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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박미라·김진석 모자

등하굣길 '휠체어 모정'으로 감격의 열매


2008-01-10 16:48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로 인정받는 스티븐 호킹 박사. 그는 루게릭병 즉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자신의 신체적 장애에 대해 이런 얘길 했는데요. ‘나는 내 상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우려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는 만큼 실제 못하는 일도 거의 없다.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생인 김진석 씨를 보면, 이 말이 생각나는데요.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 김진석 씨는 6년 동안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다니며, 지각이나 결석 한 번 없이 우수한 성적으로 학부를 마치고, 올 2월에는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거기다 졸업하기 전에 벌써 NHN에 입사도 확정됐다는군요.

이처럼 장애를 극복한 김진석 씨의 뒤에는 늘 아들의 손과 발이 된 어머니 박미라 씨의 지극한 모성이 있었는데요. 아들 김진석 씨와 어머니 박미라 씨를 1월 8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생애 최고의 감격 “엄마 NHN 합격했어!”

▶ 진석군은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때에 대학원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이 결정돼서 좋으시겠어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요.

▶ 어머니는 어떠셨어요?

작년 하반기를 굉장히 바쁘게 보냈는데 진석이가 “엄마, NHN 합격했어.”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가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 출근은 언제부터인가요?

2월부터 연수가 시작되고 연수가 끝나면 바로 출근합니다.

▶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연수를 받아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제가 지원한 분야가 개발 분야라고 해서 컴퓨터학과 졸업한 사람들이 프로그램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런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주위 선배들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뻤는데 제가 여러 가지 전형을 직접 준비해서 하나하나 통과해서 최종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차원이 다른 기쁨이 느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전화로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는 회사 홈페이지에 아직 공지도 안 되었었거든요. “NHN 주식회사입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뭘 축하한다고 하는 건지 몇 초간은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최종합격을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정말 합격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었죠.

▶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사회인이 되었는데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지금까지 학교에서 굉장히 오랜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는 사회인이 되니까 설레는 것도 있고 두려움도 있어요.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거라서 기대감도 크고 또 주변의 선배들에게 조언도 얻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 조언은 뭐라고 하던가요?

가장 기본적인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많이들 그러세요. 자기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등을 말씀하시고 또 어떤 분은 청약통장부터 만들라고 하신 분도 계세요.(웃음)

▶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머님은 눈물부터 나셨을 것 같아요.

그때 제가 학교 내에 있었는데 생활하는 방이 따로 있어요. 엄마들이나 장애학생들이 사용하는 방이 따로 있었는데 혼자 있을 때 메시지를 받았어요.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결국 우리 아들이 해냈구나, 정말 큰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죠.

▶ 장애 때문에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셨을 텐데요.

진석이가 합격하기까지 관문을 4개를 통과해야 하는데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어요. 그때 인사팀에서 저를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예상은 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오면 이렇게 대답해야겠다고 나름대로 준비는 했었어요. 제 예상대로 학교생활은 어땠는지를 물어보세요.회사에서도 진석이 같은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모르는 것 같았어요.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한데 진석이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만약 최종합격을 한다면 출근하기까지 한 달 밖에 시간이 없는데 이후에 회사에 다니려면 많은 준비를 해야 되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그리고 진석이의 장애가 심하기 때문에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회사에서 수용할 수 없다면 떨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인사팀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종합격을 한다면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한다든지 휠체어를 전동으로 바꾼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것까지 하겠다고, 실력이 된다면 꼭 뽑아달라고 하고 나서 2주를 기다리는데 굉장히 초조했어요. 결국 회사에서는 전혀 그런 건 개의치 않고 실력만 보고 뽑았다고 하더라고요.

◇ 남편은 암, 아들은 근위축증... 자살 생각도 해

▶ 근위축증을 앓고 있는데 현재 상태는 어떤가요?

계속 진행 중이니까요. 처음에 발견했을 때는 전혀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빠지더라고요. 처음 발견하고 나서 17년째에요. 그동안 많이 안 좋아져서 지금은 누군가가 옆에서 손발이 되어 주어야 해요.

▶ 진단을 받으셨을 때 어머니 마음이 어떠셨어요?

