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盧전대통령 서거

동봉 2009. 5. 24. 15:16

노무현 전 대통령 공식 영정사진

<盧전대통령 서거>
시간대별 상황(종합)

▲오전 5시 10분 = 사저 내 평소 사용하던 컴퓨터 화면에 유서 남김.

▲오전 5시 45분 = 경호원 1명과 함께 사저를 나와 마을 뒷산인 봉화산을 오르기 시작.

▲오전 6시 40분 = 봉화산 7부 능선에서 갑자기 뛰어내림. 경찰은 사저에서 직선거리로 500m 떨어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

▲오전 7시 = 김해 세영병원에 도착. 의식이 없고 머리에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라고 담당의사 설명.

▲오전 7시 35분 =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아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이송.

▲오전 8시 13분 = 인공호흡에 의지해 부산대 양산병원 도착. 도착 당시 자발적 호흡이 없는 상태.

▲오전 9시 30분 = 의료진 도착 이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회복이 안돼 소생술 중단.

▲오전 9시 30분 = 중단과 동시에 서거.
▲오전 10시 50분 = 부산대 양산병원 장례식장에 시신 안치.

▲오전 11시 =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부산대병원장 사망 공식 발표. 부산대병원장은 머릿부분의 손상이 직접 사인이라고 브리핑.

▲12시 20분 = 허기영 법의학 교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 검찰.경찰 관계자 등 입회하에 검시. (창원=연합뉴스)

이운우 경찰청장 27일 오전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께서 경호관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며 "경호관이 노 전 대통령을 발견했을 때까지 30분간 시간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이 유서작성을 끝낸 새벽 5시 45분부터 경호관이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확인한 6시 45분까지의 한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벽 5시 45분 이 경호관에게 "산책 나갈께요"라는 인터폰으로 연락한 후 5분 뒤인 5시 50분쯤 봉화산으로 출발했다.

노 전 대통령과 이 경호관은 6시 14분쯤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 도착했다. 잠시 3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담배있나?"라고 물었고, 이 경호관은 "담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6시 17분쯤 노 전 대통령은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장이 계시는지 확인해봐라"라고 물었고, 이 경호관은 "모시고 올까요?"라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냥 확인만 해봐라"라며 이 경호관에게 정토원으로 심부름을 보냈다.

경호관을 정토원에 보낸 뒤 혼자 남은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했고, 정토원을 다녀온 경호원은 이미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 경호원은 "놓쳤다", "안보인다"는 등의 무전 교신을 했던 점으로 미뤄 이 사이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한 봉하마을 사저 경비팀에 비상이 걸렸었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은 경호원이 자리를 비운 직후 바위 아래로 투신해 30분 가량 고통속에서 혼자 방치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경호원은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6시 45분쯤 발견하고 필요한 응급치료를 한 뒤 바로 업고 차로 이동했다

<盧전대통령 서거> 극단적 선택 이유(종합)

<盧전대통령 서거>노 전 대통령 유서
(김해=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노무현 전대통령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뒷산 바위에 오르기 전 사저 컴퓨터에 남긴 유서내용. 2009.5.23
seephoto@yna.co.kr

유서에 '투신자살' 선택 복잡한 심경 피력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남긴 유서에는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지를 택한 노 전 대통령의 심리상태가 투영돼 있다.

여러 요인이 거론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검찰의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 투신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4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미지 실추와 낙담, 억울함이 복합적으로 겹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퇴임 이후 노 전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 등 주변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현 정권 하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도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고,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밝혔다.

측근들이 사법적 고초를 당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이자 퇴임 이후 줄곧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강한 항의의 뜻을 담은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척 지쳤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검찰과 언론이 봉하마을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몰아간 것 아니냐. 검찰이 정치적으로 매장시킨 타살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대통령의 권좌에까지 올랐지만 수뢰 혐의자로 내몰리면서 도덕성이 부정되고 비난과 조롱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더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지지자)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낙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존심 강한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지 않았다며 적어도 법적으로는 거리낄게 없다고 누차 해명했음에도 오히려 의혹이 증폭되자 결백의 표시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가 자신 몰래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아썼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의 수수 주체라는 혐의를 거두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달 30일에는 검찰청사에 출두해 소환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았다.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인, 아들 건호, 딸 정연씨까지 진행되면서 일가족 모두가 `부패가족' 이미지로 비친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시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본인이 모든 것을 안고 삶을 마감하는 것만이 사태를 풀 해법이라고 인식했다고도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감안한 듯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썼다.

