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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살아있는 백제사/이도학/'0509

살아있는 백제사
지은이이도학 지음
출판사휴머니스트

책 소개
7백년 백제사가 살아 숨쉰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하는 이들은 많아도 백제를 두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백제는 왜소한 나라,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 명맥을 이어가며 내세울 만한 거라곤 문화밖에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견해에 반해 저자 이도학은, 백제를 ‘대국’이라 단언한다. “중국사서 <수서>에 의하면, 동일한 시기를 기준으로 할 때 백제 인구는 76만호로 고구려의 인구69만 7천호보다 많았습니다. 그 강역 및 영향력 또한 대륙과 바다 동아시아 전체에 미쳤습니다.”
저자 이도학은 지난 25년간 백제사 연구에 매진하면서 80여 편의 백제사 관련 논문을 써왔고 한반도와 중국, 일본열도 등 백제 유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직접 찾아보고 기록해 왔다. 그리고 그 여정의 결실을 꿰어 <살아있는 백제사>로 내놓았다.
“백제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입니다. 이 중 한 무리는 1세기경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정착했고, 또 한 무리는 만주에 남아 모용 선비 등 대륙인들과 각축을 벌이다 4세기경에 남하했습니다. 한강 유역의 백제를 통합하여 강력한 정복국가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책은 ‘또 하나의 백제’와 ‘외적 요인에 의한 정복국가론’ 외에도 백제사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 백제의 천하관과 황제체제, 그리고 백제 왕실의 계보 및 부흥운동 등 백제사 전반에 걸쳐 기존의 통설을 과감하게 허물며 백제 연구와 백제사 읽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전체적으로 통사의 체계를 갖추면서도 분류사적 서술 방식을 도입하여 백제의 외교라인과 왕도의 변천 및 문화사와 인물사 등이 구체적이면서도 풍부하게 살아나고 있다.

백제를 읽으면 세계가 보인다.
백제는 경쟁력 있는 열린 국제사회였다. 동아시아 물산의 집결지였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나 왜인까지 조정의 요직에 기용했으며 중국 남조의 분묘인 전축분을 왕릉인 무녕왕릉으로 채용했다. 백제가 이렇듯 외부를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드넓은 평야와 드불어 바다를 끼고 있는 태생적 환경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백제의 공간적 범위가 동아시아 전체에 미쳤다고 설명한다.
“일본열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최남부인 광서 장족자치구에 가면 지금도 ‘백제’ 관련 지명이 무수히 남아 있습니다. 성왕대의 승려 겸익 같은 이는 해상 실크로드를 이용해 인도에까지 가서 불경을 구해 왔을 정로로, 백제의 뱃길은 멀리까지 열려 있었습니다. 백제는 거기다가 캄보디아인 부남국과도 교역했고 북인도 지역에서 산출되는 양모를 주성분으로 하는 카펫트인 탑등을 수입해서 왜에 선물했을 정도로 교역 반경이 광활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무녕왕릉 안에 부장되었던 무티사라 구슬은 태국제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낙타와 공작, 양 등을 직접 사육했을 정도로 백제는 없는 것이 없는 사회였습니다. 때문에 백제의 공간적 범위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백제와 백제문화, 나아가 백제인들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자는 백제사를 이해하는 3가지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공간적 범위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 문화의 성격이 국제화되었다는 점,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지니면서 고구려를 압도하는 국력을 지녔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읽으면 백제사가 훨씬 생생하게 이해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백제는 현재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open mind와 경쟁력, 그리고 국가적 기풍과 경영 전략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되는 동시에 일종의 모델 역할을 합니다. ‘백제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통사와 테마사, 그리고 문화사를 한권에 담았다.
이 책은 7부 구성이지만 3권의 책을 한권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1부와 2부로 연대기에 따른 통사편이다. 백제사의 기본성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국호의 기원’을 시작으로 건국의 주체가 고구려계가 아닌 부여 계통임을 밝힌다. 이어 4세기경 외적 요인에 의한 정복국가론 등을 펼쳐낸다. 6단계의 시기구분법에 의거하여 7백년 백제사를 연대기별로 서술하는데 특히 4세기 후반 이후 격동의 백제사를 고구려와의 대결 구도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의자왕대이다. 백제 말기의 정치 상황와 그 멸망의 원인은 물론이고 기존의 의자왕상에 대해 재검토를 하였다. 둘째는 3부와 4부로 백제사를 주요한 테마로 보는 분류사적 서술편이다. 백제의 국가적 위상과 관련, 칠지도의 명문 해석과 도검의 성격분석을 통해 백제의 천하관을 읽는다. 백제의 외교라인과 교역권은 통념을 훨씬 넘어선다. 백제 도성 중에서는 한성도읍기의 도성제에 대해 가장 비중있게 서술하고 있다. 아울러 백제사 전 기간에 걸친 관등 관직 체계와 지방통치체제의 변천과정을 살핀다. 셋째는 백제 문화사편이다. 문헌과 금석문을 통해 명장 계백과 흑치상치, 그리고 잊혀진 인물 사타충의 등 3인과 백제인들의 삶의 궤적을 찾아보았다. 아울러 종교와 풍습을 비롯한 문화사 전반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일본 열도에 남아있는 백제문화의 자취를 도도학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역동적으로 담고 있다.

