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사랑방’ 이야기
2006년2월1일 ‘미래촌(美來村)’이라는 사랑방 문을 덜컥 열었다. 당장 성과(결과물)를 내 보일 수는 없지만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해서 시작했다. ‘돈’ 봉사할 분이 앞장서서 사무실을 꾸몄다. ‘몸’ 봉사할 사람이 나섰다. ‘머리’ 봉사할 사람이 일할 내용을 계획했다. 이렇게 세 눈먼 봉사(눈 뜨고 봉사 하기란 어렵다)가 모여 일(무료생활강좌)을 저질렀다. 물론 회비(수강료)도 없고, 회원도 따로 없고, 따라서 회칙도 없으니 회장 또한 없다. 강사료도 주지 않는 5무(無) 사회다. 청지기는 있어야 하니 몸 봉사하는 사람 이름을 동장(童長 )이라 했다. 느슨한 모임이어서 결속력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옛 사랑방이려니 하며 관심두지 않았다.
이렇게 방배동에 ‘美來村’이라는 사랑방 같은, 오아시스 같은 쉼터를 만들어 이제 2년을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 목요일에는 생활강좌를 열어 200강이 넘었고, 화요일에는 전통과학기술 강좌를 올려놓았다. 누구나 거리낌 없이 미래촌에 들려 강의도 듣고 한담을 나누기도 한다. 부담이 없어 편안하다.
가끔은 적은 회비라도 받아서 운영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분이 있다. 회비가 있으면 회원제가 되어 비회원을 차별하는 기준이 되어 싫다. 회비는 반드시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덩달아 의무가 뒤따라 발목을 잡는 구속이어서 또한 싫다. 누구도 참석을 권유하거나 강제하지 아니한다. 입소문으로 강좌 소식을 알린다. 신문 방송을 타지도 않았고, 전단지를 만들지도 않았다. 간간히 엽서로 강좌 소식만 알린다. 디지탈 시대에 아날로그식 홍보다. 조직사회의 억압에서 해방된 감동을 갖는다. 어느 날에는 강사와 나 그리고 단 세 사람이 모여 강의 한 때도 있었다. 어느 때는 5-60명이 모여들어 방이 비좁을 때도 있었다. 그동안 1000여분이 다녀갔다. 무료봉사 강사만도 200분이니까, 강사가 수강생이고 수강생이 강사인 셈이다. 지식을 나누고자 한 것인데 그보다는 ‘생활 속의 지혜’ 나눔터여서 이곳을 사랑방 같은 오아시스 같은 쉼터라고들 다른 이에게 소개한다.
잠깐 조선시대 양반댁‘사랑방’을 생각해 본다. 대부분 양반댁은 사랑채를 따로 두어 지나는 길손을 맞아 들여 다른 고장의 소식(정보)을 전해 들었다. 가끔은 다른 지역에 사는 문우(지식인)를 불러 사랑방에서 좌담도 벌이고 시회(詩會)도 열었다. 문장을 서로 겨루며 한수 배우기도 했다. 동네에 사는 몇몇 지인들을 불러 함께 자리를 펴고 지식을 나누기도 했다.
사랑방은 지역 문화의 교두보였다. 마을 공동회는 아니어도 양반댁 사랑방이 지식과 문화의 나눔터였다. 열린 공간을 제공한 양반댁이 마을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세시풍속 절기에 맞추어 동네잔치(축제)는 먹고 살만한 양반 댁에서 이를 주선했다. 동네 추렴에 앞장서 잔치를 주도 했다. 가끔은 먼 곳에 있는 이름난 놀이패를 불러와 마을 주민들의 흥을 돋구어 주기도 했다.
어느 종가 고택에서 들은 얘기를 소개한다. 자기 집 마당이 비좁아 혼례식 하기가 어려운 동네 사람을 위해 양반댁 마당을 내주었다. 잔치가 끝나고 밤이 되어도 신랑 신부가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않고 마당을 서성거리면, 안방 마님이 눈치를 채고 신혼 방을 챙겨 주기도 했다. 신혼방 꾸밀 여지가 없는 신랑신부를 위해 당신 딸 방에 새 이부자리를 펴 놓고 첫날밤을 이곳에서 지내게 배려하기도 했다.
농민의 피땀을 착취한 못된 양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올곧은 양반들이 있어 열린 ‘사랑방’과 ‘마당’을 마련해 놓아 지역경제와 지역문화를 가꾸어 온 것이다.
이런 ‘사랑방’을 오늘 이곳에 재현 할 수는 없을까? 옛 조상들의 ‘사랑방’ 같은 것을 도심에 올려 볼 수는 없을까? 아니 사막 같은 도심 속에 오아시스 같은 쉼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미래촌 문을 열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 세상에 잘 알려진 스님이 방문했다.
“이 비싼 땅에 사무실을 잘 꾸며놓고 늘 비어 있으면 아깝지 않느냐는 질책에 답하기가 아주 궁합니다.” 하며 걱정을 하였더니
“비어 있으니 채울 공간이 있어 너무 넉넉하지 않습니까. 누구나 언제나 들고 날수 있어 얼마나 좋습니까. 빈 공간을 채우기는 쉽습니다. 넘치게 채워져 나누는 일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때가 곧 찾아 올 것입니다.”고 응답해 주어 힘이 났던 때도 있었다.
올 8월 첫주에는 모처럼 1주 여름 휴강을 했다. 겨우 두 번 강의를 건너뛰었는데, 첫 월요일에 더 많은 분들이 나와서 ‘왠 휴가가 이렇게 길었느냐’고 푸념을 했다. 이곳이 사랑방이었고 오아시스 쉼터였고 행복마당이기도 했었구나하는 생각에 잠시 감회에 젖어 보기도 했다.
1시간 조금 넘게 하는 강의 시간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한다. 이렇게 감동적인 강의를 2-30명만 듣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한다. 녹취를 해서 책으로 펴내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건의한다.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 식으로 적게 천천히 차근차근 가는 게 맞을 듯싶다. 급할 게 없이 가다가 힘들면 내려 앉아 쉬면서 가도 된다.
미래촌 1년이 되면서 사랑방이 지방에서도 시작이 되었다. 충북 진천에, 충남 금산에, 강원도 영월주천에 사랑방 강좌를 열었다. 돈 봉사, 몸 봉사, 머리 봉사, 눈먼 봉사 셋이 삼발이로 받쳐 들고 있으면 이런 작은 무쇠 솥(사랑방)하나 쯤은 어디에든 세울 수가 있다.
크고 빠르고 많은 것에 골몰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작지만 알토란같은 쉼터가 여기저기에 생겨났으면 좋겠다. 작은 사랑방(오아시스)이 있어 목마른 도심 사람들의 목을 축여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이런 작은 ‘사랑방’을 만들어 건전한 정보와 지혜의 나눔터를 마련하였으면 좋겠다. (미래촌 동장 김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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