하늘이 무너진다는 표현은 그런 때 쓰는가 봐요. 저 혼자 가서 최종진단을 받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병원 치료차 왔다가,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저를 많이 위로해 주시더라고요. 아들이 진석이와 비슷한 또래인데 굉장히 심한 상태라고, 어차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아직은 진석이가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으니까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누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돼요. 남편이 투병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는데 힘든 상황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그런 진단을 받으니까 정신적인 방황을 많이 했었어요.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12번씩 했었죠.

그러다가 가족에게 해 준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을 차렸어요. 남편도 뒷바라지를 해야 하니까 두 사람 데리고 병원 다니고, 진석이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으니까 정기검진과 운동을 데리고 다니고...심신이 항상 바쁘고 정신이 없었어요.

▶ 진석군은 당시에 사춘기였을 때인데 잘 이겨낸 것 같아요.

참 다행스러운 게 제가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서 중요한 시기였는데 성격 덕분에 무난히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24시간 어머님이 함께 계시는 건데 필요할 때 도우미들이 있나요?

정부에서 보내주는 활동보조인이 있는데 작년 4,5월부터 이런 지원 시스템이 생겼어요. 그런데 저희는 학교를 가면 학교 자체의 도우미들이 있고 수업을 듣는 같은 과 학생들이 많이 도와줘서 아직은 활동보조인을 쓰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라 제 개인적은 일은 거의 못 보고 있어요.

▶ 진석군이 중고등학교를 충북에서 보낸 건가요?

아니요. 태어난 곳은 용인이고 아기 때 성남시로 이사해서 중학교를 마치고 남편 사업 때문에 충북으로 이사를 가서 고등학교를 거기서 다녔어요. 병을 발견했을 때가 10살 무렵이었죠.

▶ 친구들 사귀는 건 어땠나요?

성격은 무난하니까 잘 어울렸는데 몸이 안 좋아지고 나서는 밖의 활동을 잘 못하잖아요.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어디를 가고 싶은데 그런 걸 못하니까 진석이가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몸에 힘이 없으니까 책 한권을 들 수도 없고 물 한 컵 마시지 못하고 침대에 누었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눕지도 못하고, 이런 것들이 안 되니까 본인이 힘들 거예요.

그 대신에 정신력이 강해서 집중력이 뛰어나요. 체력이 없어서 장시간 공부에 투자할 수는 없어요. 공부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해서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 ‘지각, 결석은 우리 사전에 없어’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텨

▶ 결석이나 지각 한 번 안 하셨다고 하던데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아무리 비바람이 불고 태풍이 와도 가야 된다는 일념은 진석이나 저나 똑같았어요. 휠체어로 버스에 타고 강의실로 이동하려면 도우미학생과 3,4명이 움직이거든요. 아무리 큰 우산을 써도 비에 맞죠. 감기도 들고 몸이라도 아프게 되면 정말 악조건인데 진석이가 워낙 하고 싶은 공부여서 악착같이 했고 엄마인 저도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몸이 약하면 정신력이라도 강해야 한다고 엄하고 강하게 대했어요. 지각, 결석 우리 사전에는 없다, 단 1분도 늦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저희가 늦게 들어가면 다른 학생들이 수업하는데 방해가 되잖아요.

저희는 다른 학생처럼 조용히 가서 앉는 게 아니니까 수업의 맥이 끊길 수 있어서 항상 먼저 가서 있었어요. 대신 좋은 자리를 잡아줬어요. 전석이는 수업 시간에 집중력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여러 악조건 속에서 정신력으로 버텼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수업시간에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배려해 준 전담도우미가 따로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 진석군은 몸이 불편하니까 공부는 해서 뭐해, 그런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컴퓨터를 전공하는 건 예전부터 굉장히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게 재미있었어요. 공부만 하는 거라면 혼자 집에서 책보면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학교에 가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였어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서강대학교에서 어머니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면서요?

저야 제 자식이니까 당연히 할 일을 했던 거고 명예졸업장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일이 알려진다는 게 사실은 부끄럽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명예졸업장을 주셔서 받기는 했어요.

▶ 진석군이 수업을 들을 때 어머니께서는 뭘 하시나요?