또 하나의 백제가 있었다 - 특징1
백제는 4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급속도로 팽창하는데, 저자는 이것이 내적인 요인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한 정복국가론을 이 책에서 제기한다. 사료 비판을 거친 중국의 사서에 4세기 중엽 이전에 백제가 만주 방면에 소재하였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자치통감, 진서, 송서 등 중국 사서에 보이는 만주 백제의 존재를 일제 시대 이래 역사학계에서는 고구려 혹은 부여의 잘못된 표기라고 간주해왔다. 백제가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 존재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할 때 만주 백제 존재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문헌과 고고학의 발굴 성과를 근거로 할 때 ‘두 개의 백제가 동시에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존재하다가 통합되었다’는 설명은 서로 모순없이 잘 연결된다. 5세기 중반 백제 조정에 등장하는 유목국가의 직제인 좌, 우왕제라든지 돌궐에서 천자를 가리키는 쾨키시와 연결되는 백제의 ‘어라하’나 ‘건길지’라는 왕호(王號) 등이 편린이고 특히 고고학계에서는 서울지역에 만주지역 묘제로서 전형적인 적석총이 등장하는 시기를 4세기말로 간주하는 것이 유력한 점을 결부시키면서 저자는 만주지역의 백제가 이동해 왔다고 본다. 정리해 보면, 백제는 만주지역에서 기원했고, 온조집단이 1세기경 한강유역으로 1차 이동하였고, 4세기경 2차 이동을 하여 온조집단을 통합해서 강력한 정복국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백제사의 시기구분 - 특징2
종전에는 일반적으로 도읍지의 변천에 따라 백제가 지금의 서울 지역인 한성에 도읍하던 한성시대(기원전 18년-475년)와 지금의 공주 지역에 도읍하던 웅진시대(475년-538년), 그리고 지금의 부여에 도읍하던 사비시대(538년-660년)로 구분하였다. 배제 역사의 시간적 범위도 기원전 18년에서 660년까지로 인식해 왔다. 저자는 7백년의 장구한 백제사를 6단계의 시기구분법으로 나누어 서술한다. 복잡다단하고 거대한 백제사를 단선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근거이다. 이 책에서는 읍락단계-국읍단계-국읍연맹단계- 부체제 단계-집권국가 단계-조국회복전쟁단계로 세분화하여 백제사를 기술하고 있다. 특히 백제사의 하한을 웅진도독부가 폐지되는 672년까지로 새롭게 설정하였다. 종전에는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이나 백제부흥운동이 종식되는 663년으로 간주했지만, 비록 당나라의 괴뢰정권이기는 하지만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을 수반으로 하는 웅진도독부가 통치하는 시기의 역사를 백제사 속에 새롭게 포함시켰다.

백제의 천하관을 읽는다 - 특징3
황제국은 주변국과 외신 관계를 설정한다. 자국 영역내의 주민들은 내신을, 주변의 조공국은 외신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이 때 황제국은 조공국의 수장에게는 자국의 관작을 부여한다. 이 책에서는 백제가 황제국가였음을 구체적으로 그 시스템을 찾아내 새롭게 구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백제 통치권 밖의 세력이었던 탐라가 백제에 대한 조공 의무를 이행하고 있으며, 탐라국의 사자에게 자국의 관등을 제수하는 것으로 봐서 외신 관계로 파악된다. 주목되는 것은 중국대륙에 대한 태수 분봉이다. 중국지역에 대해 그 실제 지배 여부와는 별개로 백제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제 왕조의 구가적 위상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았다. 쟁점이 된고 있는 칠지도의 명문 해석과 성격 분석을 통해 백제의 천하관을 읽어 내렸다. 백제 왕자(王者)는 광대무변한 세상의 중심에 군림하고 있다는 우주관을 지녔기에 국왕의 죽음을 붕(崩)이라 하였고, 백제 남부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을 남만(南蠻)으로 일컫는 등 사방 오랑캐관을 태동시켰다. 나아가 중국대륙에 대한 태수 분봉과 주변국들에 대한 조공체제의 구축은 비록 의제적이지만 이러한 천하관의 산물임을 밝혔다.” (본문 21쪽)

