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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의사 홍명호·성호·지호

동봉 2009. 5. 13. 16:49

스타 의사 홍명호·성호·지호 … 의가 삼형제의 유쾌한 패밀리즘 [조인스]

성형외과 의사 홍성호와 치과 의사 홍지호는 연예인만큼 유명한 스타 의사이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롤 모델이라고 하는 큰형 홍명호 박사 역시 국내 내과 의사 중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큰형과 막내 홍지호 박사의 나이 차가 20세가 훌쩍 넘을 만큼 세월의 간격도 있고, 종사하는 의학 분야도 다르지만 삼형제는 최고의 인생 파트너이다. 촌철살인 삼형제와의 기분 좋은 만남.

취재_민은실 기자 사진_조병각(studio lamp)


“아버지의 슈바이처 삶을 보며 의사 된 소울메이트 삼형제의 ‘가족’이라는 축복”

홍명호(71)·성호(63)·지호(48) ‘홍 박사 삼형제’는 각각 내과, 성형외과, 치과 분야에서 손꼽히는 의사들이다. 진료와 연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터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삼형제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인터뷰 전날에는 어머니의 성묘를 다녀왔고, 기자를 만난 날은 인터뷰를 빌미 삼아 형제가 모여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어머니가 작년 이맘때 돌아가셨어요. 그날도 오늘처럼 벚꽃이 활짝 피고, 햇살이 아주 따듯했죠. 어제 형님이랑 지호랑 다녀왔는데 길도 안 막히고 날씨도 쾌청해서 너무 좋았어요. 오랜만에 나들이 좀 하라고 어머니가 부르신 것 같아요.”(홍성호)

사실 이들은 7남매 대가족이다. 손자, 손녀까지 합하면 식구들이 3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자주 모임을 갖기가 쉽지 않다.

“워낙 식구들이 많다 보니 한집에 다 모이기가 힘들어요. 매달 첫째 주 수요일에 맛있다는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해요. 성호 형이 맛집 전문가이기 때문에 장소는 주로 형이 정하는 편이에요.”(홍지호)

“저 양반이 데리고 가는 데는 비싼 집이에요. 뭐, 워낙 잘 버니까…(웃음). 맛집 찾아다니랴, 운동하랴, 이미지 관리하랴, 아무튼 제일 바쁘고, 부지런한 양반이에요.”(홍명호)
홍명호 박사의 재치 있는 말투와 유머러스한 홍성호와 홍지호 박사의 입담 대결로 기자는 인터뷰 내내 한시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산골 마을로 왕진 다니는 아버지를 보며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흔치 않은 의사 삼형제는 간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끝까지 의술을 펼쳤던 아버지 때문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입을 모은다.

홍지호_아버지가 의사가 돼 돌아오면 금목걸이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공부하는 자식이 걱정이 돼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저한테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홍명호_지호가 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원래 우리가 10남매가 넘었는데, 피난 다니면서 지호 위, 아래로 네다섯 명이 죽었으니까 귀한 막내죠. 그리고 성호한테 기대가 제일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똑똑했는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따로 없었어요. 이름만 봐도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를 엿볼 수 있어요. 지호는 ‘뜻 지’ 자를 썼고, 성호는 ‘이룰 성’ 자를 썼어요. 근데 저는 ‘이을 명’ 자를 쓰셨어요. 그래서 제가 오래 사나 봐요. 하하.

홍성호_(손사래를 치며)형님은 무슨 말씀을…. 아무튼 아버님은 촌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셨어요. 어렸을 때 여주에 살았는데 밤이 되면 집 뒤에 있는 향나무 아래서 달빛에 비춰 책을 읽으셨어요. 학구열이 대단하셨죠. 낮이건 밤이건, 주말이건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은 다 찾아 다니셨어요. 산골 마을로 왕진도 참 많이 다니셨는데, 그때 왕진 가방 들어드리면서 많이 쫓아다녔죠. 심부름값을 주셨거든요.

홍지호_성호 형이 입시 공부할 때부터는 제가 쫓아다녔어요(웃음).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대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막연히 나도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해 왔으니까요. 제가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치과 의사가 되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생명을 다루지 않는 의사가 되라고요. 초등학생인 저한테 ‘네가 치과 의사가 될 때쯤엔 치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임플란트가 나왔잖아요. 아버지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지금은 내로라하는 유능한 의사가 됐지만, 젊은 시절 삼형제는 예능 쪽을 잠시 기웃거렸다. 무협지에 푹 빠져 있던 홍명호 박사는 문인들만 모이는 명동의 뒷골목을 드나들다 일명 ‘공초선생’이라 불리는 시인 오상순을 만나 사사를 받았다. 영화 연출의 꿈을 키웠던 홍성호와 치과 의사 출신 가수인 홍지호의 이력도 재미있다.)