그 시간이 제 시간이거든요. 하지만 그 시간에 어디를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진석이 주변을 맴돌아요. 물론 보살펴 주시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제 마음이 편하지 않거든요. 50분, 75분 수업인데 끝날 때마다 강의실을 이동해야 해요. 도우미학생들이 있기는 해도 제가 따라다니면서 해야 할 일들이 있어요. 그래서 항상 대기상태인데 그 시간에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고 또 장애학생들을 위한 방에서 학생들과 이야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저도 마치 대학생이 된 것 같았어요. 바쁘지만 재미있는 시간이었죠.

▶ 서강대학교대학원 컴퓨터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성적은 어떤가요?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요, 대학원에서의 성적이 학부 때보다는 좋게 나왔어요. 대학원에서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좀 더 깊게 하는 거라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또 교수님들도 많이 봐주신 거예요.

▶ 진석군은 어려울 때마다 힘이 되는 좌우명이 있어요?

특별한 건 없고 다만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을 할 것이고 이런 생활을 할 거라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거기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생활했던 것 같아요. 미래의 모습이란 한 마디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생활이에요. 이게 말은 쉽지만 따져보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거나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거나 돈이 없어서 못 할 수도 있거든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서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같이 있고 싶은 친구들,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를 갖추는 것이 제 미래의 모습이에요.

◇ 진석이는 속 깊은 아이... 한 번도 불평한 적 없어

▶ 아무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의견충돌이나 갈등은 없으신가요?

사소한 일에서 가끔 의견충돌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진석이가 속이 깊고 싫은 내색을 안 해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아무리 엄마가 잘 해 준다고 해도 제 마음에 들겠어요?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한 것도 많았을 텐데 거의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제가 체력이 달릴 때, 진석이를 씻기고 옷 입히고 학교에 보낼 때 진석이가 미운 건 아닌데 짜증이 나요.

내 체력이 감당할 수 없는데 누가 도와줄 사람은 없고 학교에는 보내야 하고 지각은 해서는 안 되고, 그래서 혼자 스트레스 받고 힘들었던 거예요. 그래도 진석이가 잘 해주니까 진석이를 보면서 위안을 받았죠.

▶ 진석군은 어땠어요?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낙천적이라서 힘든 때도 있지만 그런 게 오래 안 가거든요.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만 지나면 다 잊어버려서 저보다는 어머니가 힘들어하시는 데 많이 신경을 썼었어요.

▶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남편이 2004년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물론 남편이 있었을 때도 돈을 벌면 두 사람의 병원비로 들어갔어요. 굉장히 힘들었는데 막상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남편이 하던 사업장 정리나 시동생한테 맡겼던 부분이 잘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시동생이 저희 가족과의 약속을 잘 이행하지 않아서 제가 나서서 정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정리를 하고 나니까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지만 이 돈을 가지고 생활 대책을 세웠어요. 우리 두 사람의 생활비 정도는 만들어놓았고 학비는 장학금으로 다 해결을 했죠. 진석이가 학부 때나 대학원도 마찬가지로 학비로 돈이 들지 않았어요. 큰 돈 들어가는 것은 없으니까 지금까지 살 수 있었겠죠.

▶ 남편과 아들을 돌보시느라고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으셨겠어요.

남편 간병할 때 식이요법을 활용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부엌 싱크대에서 떠날 줄 몰랐고 진석이도 마찬가지로 식이요법을 시켰고요. 두 사람 다 1년에 9,10번씩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니까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는 건 상상도 못했고 나들이할 수 있는 건 병원나들이였어요. 병원 방이 호텔방이다 생각하고 짐 싸지고 가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려고 했어요.

▶ 진석군은 본인도 힘든 상황에서 아버지의 투병까지 겹치니까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정말 힘들어서, 아까 미래의 모습을 상상한다고 했는데 정말 어려울 때는 그 상상조차 안 되더라고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고작이었어요. 무사히 넘기는 거,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어요.

▶ 진석군에게 불편한 몸 대신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머니께서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진석이의 건강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진석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똑똑한 아이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아이를 기르면서 순간순간 굉장히 영리한 아이라는 걸 느꼈어요. 친구들과 놀 때도 머리를 쓰는 게 보이고 과학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서 아주 어릴 때인데 풍선을 가지고 놀다가 장롱 위로 풍선이 올라가 버렸어요. 어떻게 하나 지켜봤는데 장롱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해요. 그 바람으로 풍선이 내려왔어요. 그걸 가지고 다시 놀더라고요. 그리고 한두 달밖에 안 된 아주 갓난아기 때 모유를 먹였어요.

