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대장정 제13구간] 소백산 - 지형지질 중부 내륙 육산의 맹주 거대한 육산의 비밀은 편마암의 수평절리 영향 | ||||
한반도의 등뼈와 같은 태백산맥의 줄기가 태백산에서 분기하여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산줄기인 소백산맥 첫머리에 힘차게 솟구쳐 올라 이 땅 한반도를 남북으로 크게 구분 짓는 산이 바로 소백산맥의 모산(母山) 소백산이다. 속리산~월악산의 암산에서 육산으로 모습 바꿔
경동성 요곡운동에 의해 서서히 솟아올라 산자락으로 지질을 달리하며 발달한 석회동굴 |
▲ 천동동굴. 소백산 북쪽 자락에 분포하는 석회동굴들은 소백산 일대 말단부의 편마암과 석회암이 접하는 곳에서 석회암이 지하수의 용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사진=최용근 동굴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단층선 방향을 따라 소백산 계곡과 죽령 들어서
북동 방향의 종주능선을 따라 비로봉, 국망봉, 연화봉의 삼봉에서 갈라진 여러 지맥들이 북으로는 북서 방향, 남으로는 남동 방향으로 뻗어 내리며 그 사이에 주봉인 비로봉에서 천동동굴로 이어지는 천동계곡, 국망봉에서 어의곡리로 이어지는 어의계곡, 제1연화봉에서 희방사로 이어지는 희방계곡, 비로봉에서 비로사로 이어지는 비로계곡, 국망봉에서 초암사로 이어지는 죽계구곡 등의 여러 계곡들을 앉혀 놓았다.
그런데 그 계곡들이 하나같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의 지각변동사에 있어 가장 격동이 심했던 중생대 쥐라기 대보조산운동과 신생대 제3기 한반도 지반이 융기하는 과정, 즉 소백산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과 구조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결과로 해석된다.
소백산이 융기한 이후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선과 구조선을 따라 오랜 세월에 걸쳐 하천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곡을 깊게 깎아냈기 때문에 지금의 깊은 계곡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찍이 소백산 언저리에 움을 트고 살았던 북쪽의 단양 사람들과 남쪽의 영주 사람들은 서로간에 큰 장벽과도 같았던 소백산의 가장 낮은 산마루에 고갯길을 뚫어 서로를 오갔다. 소백산 줄기 가운데 가장 낮은 구간을 이루는 도솔봉과 제2연화봉 사이의 가장 낮은 산마루를 통과하는 고갯길 죽령(竹嶺·689m)이 바로 그 길이다.
문경새재(조령), 추풍령과 함께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3대 관문의 하나였던 죽령 또한 소백산을 반으로 가르며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한 단층선을 따라 남북 양쪽 방향으로 침식이 크게 이루어진 결과로 낮은 저지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죽령은 이곳 양쪽의 저지대인 곡을 따라 나란하게 길을 낸 고개다.
신라시대 이래로 무려 1,9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충청도와 경상도 땅덩어리를 이어주던 고갯길 죽령, 그러나 선조들의 애환이 굽이굽이 배어있는 죽령은 이제 더 이상 옛날의 죽령이 아니다. 바로 2001년 소백산 밑으로 4.6km의 죽령터널을 뚫는 중앙고속도로(춘천~대구)가 완공 개통되면서부터 고개로서의 생명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지금은 과거 고갯길의 운치를 즐기려는 관광객들과 죽령에서부터 소백산을 타기 위한 일부 등산객들에 의해 간간히 고갯길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십승지의 제1지 풍기분지는 화강암의 차별침식 결과
소백산 정상 비로봉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움푹 파인 영주시의 풍기분지가 시원스럽게 한눈에 들어온다. 풍기(豊基)는 말뜻 그대로 ‘풍요로운 터전’이란 의미로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골 소백산맥 자락에 평지를 이루고 있어 능히 이곳이 ‘사람이 살 만한 땅’임을 말해준다.
