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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 냄새 가득한 충남 강경에 가다

구수한 젓갈 냄새가 그리워질 때
젓갈 냄새 가득한 충남 강경에 가다
국은정(vin78) 기자
▲ 강경역, 광장의 몇 그루 나무에서는 쓰르라미가 울고 있었다.
ⓒ 국은정
지난 금요일(17일), '가볍게 바람을 쐬러 다녀올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 친구와 함께 호남선 기차를 탔다. 비둘기호에 이어 통일호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젠 완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현대화된 느낌의 무궁화호에 오르면서, 아스라이 멀어진 추억들을 꺼내 보았다. 산울림의 노래가 조그맣게 흘러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행선지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날 것 같은 조그만 소도시 강경이다.

강경역에 내리니 역 광장에 나무 몇 그루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쓰르라미 소리가 먼저 귀를 때렸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이젠 강경읍 여기저기에서도 쉽게 현대식 건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강경엔 잃어버린 과거의 풍경들이 즐비했다.

이제는 비아냥거림처럼 들릴지 모르는 말, '촌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읍내 안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자 비릿한 듯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강경의 자랑거리인 갖가지 젓갈들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 부지런히 발효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은 젓갈축제 기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는지 젓갈을 사기 위해 오는 발길은 드물어 보였다.

▲ 강경시장에서 오랜 고심 끝에 들어간 식당에서 '젓갈백반'을 시켰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다양한 종류의 젓갈들.
ⓒ 국은정
▲ 상을 가득 메운 젓갈백반.
ⓒ 국은정
"배고프지 않아? 어디 가서 밥을 먹을까?"

언젠가 강경에 왔을 때 유명세만 믿고 무심코 아무 가게나 들어가 젓갈을 샀다가 반도 먹지 못하고 버렸던 기억이 있던 차라 그 많은 젓갈가게들 중에서 어느 집을 골라가야 그 유명세에 걸맞은 젓갈 맛을 볼 수 있을지 고민이 됐다. 친구와 나는 강경으로 목적지를 정한 후 '젓갈을 사게 되더라도 먼저 맛을 본 후에 젓갈을 사자!'고 거듭 다짐을 했다.

젓갈 시장을 몇 바퀴 돌다가 오랜 고심 끝에 '젓갈백반'이라고 써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그 식당은 젓갈상회를 겸하고 있어서 직접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젓갈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직접 그 맛을 보고 나면 젓갈을 사는데 결정이 훨씬 더 쉬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선뜻 젓갈백반을 먹기로 한 것이다. 친구와 나는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점을 치는 심정으로 '이 집의 젓갈 맛은 어떨까?'하고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

먼저 10가지 종류의 젓갈이 한꺼번에 상 위에 올라왔다. 입맛을 돋우는 검붉은 고춧가루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젓갈들이 단번에 눈을 사로잡았다. 입안엔 금세 침이 고였다. 이어 상에는 남은 공간이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반찬들이 놓였다. 소금에 절인 조기와 파김치, 깻잎장아찌, 열무김치 등이 상을 가득 메웠고 마지막으로 된장찌개와 밥이 나왔다. 푸짐한 시골 밥상 앞에 숟가락을 드는 손이 살짝 떨렸다.

"와, 여기 기대 이상인데? 탁월한 선택이었어. 낙지젓과 창난젓은 정말 맛있다!"

친구와 나는 입 안에서 착착 감기는 달콤하고 쫄깃한, 그리고 구수한 젓갈 맛에 흠뻑 빠져 들었다. 공기밥은 이내 바닥을 드러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여기 오면 다들 밥 두 공기는 기본이에요!"하며 공기밥 하나를 그냥 덤이라며 놓고 가셨다. 일찍이 젓갈을 가리켜 '밥도둑'이라고 했던가? 다양한 젓갈 맛에 혀가 모처럼 호강을 했다. 우리는 먹는 내내 감탄을 연발했다.

▲ 강경포구, 지금은 고수부지에 더 가깝다. 푸른 잔디밭과 유유히 흐르는 금강 줄기, 건너편 부여의 들까지 확 트인 시야가 시원하다.
ⓒ 국은정
▲ 강경포구, 푸른 잔디밭에 나무로 만들어진 그네 벤치가 운치 있다.
ⓒ 국은정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직접 맛보았던 젓갈들 중에 상대적으로 더 맛있다고 느꼈던 젓갈 몇 가지를 구입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는 이번에도 역시 덤이라며 조개젓과 함께 직접 담갔다는 무장아찌를 넣어주시며 살짝 귀띔을 했다.

"사람들이 젓갈 축제 때만 와서 너도나도 젓갈을 사 가는데, 아는 사람은 이렇게 한가할 때 와서 젓갈을 사가. 축제 땐 이렇게 덤을 줄 정신도 없어. 손님에 치여서 너무 바빠."

덤에 기분 나쁠 한국 사람이 있을까? 일부 외국계 회사에서는 우리나라의 '덤 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방했다지만, 오랜 농경생활 속 몸에 배인 공동체 의식과 인정은 분명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아주머니의 인심 덕분에 훨씬 더 기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설 수 있었다.

▲ 강둑에 피어있는 맨드라미 꽃무리, 뜨거운 태양 아래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 국은정
강경시장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강경 포구에 닿을 수 있다. 지금은 포구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옛날 포구의 모습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읍내 사람들이 운동이나 산책을 하기 위해 나오는 고수부지의 형태로 그 모습이 바뀌었는데, 잘 가꾸어진 푸른 잔디밭과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줄기, 건너편 부여의 들녘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또 다른 운치와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곳이다. 강둑에 피어난 맨드라미꽃도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포구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제방 위에는 그 옛날 사용했을 법한 선박들이 줄을 서서 여행객들을 맞이했다. 그 배들은 마치 바람이 불면 슬그머니 정박한 자기 몸에 묶인 줄을 풀고 다시 강물 위로 내려갈 것만 같았다.

▲ '독산'이라고 불리었다는 바위, 말미잘을 닮았다.
ⓒ 국은정
▲ 바위에 난 나무의 모양이 '용'을 닮았다.
ⓒ 국은정
멀리 부여로 이어진 황산대교 근처에는 볼록하게 솟은 바위 2개가 보였다. 예전에는 '독산'이라고 불렸다는 이 바위는 본래 하나로 이어진 것이었는데 황산대교를 만들 당시 쪼개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쪽 바위는 말미잘의 촉수처럼 삐죽삐죽 나무들이 솟아 있었고, 다른 한쪽 바위에는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재미난 용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강경이 고향인 사람들은 어릴 적 그 바위를 보면서 자랐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바위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고향 사람들의 아스라한 추억과 애틋함이 만져질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강둑을 거닐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무로 만든 그네 벤치에 앉아 금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덧 해가 기울어갔다. 강경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해가 산 너머로 쏙 들어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다 서둘러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만하면 '화려하진 않지만 머리 식히기엔 썩 괜찮은 여행'이 아닌가. 친구와 나는 젓갈냄새 가득한 시장을 지나 역으로 오는 내내 두둑해진 가방 생각에 뿌듯했다. 기차는 천천히 역을 떠났다. 언젠가 구수한 젓갈 맛이 그리울 때, 강경 포구의 시원한 바람이 생각날 때, 다시 호남선 기차를 타고 조용히 하루를 보내다 올 것이라고 아쉬움을 달랬다. 멀어지는 강경에게 마음속으로 조그맣게 '안녕'을 고했다.

▲ 제방 위에 줄을 서서 정박해 있는 선박들.
ⓒ 국은정
▲ 옛 강경포구에 해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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