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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구멍 숭숭 뚫린 열무, 김치 맛은 예술이네!
벌레가 잔치를 벌인 열무로 맛난 김치를 담가먹다
전갑남(jun5417) 기자
▲ 텃밭에서 손수 가꾼 굴타리먹은 열무로 맛난 김치를 담그다.
ⓒ 전갑남
한 차례 비가 흠뻑 내렸다. 꽤 많은 비다. 모를 낸 논이나 밭작물 해갈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땅이 축축하고, 날이 무더워지자 잡초들도 제 세상을 만난 듯 자라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오후 늦은 시간. 한낮의 뜨거운 햇빛이 많이 약해졌다. 아내와 나는 텃밭으로 나왔다. 고추밭 고랑에 난 풀을 잡을 참이다. 지금 어린 싹을 긁어놔야 장마철에 떨칠 기세를 어느 정도 꺾을 수 있다.

곁두리로 먹는 막걸리에 열무김치 안주

한참을 쪼그려 일을 하다 보니 다리가 팍팍하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간절하다. 상추를 솎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목이 타네! 막걸리나 한 통 사오지?"
"막걸리요? 안주는 뭐로 할까?"
"막걸리 먹는데, 대충 가져와."
"열무 맛이 들었을 건데, 그걸로 가져올까?"

막걸리에 열무 안주도 괜찮을 것 같다. 일하다 마시는 딱 한 잔의 막걸리! 타는 목을 적셔주는 데 그만이다.

▲ 일하다 곁두리로 먹는 막걸리... 열무김치가 안주로 그만이었다.
ⓒ 전갑남
아내가 곁두리를 내왔다. 평상에 걸터앉아 먹는 막걸리 맛이 꿀맛이다. 어떤 음료가 이보다 시원할까? 농사일과 막걸리는 잘 어울린다. 갈증을 해소하기도 하고, 곡주라서 허기도 채워준다. 그래서 막걸리를 농주라 했나 보다.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키는 나를 아내가 빤히 쳐다본다. "그렇게 맛있어?" 아내도 입맛을 다신다.

"열무 맛은 어때? 아삭아삭한 맛이 예술이지?"

막걸리도 막걸리지만 열무 안주가 감칠맛을 더한다. 아내도 막걸리를 조금 따라 마신다. 맛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열무김치가 적당히 숙성된 맛이다. 빨갛게 국물이 배어나온 색깔도 입맛을 돋운다. 지금 먹으니 딱 좋다.

며칠 전, 우리는 텃밭에 가꾼 열무로 김치를 담갔다. 굴타리먹어 볼품없는 열무였다. 벌레들이 큰 잔치를 벌였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상품 가치라고는 없었다. 여느 때 같으면 남들과 나눠먹었겠지만 남 주기는 좀 그랬다. 벌레 먹은 채소는 주고도 욕먹는 경우가 많다. 어찌되었건 죄다 뽑아 김치를 담갔다.

소중히 알면... 무공해라서 좋다!

▲ 벌레가 잔치를 벌인 열무밭, 그래도 여들여들한 열무가 아주 소중했다.
ⓒ 전갑남
4월 중순, 나는 열무씨를 사러 농약가게에 갔다. 농약가게 주인은 어쭙잖은 내 농사 실력에 이런저런 코치를 한다.

"선생님, 지금 열무씨를 뿌리면 벌레가 많이 끼어요. 땅이 축축하고 무더워지면 뿌리세요. 그때는 잘하면 농약 안 치고 먹을 수 있죠. 지금 뿌리려면 땅 소독을 하고, 두어 차례 살충제를 뿌려야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도나캐나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씨를 뿌렸다. 땅 소독을 하라는 아저씨의 당부를 건성으로 흘렸다. '농약 치고 가꿔 먹으려면 사먹고 말지!'라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마침 가는 비가 온 뒤라 씨를 넣고 차광막으로 덮었다. 닷새 정도 지나 예쁘게 싹이 텄다. 싹이 튼 뒤로 물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열무 밭을 들여다보고 정말 속이 상했다. 벌레들이 막 나오기 시작하는 어린 속잎을 파먹기 시작하였다. 벼룩처럼 톡톡 튀는 배추잎벌레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땅 소독부터 하라고 했었나?

참 이상하였다. 같은 시기에 뿌린 상추며 치커리는 멀쩡하였다. 녀석들도 좋아하는 작물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상추는 좀 쓴맛이 있어서 그럴까? 정말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다. 죄다 구멍을 숭숭 뚫어놓았다.

점점 커가는데도 열무잎은 계속 구멍이 뚫렸다. 그래도 녀석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싶었다. 통째로 다 먹지는 않겠지…. 가끔 열무밭에 물을 주다 아내도 무척 속이 상한 모양이었다.

▲ 구멍이 숭숭 뚫린 열무. 배추잎벌레 피해가 컸다.
ⓒ 전갑남
"여보, 열무가 틀렸지?"
"녀석들이 잔치를 하네! 살충제를 칠까?"
"그냥 내버려 둬 봐요."
"일일이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그래도 물을 적당히 주고, 솎아주기를 하였다. 하지만 때깔이 영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죄다 뽑아버리고 다시 씨를 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데 몇 차례 비를 맞고, 자라는 속도에 탄력이 붙다보니 색깔이 많이 푸르러졌다. 비록 구멍이 뚫렸지만 연하디 연하게 자랐다. 아내 눈에는 소중한 김칫거리로 다가선 것이다.

"다듬으려면 시간이 걸리고 힘들겠지만 아주 훌륭해요! 물김치랑 담가보자구요."

사실,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열무는 아무래도 살충제를 살포하지 않았을까? 무조건 때깔 좋은 것만 찾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굴타리먹은 열무, 맛있는 김치로 탈바꿈

▲ 다듬어 씻어놓고 보니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 전갑남
아내와 나는 열무를 죄다 뽑았다. 뽑아 놓은 양이 엄청났다. 큰 광주리로 하나 가득했다. 김치 담그는 일은 힘이 든다. 뽑고, 다듬고, 씻고, 절이는 일이 만만찮다. 그래서 김치 담글 때 우리는 늘 함께 일을 한다.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적당히 절여지고 나면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한 통은 물김치, 한 통은 겉절이!"

아내는 신이 났다. 절인 것을 씻어놓고 보니 비로소 상품가치가 있어 보였다. 이런 게 바로 무공해 반찬이 아닌가 싶었다.

먼저 삼삼하게 물김치를 담갔다. 물김치는 서울 처형이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서울에 보냈다.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어 갖은 양념으로 열무김치를 담갔다. 자취하는 서울 애들도 갖다 주니 너무 좋아했다.

▲ 맛있는 열무김치가 완성되었다.
ⓒ 전갑남
굴타리먹은 김칫거리가 소중한 김치로 탈바꿈을 할 줄이야! 아내는 김치를 넉넉히 담가놓아 한동안 김치 걱정을 안 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아내가 막걸리 한 잔을 더 권한다. 안주로 먹는 열무김치 맛이 참 좋다. 두 잔의 막걸리로 기분이 얼얼하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고추밭 고랑을 마저 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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