소백산이 품어낸 풍기땅은 일찍이 토양이 비옥하고 물이 잘 빠져 황해도 개성, 충남 금산과 더불어 인삼의 대표적 산지로 이름이 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온 우리나라의 대표적 예언서인 정감록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땅은 ‘난세에 재앙을 피해 몸을 보전할 만한 명당’에 속하는 열 곳, 즉 십승지 가운데 제1지로 알려질 만큼 아늑하고 깊은 산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풍기땅이 이처럼 주목받는 것은 이 땅을 이루고 있는 지질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이는 소백산과 풍기땅의 지질대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소백산 자락에 둘러싸여 움푹 파인 분지를 이루고 있는 풍기땅은 중생대 쥐라기 약 1억6천만 년 전에 관입한 대보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반면, 풍기분지를 둘러싼 산지는 변성작용을 받은 약 20억 년 전의 소백산 복합 편마암체로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은 변성작용을 받은 편마암에 비해 침식과 풍화에 약한 특성이 있다. 따라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풍기분지 일대가 주변 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소백산지에 비해 보다 빠르게 깎여나감으로써 오늘날 깊게 파인 분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따라서 풍기분지의 형성은 화강암과 편마암의 차별침식에 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풍기분지 가운데 소백산 언저리에 위치한 금계리는 뒤로 보이는 북쪽의 소백산을 진산으로 하여 마치 금닭이 웅크리고 알을 품는 형상을 이룬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풍수적 길지를 이룬다고 한다. 원적봉~비로봉~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산세 한가운데로 금선정 계곡수가 흐르며 깊은 계곡을 파놓았다. 그 말단부에 금계저수지(금계호)가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서 보면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협곡이 과히 제1의 십승지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는 소백산지 말단부의 편마암과 풍기읍 화강암이 만나는 접촉부에서 침식에 약한 화강암이 보다 크게 깎여나감으로써 급경사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정상 비로봉과 이웃한 산사면에서 모여들어 흘러내리는 금선정계곡의 풍부한 물이 오랜 세월 곡을 깊이 깎아냈기 때문에 가운데가 움푹 파인 깊은 협곡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금계리의 깊은 협곡 안으로 이를 수 있는 길은 오직 계곡 물길 하나밖에 없는, 그야말로 요새와도 같은 곳으로 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갖게 하는 산세를 이룬다.
주능선을 경계로 남북간 뚜렷한 지역차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정상 비로봉에 올라서면, 이곳이 소백산 정상임을 알리는 ‘비로봉’이라 적힌 커다란 돌비석이 나타난다. 돌비석 뒤로는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 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라고 적힌 조선 초기 문신이자 학자였던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지은 시 한 수가 나타난다.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소백산이 이 지역 일대를 경계 짓는 장애물로서의 기능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국망봉에서 도솔봉까지 동서로 길게 이어진 약 60리의 소백산줄기는 자연적으로 북쪽의 중부 지방과 남쪽의 영남 지방의 경계를 이루게 되면서 두 지역 간에는 많은 차이가 나타났다.
주능선을 경계로 북으로 충청도쪽의 골짜기 물은 남한강으로 흘러들고, 남으로 경상도쪽의 골짜기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물길의 운명이 서로 갈렸다. 겨울철 1월 평균기온을 보면 북쪽의 단양이 -5.3℃(제천기상관측소, 2004년)인 반면, 남쪽의 영주는 -3.4℃(풍기기상관측소, 2004년)로서 남쪽의 영주가 더 기온이 높다.
소백산 일대는 대관령~선자령 일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겨울철 바람이 강한 곳으로 이름 난 곳이다. 차가운 삭풍이 불 경우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의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로 소백산맥이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푄(fo¨hn) 현상에 의해 남쪽의 영주 지방이 더 기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면 여름철(8월)의 경우는 양쪽 모두 22.5~23.0℃로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강수량의 경우는 여름철 8월 강수량은 양쪽 지역 모두 약 345mm로 비슷하다. 연평균강수량을 보면 단양이 1,876mm, 영주가 2,018mm로 양쪽 모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것으로 보아 산이 깊고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두 지역 간에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말의 어투에서부터 음식 문화, 생활 습관, 농업 경작 양식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우평 백령종합고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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