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화려한 십장생병풍
동봉
2009. 1. 30. 22:21
순조의 천연두 완치 기념 화려한 십장생병풍”
ㆍ박본수씨 ‘美오리건대 소장품’ 논문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조가 태자 시절 천연두에 걸렸다가 완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십장생병풍(十長生屛風)이 확인됐다.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사는 30일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지 ‘고궁문화’ 2집에 투고한 논문에서 “이 십장생병풍이 1879년 천연두에 걸린 왕세자 이척(李척·훗날 순종)의 완쾌를 기념해 제작된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王世子痘候平復陳賀계屛)’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박씨의 ‘오리건대 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 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십장생병풍도는 모두 10첩(각 첩 세로 201.5㎝, 가로 52.1㎝)이며 펼쳐놓으면 전체 너비가 520.7㎝이다. 이 가운데 8첩엔 화려한 청록산수가 그려져 있고, 나머지 2첩에는 관직과 이름이 기록된 좌목(座目)이 있다. 병풍도는 1924년 당시 경성부 태평동(태평로)에 있었던 무역상인 테일러 상회를 통해 미국에 팔려 현재 오리건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박씨는 “좌목에 기록된 사람들은 훗날 순종 황제(재위 1907~10년)가 되는 세자 이척이 6살 때인 고종 16년(1879년)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위해 임시로 구성한 의약청의 멤버”라고 말했다. 1874년 2월, 고종과 왕비 민씨(명성황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순종은 1879년 12월12일 천연두에 걸렸다가 집중치료를 받은 뒤인 12월21일 완치됐다. 박씨는 “조선시대 궁중장식화는 작품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었다”면서 “이번 십장생병풍도는 제작시기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조가 태자 시절 천연두에 걸렸다가 완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십장생병풍(十長生屛風)이 확인됐다.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사는 30일 국립고궁박물관이 발간한 학술지 ‘고궁문화’ 2집에 투고한 논문에서 “이 십장생병풍이 1879년 천연두에 걸린 왕세자 이척(李척·훗날 순종)의 완쾌를 기념해 제작된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王世子痘候平復陳賀계屛)’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박씨의 ‘오리건대 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 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십장생병풍도는 모두 10첩(각 첩 세로 201.5㎝, 가로 52.1㎝)이며 펼쳐놓으면 전체 너비가 520.7㎝이다. 이 가운데 8첩엔 화려한 청록산수가 그려져 있고, 나머지 2첩에는 관직과 이름이 기록된 좌목(座目)이 있다. 병풍도는 1924년 당시 경성부 태평동(태평로)에 있었던 무역상인 테일러 상회를 통해 미국에 팔려 현재 오리건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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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리건대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십장생병풍도.
박씨는 “좌목에 기록된 사람들은 훗날 순종 황제(재위 1907~10년)가 되는 세자 이척이 6살 때인 고종 16년(1879년)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위해 임시로 구성한 의약청의 멤버”라고 말했다. 1874년 2월, 고종과 왕비 민씨(명성황후)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순종은 1879년 12월12일 천연두에 걸렸다가 집중치료를 받은 뒤인 12월21일 완치됐다. 박씨는 “조선시대 궁중장식화는 작품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었다”면서 “이번 십장생병풍도는 제작시기와 목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