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이야기22- 새해첫날 참성단에서
나의이야기22- 새해첫날 참성단에서
<새해 첫날 참성단에 오르다>
기상예보가 새해 첫날 아침은 영하 10도로 춥기도 하고 서해쪽은 눈이 올 것이라며 잔뜩 겁을 준다.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을 함께 가기로 했던 사람이 기상예보를 핑게댄다. 새해 첫날은 가족과 함께 지낼 일이지 저 혼자 산에 간다고 못마땅해 했던 모양이다.나 또한 걱정하는 집사람에게 같이 갈 사람이 있다고 안심을 시키고풀려 날 수 있었으니까.
'나는 혼자서라도 꼭 가야한다.' 많은눈이 내려 산에오를수가 없으면 입구에라도다녀 와야 한다. 새해 첫날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 단군 할배님께 인사 올리는 연례행사가 30년 가까운세월이다. 아니 인사 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제삿상에 오르는 제물이 되어야 하니 한해도 거를 수가없는 것이다. 참성단 젯상에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고 단군 할배님께 문안 올리는 것으로 한해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혼자 그리 생각하고 있다. 살아서 젯상에 오를수는 없으니 마음속으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제단 앞에 발을 멈추어 서서 큰 절을 하고 내려 오곤한다.혼자라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이유이다.
아침 8시분당에서 전철을 탄다. 선릉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신촌역에서 내려 10시반마리산행 버스를탄다. 초진대교를 건너 12시에 마리산 입구에 내린다.918계단을가파르게 오른다.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들이 환하지가 않다. 금년 화두는 무엇으로 할까? 안녕하세요,복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부자 되세요, 행복하세요, 만족스럽지가 않다.몇몇사람에게 인사하다가 심드렁 해서 멈춘다. 반갑지가 않은 모양이다. 구호보다는조용한 대화가 낫겠다 싶어참성단 바로 입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땀 흘리며 오셨군요!"했더니 환하게 웃는다. 아무래도 올해 화두는 달라져야겠다. 구호는 식상했으니 대화로 바꾸어 보자. 경제 한파를 예고하는 언론이 사람들을 이토록 위축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으기 불안하다. 먹고 자고 똥싸는 일- 경제가 인생의 전부는 아닐터인데도 온통 '경제살리기' 구호만을 외치고 있는 것은 정말 식상한 일이다.부자되세요라는 구호가 먹혔던 시대는 가야하는것 아닌가. '복 받으세요'는 수동적이라 싫다.'행복을 찾으세요. 그러면 행복이 찾아 올 거예요.'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오늘의 한파 기상예보가다른해 보다 새벽손님을 줄여 불안했지만, 낮에 기온이 오르면서 오후에 찾은손님들 덕분에 작년 이맘때 보다 2천명이나 더많은 1만명 가까이 오셨다며관계 직원들이 즐거워한다.소위 말하는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분위기도 이러하리라 짐작해 본다.
내가 참성단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부터다. 15년 공직생활이너무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할 무렵시립병원을 지방공사로 바꾸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용기를 내어 사표를 내고 지방공사 병원행을 자원했다. 병원 경영이라는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어서였다. 당시만 해도 공사라는게 별로여서 경쟁없이 보직을 받고 개원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날이 개원식인데 느닷없이 시청 인사과에 불려가 원대복귀하라는 명령 받았다.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내가 받은 보직 자리라야 한다며 먼저 있었던 제 자리로 원대복귀 하란다. 창피했다, 힘과 인맥에 밀린다는 데 화가 났다. 나를 지켜줄 사람들이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 온통 조롱하는 눈초리다. 손가락질하며 골리는 모습이다. 위로하는 말이 오히려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로 들린다. 제 힘으로 넉넉히 서야할40대에 맥없이 픽 쓰러져다시 일어설 생각도 없다. 쥐구멍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왔다. 사람 만나는게 두려웠다. 얼굴 마주하고 밥을 먹는건 형벌이었다. 사는 것에 대한 혐오감으로낙마하고 싶었다. "왜 사는 거지? 개뿔도 없으면서 밥은 왜 먹지?"자살 충동이 일었다.
느닷없이 강화행 버스를 탔다. 처음으로 마리산을 오르고 참성단을 찾았다. 평일이어서 사람들이없었다.사각 제단이 텅 비어 있었다. 가로막대를 뛰어넘어 제단에 올라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리고 벌러덩제단에 들어 누었다. 그래 나는 돼지대가리처럼 제단위의 제물이된거다하며 단군 할배께 소리쳤다. " 단군 할배님, 나 이렇게 살아야 되어요!"응답이 없이 조용했다.파란 하늘이 찢어질 듯이 팽팽했다.흰구름이 두둥실 바람에 떠가는 여유로움에 화사하게 웃었다.저 흰구름 한자락 덮고 한숨자고 싶었다. 잔잔한 흰구름을 솜사탕 처럼 뜯어 먹으며 깊은 잠에 떨어졌다. 지금껏 가슴 가득 억눌렸던 답답하고 억울했던 거친 감정이 스르르 녹아 흘렀다. 몸도 가쁜해 졌다. 일어서서 사각 제단에서 동서남북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단군 할배님, 이제 살아난 것 같습니다." 펄쩍 뛰어 오르면 하늘에 닿을 것같았다. 다음 날부터 다시 제자리에 앉아 떳떳하게 일할 수 있었다. 그전보다 더 열심히 땀나게 일했다. 한결 부드러워지기도 했다.
28년째가 되었다. 마리산 참성단으로 향하는 발길이 남다른 이유다. 나에게는 그곳 참성단에서 한해를 시작한다는것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미래촌 동장 김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