통설을 허물며 7백년 백제사를 복원한다. - 그 밖의 쟁점들
-백제의 시조관 : 고구려 계통론이 지배적이었다. 고구려 건국시조를 동명성왕으로 표기하는 데서 연유한다. 고구려의 시조는 주몽왕이고, 동명왕은 부여의 시조로서 양자가 별개라는 토대 위에, 문헌 사료와 고고학적 물증을 근거로 백제를 건국한 왕실의 계통이 부여임을 입증하였다.

-백제사의 공간적 범위 : 종전에는 한반도 서남부 지역과 열본열도로 국한시켜 보았지만, 중국 남부의 고아서장족자치구를 비롯해서 인도차이나반도까지로 확대시켰다. 백제가 캄보디아와 교역한 검을 비롯한 일련의 <일본서기> 기록과 승려 겸익의 뱃길을 이용한 인도로의 구법기행, 흑치상지 가문의 기원이 되는 흑치가 지금의 필리핀이라는 대만 학자의 견해 등을 수용하여 백제의 거대한 교역 체계를 구성하였다.

-백제 왕실 계보 : 한성 말기부터 웅진성 도읍기의 백제 왕실 계보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왕실 계보를 새롭게 복원하였다. 특히 무녕왕의 계보가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 아니라 배다른 형으로서 곤지의 아들임을 규명하여, 한성 말기부터 웅진성 도읍 초기의 긴박한 정치 양상을 제대로 밝히는 단서를 마련하였다.

-사비성 천도의 배경 : 사비성 천도를 준비한 시점으 동성왕대로 간주하면서, 사씨 세력의 근거지인 부여로 천도한 것으로 간주했던 기존의 통설을 비판하고, 천도 준비 시점은 무녕왕대 후반기이며, 사씨 세력은 부여가 아니라 유성 쪽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신도시 개발의 형태로 사비성 천도가 준비되었음을 밝혔다.

-익산 천도 : 무왕대 익산 천도설에 대해서는 준비에만 그쳤다는 설이 일반적이었다. <삼국사기> <관세음응험기>등의 문헌과 유적의 발굴을 통해 드러난 고고학적 성과를 기반으로 그러나 무왕대에 실제 천도가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백제부흥운동 : 중흥의 개념으로 사용했던 ‘부흥’이라는 용어보다는 백제 멸망 후의 ‘조국회복전쟁’으로 고쳐 부를 것을 제안했고, 이른바 부흥운동의 영웅이었던 복신의 계보에 관해서도 종전에 알려졌던 무왕의 조카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통설이었던 백강 금강설과 주류성 서천설을 비판하는 등 종전의 백제 부흥운동 전반에 관해 재검토를 하였다.

지은이 소개
이도학


이도학
1957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한양대학교에서 <백제집권국가형성과정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와 한양대학교 사학과 강사와 경기도 문화재감정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충남 부여에 소재한 국립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백제인들의 삶의 자취를 찾는 연구는 우리의 역사무대와 역사인식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는 문제의식으로 줄곧 백제사 연구에 매진해 왔다. 논문으로 <백제 칠지도 명문의 재해석>과 를 비롯하여 <한국사에서의 천하관과 황제체제> 등 80편, 저서로는 >, <<고대문화산책>>, > 등 모두 9권에 이른다.

목차

본서의 서술 시각을 통해 본 백제사 연구의 전망

1부 백제는 어떤한 나라인가

1. 국호의 기원과 왕성(王城) 이름
국호의 기원
왕성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

2. 백제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건국되었는가
왕실의 계통
건국 주체 문제

3. 왕실 교체 문제와 정복국가의 출현
왕실 계보에 대한 의문
아시아의 역사로 등장한 백제
백제의 기원과 그 만주지역 소재 문제
정복국가론에 대한 의문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나