대상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부인과 자녀 등 가족, 주변인사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로 여겨진다.

노 전 대통령은 며칠 전부터 주로 사저 집무실에 머물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정신적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 측근은 "며칠 전부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높이 30m 70도 경사… 주민들 ‘자살바위’로 불러

■ 봉화산 부엉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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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6시 40분경봉화산 정상인 사자바위가 아니라 해발 100m 지점인 ‘부엉이바위’ 절벽에서 투신했다.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밝혔다.바위는바위 위에 서면 발밑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30m가량 펼쳐져 있고 기울기는 70도 이상이다부엉이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장소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뒷산인 봉화산. 해발 140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다. 사저에서는 직선거리로 200m가량 떨어져 있다.



주민들은 오래전 이 바위에 부엉이가 많이 앉아 있었다고 해서 ‘부엉이바위’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등산객이 많지 않은 이날 새벽 봉화산 등산로를 통해 이 바위에 올랐다. 진영읍의 한 주민은 “예전에도 읍민 한 명이 이곳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기억된다”며 “워낙 경사가 심해 등산코스로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살바위’로도 불린다.

경찰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이 절벽에서 추락한 뒤 중간 바위에서 한 차례 충격을 더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흙과 나무가 심어져 있어 혈흔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저 정원에서는 부엉이바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바라보인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로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끔 정원을 산책할 때 이곳을 자주 바라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해=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부엉이바위서 대규모 현장감식

[연합] | 2009.06.01 15:59 입력


경찰이 1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했던 경남 김해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소방대원들의 협조를 받아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부엉이바위!'

이젠 들을수록 자꾸만 자꾸만

詩가 쓰고 싶어지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지울 수 없는

뭇사람의 서정(抒情)이 되고

한 개의 시어(詩語)가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이 또한

뭇사람 가슴 가슴 가슴······

오래오래 적시고 또 적실,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진실 세상의 진리입니다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했던 일생,

단 14줄 유언으로만 남아

차마 애끓지만

그것은

세상의 화합과 평화를 바라고,

'대한민국'='사람 사는 세상' 만들자는

크나 큰 그림이자

한 편의 詩

이 모두가

빛나도록 아름답게 어우러져

한 편의

위대한 詩가 되었습니다

이 복잡하고 혼돈스런 세상을 위해

당신이

私心없이 선물한

참 좋은 詩 한 편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진정 사람다운 사람

마음과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했던 사람

그 이름, 노무현

당신은 이젠

내 마음 속의 영원한 시인입니다.

어쩌면 뭇사람 가슴 속에도 그렇게

오래 오래, 남을······.

노 전 대통령 영결식…'발인부터 안장까지'

[ 2009-05-28 오후 11:13:44 ]

[김해=CBS특별취재팀 정보보고]


▣ 발인부터 안장까지 순서


[ 흐름도 ]

발 인(05:00~05:30) ⇒ 영결식 (11:00~12:10) ⇒ 노제 (13:00~13:30) ⇒ 화장(火葬) (15:00~17:00) ⇒ 안치 (21:00) ⇒ 안장 (추후결정)


1) 발 인
○ 일 시 : 5. 29(금), 05:00~05:30(30분)
○ 장 소 : 빈소(봉하마을회관)
○ 참석범위 : 유가족, 운영위원회, 軍 운구병 등
○ 발인제 순서 : 운구, 견전(상주인사, 대축독축, 재배)

2) 운구행렬
○ 운 구 차 : 특별장식(캐딜락) 1대
○ 운구코스
(Ⅰ) 빈소 → 고속도로 → 영결식장(경복궁)
* 80~90km 속도 운행, 5시간 20분 소요(휴식 20분)
(Ⅱ) 영결식장 → 고속도로 → 수원(화장장)
(Ⅲ) 화장장(수원) → 고속도로 → 김해(안치)

