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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호씨는 수락폭포 위 마을을 한옥마을로 지정받아 5채의 한옥을 지을 계획이라 한옥에 대해 관심이 많으며, 우리가 민박하는 한옥 구경을 왔다가 전동공구 소리에 끌려 우리작업장에 들린 것이다. 관심사가 한옥건축이라 자연스럽게 우리는 많은 얘기를 하게 되었다. 이과호씨는 다음에 꼭 시간을 내어 수락폭포도 구경하고 자기의 한옥 건설현장도 방문해 달라는 인사말을 남겼다.
토요일 아침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전부터 날이 갠단다. 그러나 눈을 뜬 시각에는 비가 완전히 멎질 않았다. 나와 집사람은 언젠가 한번 가봐야 할 이과호씨 한옥단지라면 오늘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이른 아침을 먹고 수락폭포를 찾아 나섰다. 같은 산동면이고 수기리라면 시상리와 인접한 마을이라 멀어야 5km 이내이다. 가벼운 기분으로 수락폭포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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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폭포의 안내판에 의하면 수락폭포의 총 연장 길이는 15m에 달하고 상부에 신선들이 모여서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와 우측에 우뚝 솟은 '할미암'은 득남하지 못한 아녀자에게는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단다. 수락폭포는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가 되면 많은 인파가 이곳 폭포수를 맞기 위해 몰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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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폭포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항상 웅장하고, 폭포 주변지형이 항아리처럼 생겨서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에 판소리의 양대 산매 중의 하나인 동편제의 대가인 송만갑 국창이 득음하기 위해 수련한 장소로 유명하다. 요즈음도 국악 예비 명창들이 수련장소로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황산(697.2m) 아래에 있는 운봉읍 화수리 비전 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의 황산대첩의 배경마을로도 유명하지만 국악인들에게도 판소리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동편재와 서편재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진다. 그 중에 운봉은 동편재의 뿌리다. 동편재의 창시자로서 판소리계에서 최고의 칭호인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송홍록(1780년경~ 1863년경)명창과 국창 박초월(1916~1983)이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인 까닭이다.
박유전을 그 시조로 삼고 있는 서편재는 섬진강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 등지에서 많이 불렸다. 선천적인 성량에 의존하는 동편제(東便制)와는 대조적으로 서편제는 기교와 수식의 맛이 중요하다. 소리 한 꼭지를 몇 장단에 걸쳐 끌고 가다가 어떤 마디에 이르러 소리를 만들고 다시 끝을 맺는다. 발림이 많이 들어가고 연기적인 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서편제는 정교하며 감칠맛이 있다. 대표적인 서편재의 판소리로는 <춘향가>의 '이별가', <심청가>의 '효성가', <적벽가>의 '사향가'가 있다. 박유전제는 박유전(朴裕全)의 호를 따 '강산제'라고도 하며 이날치, 김채만, 정창업, 정정열 등에 의해 전승되었다
'조용헌 쌀롱'의 기사에 의하면 득음의 경지를 두 가지로 표현하는데, 그 중 첫째가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경지를 가리킨다. 새가 우는 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 귀신이 우는 소리, 슬픈 소리, 기쁜 소리 등을 마음대로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요, 다음 둘째가 자신의 목소리가 폭포 소리보다 더 커서 폭포소리를 제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고,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가운데 자신의 소리만 듣는 것이 득음의 경지라는 것이다. 자신의 소리만 듣는다는 것, 즉 자신의 내면의 미세한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경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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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폭포 가까이 올라가니 잘 어우러진 동백 숲에 흰 동백이 청초하다. 비 온 뒤끝이라 그 정도가 더한 것 같다. 폭포소리가 귀를 얼마나 멍하게 하는지 정신이 혼미하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내가 제일 잘 부르는 나훈아의 '영영'을 폭포를 향해 뽑아봤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 못하네!
아마 나는 너를….
황소 뿔 위에 앉은 파리가 자기 힘으로 황소를 움직인다고 빡빡 우기는 것 같은 엉터리 기분이다. 머쓱하여 돌아서는 나를 집사람이 미소로 감싸준다.
노래방만 같으면 절대로 기가 죽지 않을 텐데….
빈대떡에 막걸리라도 한잔하려고 했으나, 너무 이른 아침에다 비 온 뒤라 그런지 널브러진 쓰레기만 뒹굴지 음식점은 한곳도 문을 열지 않았다.
이과호씨 농장은 수락폭포만 오면 바로 찾을 줄 알았으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고래 등 같은 한옥이 모인 마을은 보이질 않는다. 주변을 청소하는 아저씨에게 이과호씨를 물으니 그의 농장으로 통하는 입구를 알려준다. 입구에 들어서니 이과호씨 핸드폰 번호와 0.8km 이정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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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잘못 들어 전화통화를 하고 난 후에야 이과호씨 농장을 찾아갔다. 우리가 보고자 했던 한옥은 아직 새워지지 않고 이과호씨는 매우 바쁜 일정으로 터닦기를 진행 중이었다. 2개월 정도 지나야 처음 한 채가 세워 질 계획이고, 이과호씨가 직접지을 것으로 기대했던 우리는 평당 450만원에 맡겼다는 이과호씨 말에 실망하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달리 이과호씨는 수익성 있는 음식점과 곤충체험장을 설계하고 만들고 있었다. 바쁜 이과호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서둘러 우리 시랑헌으로 돌아왔다. 날씨는 완전히 개어 우리가 해야 할 나무심기 매우 좋은 날씨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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