위에 돌담이 싸여있으나 낮지 않으며, 돌담 위에는 세인들이 작은 돌탑을 쌓아놓은 듯,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포시 올라가 있다.

▲ 운림사 안에 봉안된 소치선생의 초상화. 의자에 앉아 지긋한 눈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
ⓒ 송영대

그 뒤편엔 소치영정실이 있다. 소치영정실은 운림사(雲林祠)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맞배지붕에 다포식의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공포가 일반적인 사찰의 다포처럼 화려하기보다도 절제되고 화려한 단청을 하고 있는게 특징이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소치의 영정을 바로 볼 수 있는데, 의자에 앉아 지긋한 눈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모습이다.

▲ 운림사 옆에 있는 사천사. 양천허씨의 진도중파의 문중제각으로 매년 한식날 소치선생의 6대조 허순의 가문이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곳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 송영대

운림사 옆에는 사천사(斜川祠)가 있다. 이 사천사는 양천허씨 진도중파의 문중제각으로서 매년 한식날 소치선생의 6대조 허순(許珣)의 가문이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곳이다. 여러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그런고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 소치기념관은 소치 허련선생과 그의 자손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외형은 한옥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 인테리어도 한옥 아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송영대

소치기념관은 소치선생과 그의 자손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소치 허련선생의 자손들 중에서는 유명한 화가가 많은데, 미산 허형선생, 임인 허림선생, 남농 허건선생, 임전 허문선생 등으로, 이 중에서 남농선생의 경우 목포에 남농기념관이 있으며, 이들의 그림이 목포 문예역사관, 그 밖의 여러 미술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운림산방은 아득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사실 소치선생은 이 운림산방에 오래 있지 않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그의 인물됨이 방랑을 즐겼고, 예술가의 혼이 있었기에 그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게 이곳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며 붓으로 세상을 살았던 소치. 그의 혼이 남아있는 곳은 다름 아닌 이곳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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