그때도 아이가 머리를 쓰고 생각한다는 걸 느꼈어요. 보통 아기들이 모유를 먹다가 양이 넘치면 사래가 들려서 울고 그러면서도 계속 먹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입을 벌리고 있는 거예요. 모유가 입 안에 찰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차면 삼키고 또 가만히 입만 벌리고 있다가 차면 삼키고 안 나오면 그때서야 자기가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아기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나 싶어서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었고 20대 박사를 만들어보겠다고 나름대로 생각을 했었죠.

어릴 때 책을 사주면 과학 쪽에 관심이 많고 뭔가를 설명할 때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그쪽으로 키워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도중에 건강이 안 좋아지니까 공부를 강요할 수 없었어요.

◇ 사회에 내딛는 첫발, 당당한 사회인으로 서고 싶어

▶ 주변에서 너무 혹독하게 공부시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올 법한데요?

오히려 주변에서 이런 분이 계세요. 몸이 저런데 공부는 해서 뭐하냐?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저는 뭐라 할 말이 없어요. 그럴 때 상처를 받아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더욱 공부는 역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진석군에게 어머니는 정말 특별한 존재시죠?

모든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다 그렇겠지만 저에게 어머니는 정말 특별한 존재세요.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제가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겠죠. 몸도 불편한데 공부까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요.

▶ 첫 월급 타면 어디에 쓸 거예요?

취업했다고 주변에 얘기했더니 첫 월급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한 턱 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쓰다 보면 첫 월급이 다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 진석군의 앞으로의 꿈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건데 지금까지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고 또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으면서 생활했다면 이제는 어머니의 도움보다는 스스로 제 역할을 하면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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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날짜 : 2007/04/03조회 : 110

행사 치르시느라 회원님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회원 김진석의 엄마 박미라입니다.
일일호프 행사 치르시느라 회원님들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저희는 처음 참석했는데 화기애애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참 좋았습니다.
4월 1일 모임도 그랬고요. 저희 모자도 바쁘긴하지만 시간내서 종종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 어제 끝났습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에게 그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신 회장님과 협회측에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앞으로도 진석이와 저 많은 분들께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삶을 살겠습니다. 힘드시지만 회원 여러분 모두 힘냅시다.
회원님들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2007년 4월 3일
진석이 엄마 박미라 올림.

ps. 생로병사의 비밀 방송 날짜
2007년 4월 10일 화요일 밤10시
난치병 특별기획은 10시40분에서 11시 까지 방송됩니다.

<특별기획>

희귀난치성질환 환우들의 희망보고서

-3편 진행성근디스트로피증(진행성 근이양증)

■ 대한민국의 스티븐 호킹, 26살 김진석!

온몸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에 걸려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도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세계적인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박사!

우리나라에도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청년이 있다.

서강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에 재학중인 25살 김진석군!

근육이 점점 줄어드는 희귀질환인

'진행성 근디스트로피증(진행성근이양증)'을 앓고 있는 김진석군.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매일 학교를 찾아 공부를 하는 모범생이다.

■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진석군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 자판 치기'와 휴대폰 문자 보내기'!

아침에 눈을 떠서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빗질을 하고 나서기까지

모든 것은 '엄마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경비아저씨, 학과 친구들, 학교 도우미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주는 아들이 있어 고맙다는 엄마'!

'진석이를 도와주면서 또 다른 삶을 배울 수 있어 고맙다는 친구들'!

하지만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진석군'!

■ 4년 만에 일어선 진석! 그리고 엄마의 눈물!

2004년.중학교 이후로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던 진석군이 휠체어를 처음 타게 됐다.

그리고 2007년 4월.

재활치료실을 찾은 진석군은 온몸을 기댈 수 있는 '재활 기구'의 도움으로 일어선다.

"비록 기계에 의지하긴 했지만 진석이가 몇 년 만에 서있는 모습 보니까 눈물이 나네요"

- 박미라 (김진석氏 어머니) -

"지금 제가 서있는 높이가 옛날에 제가 보던 높이잖아요.

다시 이 높이에서 보니깐 옛날 생각도 나고, 빨리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나요"

- 김진석氏 -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인생을 즐기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26살 김진석군을 만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