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촌 美來村

제296강 7.2 (목) 지혜의 샘 / 원오 스님 (전, 군종감)

동봉 2009. 7. 3. 15:33

육본 군종감 대령 이종인 법사 “해인사로 돌아갑니다”
4월 1일부터 이종인 법사가 아닌 원오 스님으로
이원오 법사
“한단지몽이라는 말처럼 저도 이제 법사의 꿈을 깨고, 새로 출가하는 기분으로 해인사로 돌아갑니다.”

육군본부 군종감 대령 이종인 법사가 3월 30일 환송 법회를 마지막으로 해인사 원오 스님으로 돌아간다.

이종인 법사는 군종감으로 재임하는 동안 어린이 법회를 위한 시설 구축, 자살 사고 예방을 위한 선도 사례집 발간, 수ㆍ일요일 정기 법회 봉행 등을 했다. 특히 법사는 계룡대뿐만 아니라 17사단 예하 부대의 정기 법회에 참석해 법문을 하는 등의 열의를 보였다.

법문하는 것을 좋아 한다는 법사는 “계룡대는 다른 부대와 달리 육ㆍ해ㆍ공군의 법사가 함께 있기 때문에 법문을 할 기회가 두 달에 한번 정도 밖에 없는데 저는 월 1회 이상은 법문을 할 수 있었다”며 “아마 후배 법사님들이 저를 위해 많이 양보를 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기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인 법사는 환송 법회에서 “저는 법문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이제 전역을 하게 되면 법문할 기회가 없어져 무슨 재미로 어떻게 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신의 애창곡 ‘남자라는 이유로’를 불렀다.

‘언제 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소리 내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 이 너무 길었어’
남자라는 이유와 군종감이라는 위치에서의 느끼는 말할 수 없는 고민 때문에 애창곡이 됐다 한다. 이제 해인사로 돌아가면 어떤 노래가 애창곡이 될까.

이종인 법사는 1967년 해인사에서 현 종정 법전 스님을 은사로 수계, 사미계와 구족계를 수지하고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그 뒤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사병으로 의무 복무를 마쳤다. 1985년 육군 군승 43기로 임관 해 육군본부 군종감실 종무장교, 육군 계룡대 호국사 주지 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2월부터 육군 군종감 소임을 맡았다.

한편, 3월 30일 계룡대 호국사서 열린 이종인 법사 환송법회에는 죽암사 주지 도광 스님, 공곡 스님, 정연 스님을 비롯해 사부대중 500여명이 참석했다.
손효선 기자 | mindinhot@empas.com

<조선일보/20080417/목>

23년 軍법사 전역하고 다시 산으로… 도림사 원오 스님


"군생활도 좋지만 수도하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죠"

대구=글·사진 김한수 기자 hansu@chosun.com

"20여 년 동안 군(軍) 장병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포교했던 것처럼 이젠 일반 국민들에게도 열심히 부처님 법을 전해야지요."

15일 오후 대구 팔공산 자락 도림사에서 만난 원오(圓悟·56)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원오 스님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육군 군종감(대령) '이종인 법사'였다. 그는 3월 31일 전역하자마자 이튿날 바로 도림사로 내려와 '장교 머리'를 다시 깎았다.

군법사로서 군종감에 오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다시 산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흔치 않은 일이어서 불교계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다. "뵐 때마다 늘 '니 뭐하고 자빠졌냐?'며 제가 전역하는 날을 손꼽으셨던 은사(현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스님이 이틀이나 기다리셨다며 오자마자 바로 직접 머리를 깎아주셨습니다."

원오 스님은 출가이력부터 이색적이다. 충북 진천에서 서당에 다니며 사서삼경을 떼고 한문실력에 자신 있던 스님은 열일곱 살 되던 해 신문에서 '한문을 해독하는 인구가 줄어 팔만대장경 번역에 어려움이 있다'는 기사를 읽고는 팔만대장경을 번역하겠다는 생각으로 출가했다.

    군종감(대령)을 끝으로 23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산사로 돌아온 원오 스님은“군에서도 새벽예불 드리고 경전 공부를 꾸준히 했기 때문에 ‘군인물’은 금방 빠졌다”며 웃었다.
출가 후 성철 스님과 법전 스님을 시봉하며 경전공부를 열심히 했던 스님은 "해인사 강원 강사를 맡으라"고 어른 스님들이 권유했지만 "세상 공부도 더 하고 싶고, 군포교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어서" 이미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쳤음에도 33세 늦은 나이에 군종 장교를 지원했다.

사는 곳은 절에서 군대로 옮겼지만 새벽예불하고 기도하는 생활은 계속했다. 그는 "절에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났는데 군대에서는 6시에 기상시키니 늦게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일과 시간 외에는 늘 승복을 입고 기도하고 혼자 방에 앉아 좌선도 했다.

결혼의 유혹도 있을 법 하지만 그는 "늘 산으로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결혼 생각은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법문하기를 즐겨한 스님은 일선 사단부터 군단, 육군본부 등 부임하는 곳마다 신도수가 늘어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는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뻐서 법문 요청은 사양한 적이 없다"며 "사병들도 제가 법문할 때는 졸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원오 스님의 상좌인 종현 스님은 "군에서 스님의 법문과 상담을 듣고 감화돼 제대 후에 출가하겠다는 유발(有髮) 상좌도 여러 명 있다"고 귀띔했다. 군생활도 열심히 하니 진급도 빨랐다. 군종감 시절에는 군종병과(兵科) 로고도 만들었다. 어떤 상징물을 표현할 것인지를 두고 각 종교의 의견이 갈려 정하지 못했던 것을 촛불 모양으로 정했다고 한다.

23년 동안 입어온 푸른 제복을 벗고 회색 승복을 다시 입은 원오 스님은 "군생활 동안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육체적, 일반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늘 강조했지만 수도하고 수행하는 맛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대령(군종감)으로 23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산사로 다시 돌아온 원오 스님. /김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