4. 자연 환경과 문화적 특성 - 백제와 바다

2부 백제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

1. 백제의 성장과 발전 단계, 읍락 단계와 국읍 단계

2. 국읍연맹 단계
소금 산지의 확보와 공급을 통한 강성
국읍연맹의 형성
지역 맹주권을 확립한 고이왕의 등장

3. 부체제 단계

4. 집권국가 단계 1 - 한성 후기의 개막
근초고왕대의 백제
백제의 영광, 북으로의 영토 확장
백제 왕권의 동요

5. 집권국가 단계 2 - 웅진성 도읍기
정란(政亂)의 문주왕과 삼근왕 시대
역사의 악역을 맡은 동성왕
중흥의 시대를 연 무녕왕

6. 집권국가 단계 3 - 사비성 도읍기
한 시대의 영웅 - 성왕
시련의 극복 - 위덕왕·혜왕·법왕대
웅위한 무왕
의자왕, 그 장대한 이상의 전개와 좌절, 그리고 몰락

7. 조국 회복전쟁기
나라를 찾기 위하여
내분과 1차 조국 회복전쟁의 종언
새로운 조국 회복전쟁의 전개 - 웅진도독부의 설치

3부 백제는 어떤한 위치에 있었나

1. 칠지도가 말하는 백제의 천하관
칠지도가 지닌 의의
연대 문제
후왕 문제
칠지도의 명문 해석
칠지도의 성격과 용도
백제의 천하관
또 하나의 칠지도

2. 백제와 고구려는 왜 싸웠는가
전쟁의 시작
대립의 배경
부여 계승의지의 발현

3. '광개토왕릉비문'에 보이는 전쟁 기사 속의 '백제'
'광개토왕릉비문'의 성격
'능비문'의 전쟁 관련 기사

4. 백제의 외교, 교역로의 추적
마한·말갈, 낙랑·대방군과의 관계
중국대륙과의 관계
왜와의 관계, 그 선상에서 동남아시아와의 관계
고구려와의 관계
신라와의 관계
다른 나라에 비친 백제
백제 외교가 남긴 선물 - '양직공도(梁職貢圖)'

4부 백제의 세력권은 어떠하였나

1. 백제의 영토는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한반도 내의 백제와 마한
백제의 해외 경영

2. 백제의 교역망은 어디까지였는가

3. 왕성의 조성 1 - 한성 도읍기
도성(都城)의 성격과 선정
문헌의 왕성 관련 기사의 검토
위례성과 한성, 그리고 북한산성
도성체제의 확립
사묘의 존재
사냥터
도성제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
도성제에 관한 정리

4. 왕성의 조성 2 - 웅진성 도읍기
왕궁의 위치
사찰 유적
도성의 범위와 구조 - 왕릉군과 빈전 유적

5. 왕성의 조성 3 - 사비성 도읍기
사비성 천도의 재조명
사비성 천도의 배경 - 왕도 웅진성의 한계
사비성 천도는 언제부터 준비되었는가 - 동성왕대 사비성 천도 준비설의 검토
사비성 천도의 계획과 준비 시점에 관한 검토
사비성 천도와 국가적 이상의 구현 - 천도의 협조 세력 문제
사비성 천도 배경의 정리
왕궁과 나성의 축조
이궁지와 연못
사찰
3산
사묘
다리

6. 관등·관직체계와 지방 통치체제의 변천
관등
중앙관직
중앙관서
군사 조직
지방 통치체제

5부 기록과 백제인들

1. 백제의 역사 편찬
<삼국사기> 백제본기 초기 기사의 성격
백제의 역사책들

2. <한산기>의 세계 - 허구를 통하여 되살아난 개로왕

3. 백제 금석문의 세계
매지권 - '무녕왕릉매지권'
비문의 세계 - '사택지적비문'
목간의 세계 - 궁남지 출토 목간 명문
불상 광배명 - 금동불상 광배명
무녕왕릉 부장 금석문
'창왕사리감명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묘지명

4. 회상의 백제인들 - 백제 말기 세 명의 장군, 그 비장한 삶의 궤적을 찾아
장수의 표상 - 계백
임존성에서 북망산까지 - 곡절 많은 한 무장, 흑치상지의 생애에 대한 변명
잊혀진 백제인 - 사타충의의 삶

6부 백제인들은 어떻게 생활했고, 어떠한 문화를 남겼나

1. 백제인들의 정서를 찾아
법속과 기풍
의식주
장례와 분묘의 조명
소일거리
언어, 그리고 음악과 악기
무기
신앙과 사상

2. 백제 문화의 일본열도 전파
일본 속의 백제 문화가 지닌 의미
백제와 왜와의 교섭사 - 인간과 문물의 전래
왜에 끼친 백제 문화
고대 일본 왕실과 백제의 관계

7부 백제사의 남겨진 의문들

1. 알 수 없는 백제의 부활

2. 무녕왕과 무녕왕릉의 수수께끼
무녕왕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의문의 시작

백제사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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