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유전자 하나로도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얻는다
동봉
2009. 9. 1. 08:16
유전자 하나로도 '치료용 배아줄기세포' 얻는다
입력 : 2009.09.01 03:03
- ▲ 김정범 박사
김정범 박사, '유도만능줄기세포' 연구에 새 지평
사람 신경줄기세포에 유전자 'Oct4'만 집어넣어 인체 모든 세포로 자라나게
환자에 적용 길 열어 癌유발 가능성 극복 과제로
한국인 과학자가 유전자 하나만으로 다 자란 인간 세포를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른바 '유도만능줄기세포(iPS)'다. 세포 분화과정을 거꾸로 돌린다고 해서 '역분화 줄기세포'라고도 불린다. 환자의 세포를 떼내 유전자 하나만 변형시켜 치료용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길이 열린 것이다.◆유전자 하나만으로 배아줄기세포 생성
독일 막스플랑크 분자의학연구소의 한스 슐러(Scholer) 교수와 김정범(金正範·35) 박사 연구진은 '네이처(Nature)'지 8월 28일자 인터넷판에 "사람의 신경줄기세포에 'Oct4'란 유전자 하나만 집어넣어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날 수 있는 iPS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는 이번 논문의 제1저자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라는 원시세포로,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세포치료제로 각광받고 있다. 이를테면 심장병에 걸린 환자에 주입하면 건강한 심장세포로 자라나 손상된 심장세포를 대체할 수 있다. iPS는 배아줄기세포와 거의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2007년 일본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Shinya) 교수는 사람 피부세포에 Oct4·Sox2·Klf4·Myc 4개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iPS를 만들었다. 하지만 Myc와 Klf4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라는 문제가 있었다. 또 4가지 유전자를 동시에 집어넣으면 세포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분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수를 줄이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김 박사는 이 경쟁에서 선두 주자다. 지난해 '네이처'지에 Oct4와 Klf4 2개의 유전자만으로 생쥐세포에서 iPS를 만들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셀(Cell)'지에 생쥐의 신경줄기세포를 Oct4 유전자 하나만으로 iPS로 변환시켰다고 발표했다. 김 박사는 이런 공로로 지난해에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의 '젊은 과학자상'을, 올해엔 독일 MTZ 제단이 처음 제정한 '우수 젊은 연구자상'을 받았다. 이번엔 사람 세포에서 유전자 하나로 역분화에 성공한 것이다.
◆중간단계 없는 역분화가 목표
김 박사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신경줄기세포에서는 역분화를 일으키는 4가지 유전자 중 Oct4를 제외한 3가지가 이미 자체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인체에서 작동하지 않은 Oct4만 집어넣어 iPS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이처지는 "이번 연구는 앞으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며 "유전자 하나만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간단하면서도 안전하게 실제 환자에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남은 과제는 환자에 주입한 iPS가 필요한 세포로 자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암을 일으키는 문제다. 김 박사는 "앞으로는 iPS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다 자란 세포를 원하는 세포로 곧바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부세포로 생쥐 만들어내기도
줄기세포는 수정란에서 얻는 배아줄기세포와 출생 이후 척수나 혈액 등에서 얻는 성체줄기세포로 나뉜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이나 난자를 파괴해야 얻을 수 있어 생명윤리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그런 문제는 없지만 분화능력에 한계가 있다. 즉 신경줄기세포는 신경세포, 혈액줄기세포는 혈액세포처럼 특정 세포로만 자란다.
iPS는 두 줄기세포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하루가 다르게 연구가 발전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연구진은 '네이처'지에 "생쥐의 피부세포로 iPS를 만들고, 이를 계속 자라게 해 생쥐를 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생쥐들은 나중에 새끼까지 낳았다.
당시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 데일리(Daley) 교수는 "iPS가 배아줄기세포가 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켰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물 수준이지만 iPS를 이용한 세포치료도 성공했다. 같은 달 미국 메이요 클리닉 연구진은 미국심장학회 발간 '순환(Circulation)'지에 "심장발작을 일으킨 쥐의 심장 세포로 iPS를 만든 다음, 이를 다시 손상된 심장에 주입해 심장기능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와 함께 '세포치료' 목적으로 연구되는 줄기세포의 한 종류. 다 자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삽입, 세포 초기 상태인 배아줄기세포와 거의 같게 만든 것이다. 난자나 수정란을 쓰지 않아 윤리논란에서 자유롭지만, 삽입한 유전자나 유전자 전달체인 바이러스의 안전성 문제로 환자 적용이 늦어지고 있다.