홍지호_아버지는 자식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종착역에 대해서는 관여를 하셨어요. 만약에 제가 계속 음악을 하겠다고 했으면 반대를 하셨을지도 모르죠.

홍성호_뉴욕에 있는 필름 스쿨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입학허가서를 제출했는데 아버지한테 들킨 거예요. 그날 동이 틀 때까지 엄청 맞았어요. 일단 의사 자격증을 따고 나면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겠다고 하셔서 그 길로 바로 책을 싸들고 속리산으로 들어갔어요.

홍지호_그때 형 위문하러 갔던 기억이 나요.

홍명호_아버지가 붓글씨를 잘 쓰고, 어머니가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하셔서 그런지, 저희들도 예능 ‘끼’가 제법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의사가 됐지만 전혀 생경 맞지는 않아요. 영화, 그림, 도예… 손재주가 있는 성호는 성형외과 의사가 됐고, 지호는 가수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방송 출연하면서 끼를 맘껏 발산했으니까요. 전 아직도 진료 끝나고 나면 무협지를 읽고 있어요.

홍지호_큰형이 무협지를 많이 읽어서 허풍이 세요(웃음).

‘형제 병원’ 차려 슈바이처처럼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슈바이처 삶을 보며 자란 삼형제는 그렇게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었다. 거기다 형제끼리의 오묘한 경쟁 심리가 의사로 성공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내었는지도 모른다.

삼형제는 요즘 만날 때마다 옛날이야기를 많이 한다. 왠지 나이가 들수록 유년 시절이 그리워져서다.

홍지호_서로 부대끼면서 치고 박고 싸웠던 기억은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 명호 형은 의대생이었고, 성호 형도 방에서 공부만 했으니까요. 큰 소리로 웃지도 못했다니까요.(큰형과는 23세, 넷째 형과는 15세 차이가 났던 홍지호는 막내 특유의 장난기와 애교 때문에 형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생긴 중년이 되어서도 그는 기특한 막냇동생이다.)

홍명호_지호한테는 제가 아버지뻘이나 다름 없다 보니 지금도 지호는 보듬어줘야 할 것만 같은 막둥이 느낌이 있죠. 그래서 그런지 지호가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됐다는 게 신기해요. 자녀 교육도 얼마나 잘 시키는지, 기특하다니까요.

홍성호_가족들은 지호가 귀족 교육을 시킨다고 해요.

홍지호_집안에 어른들이 워낙 많아서 아내가 아이들에게 예절 교육을 엄하게 시켰어요. 식당 가서 돌아다니거나 어른한테 인사를 안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쭐이 나죠.

홍명호_저는 자유방임형으로 아이들을 키웠는데, 지호나 성호는 열혈 아빠가 따로 없다니까요.


홍성호_저야 아이들이 미국에 있어 떨어져 살다 보니까 해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죠.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에게 고민이 생길 때마다 조언도 해주고, 같이 취미 생활도 즐기면서 아빠 노릇을 많이 하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 아이들한테 미안해요. (세 사람 모두 두 아이의 아버지들이다. 병원 일과 가정일, 육아…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삼형제는 서로를 찾는다. 걱정할까 싶어 도리어 숨겨놓는 것이 아니라, 시시콜콜 고민 상담을 하다 보니 형제들 사이에서는 비밀이 없다. 홍명호 박사는 동생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좋은 글귀가 적힌 책을 조용히 건네주기도 하고, 홍성호 박사는 기쁜 일이 생길 때 제일 먼저 두 형제에게 달려간다. 삼형제는 가족을 넘어 최고의 소울 메이트라고 입을 모은다.)

홍성호_저한테 형님과 동생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이에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더 적은데 소원이 하나 생겼어요. 명호 형과 지호랑 같이 형제 병원을 차리는 거예요. 내과도 있고, 치과도 있고, 성형외과도 있는 작은 병원이요. 여생을 사회 봉사하면서 살면 좋겠다, 싶어요.

홍명호_저야 성호의 결정에 따라야죠. 성호가 돈줄인데요. 허허.

같은 곳을 바라보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 자신보다 자신을 더 이해해 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 삼형제에게는 서로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