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허련전

동봉 2009. 1. 2. 22:15

남종화의 2백년 화업, 소치 허련전

예술의 전당에서 2월1일까지

[ 2009-01-02 14:32:26 ]

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일속산방도>는 허련이 황상에게 그려 준 것으로, 초의선사가 교정을 보았다. 일속산방은 정약용의 유배지 가운데 하나로서 강진군 대구면 천개산 백적동에 있었으며, 황상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남종문인화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소치 허련의 관념산수가 아닌 실경산수로 그 의미가 큰 작품이다. 황상(黃裳, 1788~1863)은 정약용이 강진에서 얻은 첫 번째 제자로서 특히 시학에 대성하여 황상의 시는 김정희로부터 “지금 세상에 이런 작품이 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江樹青紅江草黄
好山不斷楚天長
雲中樓觀無人住
只有秋聲送夕陽
小癡

강가의 나무는 알록달록하고 강가의 풀은 누렇고,
산들은 끊이지 않고 고향 하늘은 멀기만 하다.
구름 속 누대에는 머무는 사람이 없고,
다만 가을 소리만이 석양에 전해온다.
소치







<산수도>는 화첩이나 병풍 형식의 반절지 그림이 많은 허련의 그림으로는 보기 드문 대작이다. 좋은 장지 전지에 잘 짜여진 구도, 자연스러운 채색, 활달한 붓선이 만들어낸 수작이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 하에서 많은 고미술을 수집하였던 대수장가 박창훈이 소장하였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경, 중경, 근경이 다 갖추어지면서도 사생 대상 경관 각각에 세밀한 묘사가 활달하면서도 안정감 있게 구성된 작품이다. 근경의 절벽과 정자, 나무 묘사는 허련 그림으로는 드물게 생동적이며 활달한 면모를 보여준다.

가파른 절벽에 위로 춤추듯 역동적으로 표현된 수지법, 높은 화려한 정자는 중경의 나지막한 둔덕, 낮은 소박한 집, 하늘하늘 내려앉는 버드나무의 표현과 대조를 이루며 화면의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낸다. 무르익은 먹의 선염, 엷은 색채의 자연스러운 표현은 그림의 격조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忽喚梅花添妙諦 滿身明月拄紅藤
此香蘇句也 寫爲海溟大師慧正 小癡居士

문득 매화를 불러 묘체를 덧붙여 놓으니,
온 몸에 밝은 달을 품고 붉은 넝쿨을 떠바치고 있네.

이는 향소선관 오숭량의 시구이다.
해명대사를 위해 그리다. 소치거사

허련의 그림은 대개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1856년에 낙향하여 운림산방에 정착(49세)한 후 특유의 호방한 필치로 된 작품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일생에서 후반기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의 매화 그림은 화첩이나 병풍에 매화 가지의 일부분을 그리거나 노매(老梅)한 그루를 여러 폭에 그리는 일지병풍(一枝屛風) 또는 전수식병풍(全樹式屛風)으로 대별된다.

이 작품은 특유의 호방한 필치가 드러난다. 둥치가 크고 줄기가 부러진 노매에 매화가 성글게 피어있는데 줄기의 표현은 거칠고 강렬한 필치로 되어 있지만 꽃잎은 단엽(單葉)과 복엽(複葉)을 함께 사용한 경쾌한 묘사로 대비를 이룬다.


昔年我是洛陽客
看盡繁華寫牧丹
泓碧波 慧賞
小癡居士

내 일찍이 낙양에 객으로 있으며,
번화를 실컷 본 눈으로 모란을 그린다오.
홍벽파께
소치거사










허련은 노년에 생계를 위하여 묵모란을 많이 그렸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많은 묵모란도는 다분히 형식화된 구성과 소재, 필치를 구사한 경우가 많아서 다양한 화법을 구사한 산수도들과 비교가 된다.

이 작품은 진도 출신의 벽파선사(19세기 활동)에게 그려준 것으로 문인 취향을 겸비한 허련 특유의 모란도를 보여 준다.

괴석을 중심으로 한 두 포기의 모란을 배치한 단순한 구성을 취하였으나, 아담하면서도 풍성한 모란의 모습과 능란하고 생기 넘치는 운필, 끝이 살짝 갈라진 독필을 신속하게 끌어가며 그려낸 탈속한 운치의 괴석, 윤택한 먹색으로 변화감이 넘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모란도는 아들인 미산 허형에 의하여 가법으로 전수되어 허씨 집안 특유의 화풍으로 자리잡았다.


예술의전당은 국립광주박물관과 진도군 공동으로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8-1893) 선생 탄생 200주년 전시로 “소치 이백년 운림 이만리 ”를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올해 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남종화의 거장인 소치의 관념과 실경 산수화는 물론 사군자, 화훼, 서예 등의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것은 지금까지 추사파의 일원으로 뭉뚱그려짐으로 인해 실제보다 평가 절하되어온 소치선생의 예술세계를 호남을 넘어 한국미술이라는 지평에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2-1938),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8-1987), 임인(林人) 허림(許林, 1917-1942), 임전(林田) 허문(許文, 1941-현재), 허진(許鎭, 1962-현재) 등 현재진행형 운림산방(雲林山房) 200년 화맥의 대표작도 한자리에 모았다.

이를 통해 서구미술의 득세와 일본화풍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전통서화가 크게 위축되고 혼란해진 근현대 한국미술에 있어 남종화의 한국적 수용과 전개양상은 물론 예향호남을 넘어 한국화단에서 차지하는 소치 운림산방 화맥의 역사적 성격과 미래전망까지도 가늠 할 수 있도록 했다.

진도 허씨 일문과 소치운림 산방 화맥

진도 허문(許門)의 원류는 허대(許岱, 1568-1662)이다. 허대는 선조의 첫 서자인 임해군(1574-1609)의 처조카로, 1608년 광해군이 임해군을 진도로 유배시켰을 때 이곳을 방문했다가 눌러 살게 되었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49세 되던 해인 1856년,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세상을 뜨자 진도에 낙향하여 화업에 전념코자 세운 곳이다. 소치 이후 허형, 허백련, 허건, 허림, 허문, 허진 등으로 그 화업이 이어짐과 동시에 광주와 목포로 그 세력이 확산되면서 예향호남의 ‘성지’이자 남종화의 한국적 수용ㆍ전개의 총본산이라 하겠다.

관 람 료 : 5,000원(일반) 3,000원(학생)
문 의 처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02-580-1284 (www.s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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