3) 영 결 식
○ 일 시 : 5. 29(금), 11:00~12:10
○ 장 소 : 경복궁 앞뜰
○ 참석범위 : 2,500~3,000명 정도
- 장의위원회 위원 1,000명 정도
- 주한외교단, 조문사절 200명 〃
- 유가족 관련인사 800명 〃
- 각계인사 및 시민 800명 〃
※ 기타 행사요원(의장대・조총대・내외 보도진 등)
○ 진행순서 (사회 : 송지헌 아나운서)

[ 영구차 도착 - 10:59 ] (조악대)

○ 개식(1‘) ....... 조악대
○ 국기에 대한 경례(1‘)...... 애국가 연주
○ 고인에 대한 묵념(2‘) ..... 조악
○ 약력보고(3‘) ............. 집행위원장(이달곤)
○ 조 사(12‘) ............ 장의위원장(한승수, 한명숙)
○ 종교의식(12‘) ............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 생전영상 상영(4‘)
○ 헌화(18‘, 유족, 주요 조객 ..외교사절 등)
조곡 연주·합창
○ 추모공연(10‘) ............ 합창단, 해금연주
○ 조총(3‘) ................. 조총발사(21발)
○ 폐식(1‘) ................ 조악대

4) 노 제(路祭)
○ 일 시 : 5. 29(금), 13:00~13:30 (서울역 출발 14:00)
○ 장 소 : 서울광장 (덕수궁 대한문 앞)
○ 참석범위 : 유가족, 영결식 참여자 중 희망자, 일반시민 등
○ 진행순서
- 여는마당, 조시, 조창, 진혼무 등(만장은 노제 부터 참여)
○ 장의행렬 : 영결식 후 → 서울역(도보)

5) 화 장(火葬)
○ 일 시 : 5. 29(금), 15:00~17:00(2시간)
○ 장 소 : 수원시 연화장 승화원(수원시 영통구 소재)
○ 참석범위 : 유가족, 집행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 진행순서
- 운구(5‘) - 분향(20’) 등
- 종교의식(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순)
○ 장의행렬 : 서울역 앞 → 제대행렬로 화장장(수원) 이동

6) 안 치
○ 일 시 : 5. 29(금), 21:00
○ 장 소 : 정토원(김해시 소재)
○ 참석범위 : 유가족, 운영위원회 등

7) 안 장
○ 일 시 : 추후 결정
○ 장 소 : 봉하마을 인근

시인 도종환 “이제야 제관으로 뵙네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9일 화장되기 전 마지막으로 열린 공식행사인 서울광장 노제(路祭)에서 제관(사회) 역할을 한 도종환 시인(54·사진)은 “가장 뜨거웠지만 가장 외로웠던 분이었고, 그런 분을 혼자 벼랑으로 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분을 보냈다”고 말했다.

도 시인은 “영결식이 있긴 했지만 이건 정부가 장의위원회를 꾸려서 공식적으로 하는 행사이고 노제는 시내 한복판에서 국민들과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자리였다”면서 “가장 서민적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국민들로서는 각별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도 시인은 노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이 그리 깊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은 가장 치열하게 살았지만 욕되게 살 수 없어서 벼랑에 몸을 던진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을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자리의 뜻이 매우 깊기 때문에 제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도 시인은 정부가 영결식이 치러진 29일 아침에야 서울광장을 추모객들에게 개방하고 만장에 사용될 대나무를 PVC로 바꾸도록 하는 등 시민들에게 널리 퍼진 추모분위기에 극도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산 권력이 죽은 권력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노 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영화로도 제작된 시집 ‘접시꽃 당신’의 작가인 도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김재중기자 hermes@kyunghyang.com>

방송인 김제동 “오늘만은 슬퍼하겠습니다”

29일 서울광장 노제 식전 공연의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씨는 “비가 오는 날이든, 맑은 날이든 그분을 생각하겠다”며 “여러분의 눈을 통해서, 마음을 통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 언제까지 지켜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너무 큰 신세를 졌고 우리가 받은 사랑이 너무 컸습니다.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죄송합니다, 오늘은 좀 슬퍼해야겠습니다. ‘운명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운명만은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화장하라’고 하셨는데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자, 이제 바보 대통령, 그러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웠던,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서 자랑스러울,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맞이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김씨는 “지난 27일 노제 사회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으며 이 결정에는 유족들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청와대 행사를 진행하며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자신의 팬카페에 글을 올려 고인을 추모했다.

