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08회 노원구 일대 유적지답사
▣ 일 자 :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 시 각 : 오전 9시 30분(시간엄수)
▣ 모임장소 : 태릉입구(지하철 6, 7호선 매표소앞)
▣ 참 가 비 : 10,000원(학생 5,000원)
▣ 지 참 물 : 간소복
♧ 연락처 : ☎ 762-0155 / Fax 762-0118
※ 답사안내 : 이원명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부회장)
※ 답사 후 오후 2시부터 노원구청 회의실에서
임시총회 및 학술세미나 개최
◈ 답 사 코 스 ◈
◈ 태 ‧ 강릉(사적 제201호)
서울 동북부의 태릉은 실은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두 번째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 윤씨의 능인 태능과 조선 13대왕 명종(明宗1534〜1567)과 명종의 비 인순왕후(仁順王后) 심씨(沈氏, 1532〜1575) 능인 강릉을 말한다.
한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태능 선수촌이 두 능 사이에 건립되면서 지금은 별도로 떨어져 있는 형국이 되었는데 현재 삼육대학교 정문 바로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 충숙이공 이상길 신도비(忠肅李公 李尙吉神道碑,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0호)
조선 중기 이상길(李尙吉, 1556-1637, 벽진이씨)의 비로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사직을 수호하다 순절한 충절을 기리기 위해 현종(顯宗) 2년(1661)에 건립된 신도비이다.
비문에는 임진왜란, 이괄의 난(1624),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선조〜인조년 간에 올곧은 행동으로 일관했던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다. 공이 졸한지 24년 후에 명문인 성균관 제주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의정부좌참찬 송준길(宋浚吉)이 쓰고 머리 전서(篆)는 이조참판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 충숙이공 이상길 영정(忠肅李公 李尙吉影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69호)
이상길(李尙吉)이 80세 때 화가 조선중기 유명한 화가 김명국(金明國; 1600∼미상)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도화서의 화원인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해학에 능했으며, 술을 좋아하며 몹시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 대부분의 그림들이 취한 뒤에 그려진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이와 같은 기질은 힘차고도 자유분방한 필치로 처리된 그의 작품들(「達磨圖」)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현재 이 영정은 솟을대문을 지나 사당인 동천재(東川齋) 바로 뒤 충영각에 보존되었다. 유리 액자내에 사진으로 찰영한 영정을 모시고 있다. 원래 두 폭을 그린 것인데 한 폭은 보물 제792호로, 다른 한 폭은 서울시 유형문화로 지정되었다.
◈ 한글고비(한글古碑,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7호 * 최근 보물로 승격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비로 조선 중종 때 문인 묵재(黙齋)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 부모님의 묘와 비석이 영구히 보존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묘비를 세우고 특히 한문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비석 한 면에 한글로 기록해 놓은 비석으로 최근 보물로 승격되었다.
◈ 노원역터 표지 동판
이 지역은 조선시대 도읍지인 한양과 근접한 지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쪽과 북쪽을 이어주는 교통로로 주목되어 북쪽지역인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첫 관문이기도 하다. 이곳이 조선시대 노원면(蘆原面)으로 불리어진 것은 고래로 당시 육상교통의 유일한 수단인 역참(驛站)으로서 노원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원(蘆原)이라는 지명은 이 지역이 갈대가 무성한 넓은 들판이었기 때문에 생겼다.
◈ 초안산 조선시대분묘군(超安山 朝鮮時代墳墓群, 사적 제440호)
초안산 조선시대분묘군은 약 5만평 정도의 나지막한 초안산 야산에 있는데 15세기 이래 서민, 중인, 내관, 상궁,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각종 문관석과 동자상 등이 시기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정계층의 분묘를 비롯해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무덤을 조영하여 묘제 변천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되며. 지역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내시네 산'이라고도 불렀다.
그중 언덕 너머 인덕대학 뒤 소위 매봉 뒤편에 17세기 부부 내시묘가 발견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즉, 조선 인조 때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가 내시부의 정6품인 상세(尙洗 ; 대전 ․ 왕비전 ․ 세자전 등의 청소와 주방의 심부름을 맡아 보는 을 수행)였던 ‘통훈대부행 내시부상세 승극철양위지묘’(通訓大夫行 內侍府尙洗 承公哲兩位 之墓)가 숭정기원후(崇禎起源後 甲戌 三月 日)인 인조6년(1628, 崇禎紀元)에 세워져 있음이 확인되어 조선조 內官의 생활사 연구에 주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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