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해남서 신라 등 4개국 유물 무더기 출토

동봉 2009. 2. 22. 16:03

해남서 신라 등 4개국 유물 무더기 출토


전남 해남군 '해남 만의총 1호분'에서 나온 석곽. 이 무덤은 내부 목관과 외부 석곽으로 구성돼 있다. 동신대문화박물관 제공. 연합


토우장식 서수형토기 첫 발견



백제 땅이었던 해남지역에서 5-6세기 때 만들어진 신라, 가야, 일본, 백제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신라, 가야 등 4개국의 유물이 한 장소에서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신대문화박물관은 지난 2008년 12월 말부터 최근까지 전남 해남군 옥천면에 있는 '해남 만의총 1호분'을 발굴조사한 결과, 고분안에 있는 목관과 석곽묘에서 신라양식인 토우(.흙으로 만든 인물.동물상)가 장식된 서수형토기(.술병역할) 1점과 신라의 영향을 받은 가야의 유개대부발(안주를 담는 토기) 1점, 일본계의 조개팔찌 1점 등 모두 1천1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22일 밝혔다.


1.전남 해남군 \'해남 만의총 1호분\'에서 최근 출토된 금장식 청동곡옥. 이 곡옥은 백제의 금장식 곡옥(무령왕릉)과 동일한 금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곡옥이란 초승달모양의 장식용 구슬을 말한다. 동신대문화박물관 제공. 연합
2.가야 토기 유개대부발 (서울=연합뉴스) 전남 해남군 \'해남 만의총 1호분\'에서 출토된 유개대부발. 이 유개대부발은 신라의 영향을 받은 가야의 토기로 통상 안주를 담는데 사용된다. 동신대문화박물관 제공. 연합.
3.전남 해남군 \'해남 만의총 1호분\'에서 출토된 토우장식 서수형토기. 동신대문화박물관은 토우가 장식된 서수형토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22일 밝혔다. 그간 서수형토기와 토우가 각각 출토된 적은 있었으나 서수형토기 위에 토우(용모양)가 장식된 사례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동신대문화박물관 제공.연합.


특히 토우가 장식된 서수형토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서수형토기와 토우가 각각 출토된 적은 있었으나 서수형토기 위에 토우(용모양)가 장식된 사례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이 토기는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국보91호), 경주 미추왕릉지구 C지구에서 출토된 서수형토기(보물 636호)와 동일한 상형토기인데 서수형토기와 토우는 경주에 한정돼 출토되기 때문에 신라 고유의 양식으로 분류된다.

토우장식 서수형토기 외에 포목으로 감싼 청동거울 1점, 청동팔찌 1점, 조개팔찌1점, 곡옥(.초승달모양의 장식용 구슬) 1점, 금장식 된 소형의 청동곡옥 6점, 관옥(. 푸른빛이 도는 대롱 모양 옥) 6점, 기타 금제장식 17점, 1천100여점의 대소형 구슬 등이 출토됐다. 무기류로는 철검 1점, 철촉 27점 등이 나왔다.

이번 발굴작업을 이끌고 있는 이정호 동신대 교수는 "백제, 신라, 가야, 왜에서 나온 유물이 이처럼 한 장소에서 대거 출토된 것은 처음"이라며 "당시 백제, 신라, 가야, 왜가 활발한 교역을 했음을 보여주는 발견"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서수형토기의 경우에도 경주밖에서 출토된 사례가 없으며 보자기로 여러차례 감싼 청동거울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굉장히 특이한 유물"이라고 소개했다.

해남 만의총 1호분은 이번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에 삼국시대에 조성된 후 정유재란 때 희생된 순절의병을 재차 매장한 복합 유적으로 확인됐다. 만의총은 1597년 발생한 정유재란 당시 성산리 대교들에서 왜군과의 교전 중 전사한 이 지역 의병들의 시신을 합장한 무덤으로 전해져왔다.

무덤 양식에 있어서도 ▲목관과 석곽()사이의 측벽에 판석을 채운점 ▲석곽의 뚜껑돌과 목관 사이의 공간까지 점토로 밀봉한 점 ▲석곽 바닥에 판석을 깐 점 등은 백제나 가야, 신라, 일본 등의 기본적인 묘제형식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라고 동신대문화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