<문주영기자 mooni@kyunghyang.com>

명창 안숙선 “취임 때 노래한 게 엊그젠데”

안숙선 명창은 이날 노제에서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데, 님은 어디로 향하시는가…’라며 임방울 명창의 ‘추억’을 노래했다. ‘추억’은 1961년 타계한 임 명창이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직접 불렀던 슬픈 노래다.

노래를 다 마친 안 명창은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행사 무대에서 소리를 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만 같은데, 어찌 이렇게 황망히 떠나실 수 있느냐”며 “고인을 보내는 자리에서 소리를 할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국립창극단의 공연장을 찾았던 기억도 떠올렸다. “당시 창극단 단장 겸 전주소리축제 위원장으로서 대통령 옆에 앉아 공연에 대한 설명을 해드렸다”며 “아마 대통령께서는 그날 판소리와 국악관현악이 어우러진 공연을 처음 보신 듯했다. 공연이 끝난 후 ‘우리 음악이 이렇게 훌륭한 줄 미처 몰랐다’면서 즐거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한 경험도 떠올렸다. “가까이서 뵈었던 그분은 참으로 자상했다. 평양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안 선생 이쪽으로 가까이 오세요. 우리 식구들 중에 빠진 사람 한 명도 없지요?’ 하면서 수행단 일행을 일일이 챙겼다”고 회상했다. 또 “취임기간 중에 그렇게 많은 애를 썼으니, 여생을 시골에서 편하게 보내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김희연기자>

가수 윤도현 “공연장 찾아 책 건네셨죠”

‘넌 말했지 철없는 나를 보며/ 이 세상은 그런 게 아니라고/ 또 그렇다고 너의 뜻대로 살 순 없잖아/ 비겁한 세상 비 내린다면 그 비를 맞겠어/ 날 가로막고 내 눈 가리고 내 숨을 조여와도/ 후회없어 걸어왔던 날들 이제 시작이야’ (‘후회없어’ 가사 중)

YB(윤도현밴드)는 자신들의 노래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29일 치러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서 불렀다. 윤도현씨는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전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분이 남기신 뜻을 가슴깊이 담겠다. 그분의 삶에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윤씨는 2002년 자신들의 공연장을 찾았던 당시 대선후보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을, 윤씨는 CD를 서로에게 건넸다. 윤씨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윤씨와 동료들은 25일 봉하마을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YB의 멤버 박태희씨는 밴드 공식 홈페이지에 “가장으로서 음악인으로서 국민 한 사람으로서 똑바로 살아가자.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당신의 삶의 흔적이 내 안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애초 YB는 국민장 장의위원회의 노제 참여 요청을 받고 곡 선정을 고민했으나, 결국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이의 삶을 노래한 ‘후회없어’를 선택해 무대에 섰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가수 안치환 “긴 대열 속에서 그 분 느껴”

가수 안치환씨는 이날 시청 앞 노제에서 ‘마른잎 다시 살아나’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직접 기타를 치며 잇따라 불렀다. 노래를 마친 그는 다소 목이 멘 음성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장 서민적이고 인간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빈틈도 많이 보였던 분이었다”면서 “세상이 그의 진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만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씨는 영결식 하루 전에도 봉하마을을 찾아 분향하고 돌아왔다면서 “4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야 대통령께 분향을 하고 꽃 한 송이를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최 측에서 시간이 없으면 빨리 분향하고 서울로 올라가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 긴 대열에 함께 서서 오래도록 봉하마을에 머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가신 분을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또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듯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분이 완벽한 정치가, 최고의 정치가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사심없이 실천하면서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가려 했던 대통령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문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